조선은 탄생에서부터 그 성격을 명확히 하였다. 조선을 탄생시킨 신진사대부는 조선을 성리학의 나라로 만들어 모든 백성이 성리학의 교리에 따라 생활하는 그런 이상향적인 국가건설을 꿈꾸었다. 그 첫번째가 바로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하는데 1등공신이자, 조선을 설계했다고 평가받는 삼봉 정도전이다. 그는 성리학을 통해 조선을 왕조국가이지만 왕권에 의해 좌지우지되지않고, 재상이 중심이 되어 국가가 운영되는 '재상총재제'를 꿈꾸었다. 물론 그의 꿈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최고의 왕권주의자인 태종 이방원에 의해 무너지게된다. 고려말 사회는 권문세족의 탐욕과 몽골의 침입으로 완전히 피폐해져버렸다. 모든 국가의 멸망기가 그러하듯 고려역시 그런 고려를 대신할 세력을 찾기 시작하였고, 당시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하던 신진사대..
조선은 정도전을 비롯한 고려말 신진사대부들이 성리학을 새로운 나라 조선의 근간으로 하여 건국되었다. 하지만 정도전은 조선이 성리학의 왜곡된 해석과 그에 따른 붕당 정치로 망하게 될 것을 알았을까? 성리학의 왜곡된 해석은 글쓴이의 주관적 입장이긴하지만 어쨌든 정도전이 무덤에서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일것이다. 성리학과 붕당 정치, 그리고 조선의 멸망한 원인에 대한 포스팅이다. 조선 성리학을 집대성한 이황과 이이(and 김종직, 조광조) 퇴계 이황은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사성과 대제학에까지 이를 정도로 학문적 완성도 높았던 퇴계는 '을사사화' 후 고향으로 내려와 독서에 전념하는 구도자의 생을 살아갔다. 그이후에도 선조에 이르까지 계속적으로 관직진출의 요청을 받았다. 1560년 고향..
고려가 귀족을 중심으로 한 불교국가였다면 조선은 반대로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유교국가였다. 고려는 세습을 통해 자손들이 정계에 진출했고, 조선은 과거시험을 통해 인재를 등용하였다. 고려는 팔만대장경으로 대표되는 우리 역사에 대표적인 불교국가였고, 조선은 숭유억불정책과 성리학으로 대표되는 나라였다. 어느 국가가 더 '좋은 국가'였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새로운 사상과 가치는 언제나 기존 사상의 부패와 대안으로 나타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집권한 세력이 개혁하지 않으면 그 세력은 자연스레 부패하기 마련이다 고려말 신진사대부는 고려가 부패해진 이유를 음서제를 통한 능력이 검증되지 않는 귀족출신들의 중앙권력 진출에서 비롯된 부정, 부패가 국정을 어지럽히고 썩게한다고 주장하였다. 초기 호족세력으로부터 시..
혹시 '장가들다'와 '시집가다'의 차이점을 아시나요???? 고구려에는 '서옥제'라고 하는 데릴사위제도가 있었다. 이는 혼인을 하면 신부의 집 뒤편에 조그만 집을 짓고 거리에 들어가서 살면서 자녀를 낳고, 자녀가 장성하면 아내를 데리고 신랑집으로 돌아가는 제도이다. 이는 고구려가 가지고 있는 지리적 환경과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고구려는 알고 있듯이 산악지형이 국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이다. 이 말은 농사를 짓기 위한 남성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당시 고구려는 백제, 신라와 더불어 정복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던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남성이 상대적으로 여성보다는 조금은 더 귀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좀 더 깊고(?) 농담적으로 설명하면 국가에 필요한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