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벌거벗은 한국사(대한민국) 7. 박종철군의 물고문과 이한열 열사의 죽음.. 그리고 1987년 6.10 항쟁.. 드디어 진정한 민주주의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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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한 게 1986년이다. 다른 기억은 나지 않고 임춘애 선수가 라면만 먹고 운동을 해서 아시안게임 3관왕인가.. 했다는 기사가 대서특필된 건 알고 있다. 두 번째 기억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이다. 당시에 대한민국에서 저렇게 큰 세계적인 행사가 열리다는 것에 신기해했지만 나중에 그 올림픽이 정치적 이용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했었다. 내가 국민학교에서 ㄱ,ㄴ과 더하기, 빼기를 배우기 시작할 무렵 대한민국이 비로소 민주주의 국가로 갈 토대를 마련했다는 사실을 난 그 후 20년이나 지나서 알게 되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1987년 당시 20대인 박종철 군과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연 6.10 항쟁 이야기다.

 

 

6.10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군 물고문 사건

 

 

1987년 1월 15일 중앙일보 사회면에 2단짜리 작은 기사가 실린다.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제목으로... 그날 오후 이 기사 내용의 사실을 확인하는 기자들에게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서울대에 다니던 박종철 군의 사망사실을 처음으로 시인하며 그 경위로 앞의 인용 내용을 밝혔다. 그때 자리에 함께 배석했던 치안본부 박처원 대공담당 5차장은 이렇게 말했다..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쓰러졌다"....

 

 

당시 동아일보 : 당시만 하더라도 동아일보는 제대로 된 신문사였다

 

 

난 영화 '1987'에서 이 장면을 보고... 그냥 영화적으로 지어낸 각본인줄 알았다... 그전에 6.10 항쟁에 대해서 공부할 때 박종철 군의 사망에 대해서 고문을 은폐하려는 정황이 있었다는 내용은 알았지만 정말 저 '턱'치니 '억'하고 가 사실일 줄은 몰랐다... 영화에 출연했던 캐릭터들은 대부분 실존 인물을 그대로 연기했다. 김윤석 배우님이 연기한 박처장, 우 현 배우님이 연기한 치안본부장, 그리고 의사였던 오연상 박사를 비롯해 부검의 황적준 박사, 이희준 배우님이 연기한 동아일보 윤상삼 기자등은 모두 실존인물이라는 것이 어찌 보면 더 놀라운 사실이다.

 

나는 흔히 말하는 민주화 세대가 아니다.. 나는 그저 1987년 대한민국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분들이 이룩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편하게 살고 있는 이제는 또다른 기성세대일 뿐이다. 내가 민주주의나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불과 20여 년에 불과하다. 영화 1987은 그렇게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영화였다. 물론 그전의 '화려한 휴가', '변호인'등이 있었지만 1987은 또 다른 의미로 내게 충격을 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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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항쟁의 또다른 이야기.. 이한열 열사....

 

 

이한열군은 중학교 2학년 재학 시 5.28 광주민주화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학생운동에 투신할 것을 결심했다고 한다. 연세대에 입학 후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에 투신하였고, '만화사랑'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운동권과 만화를 좋아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가교역할을 하였다. 실제로 이한열 군은 만화에도 진심이어서 시위현장을 만화로 그리기도 하였으며, 민중미술 계열의 화가를 초청하여 배우는 기회를 만들기도 하였다.

 

1987년 6월 10일은 원래 '고문 살인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6.10 대회 출정을 위한 연세인 결의대회' 시위 도중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후두부를 맞아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해 7월 5일 사망하였다. 이한열군의 최루탄 피격 사건은 6.10 항쟁을 확산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1987년 6월 9일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당시 경영학과 2학년인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아 무릎을 꿇고 쓰러져있다.(사진참조 -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95407.html)

 

 

tv 다큐를 보면 시위주도는 대학생들 위주로 이루어졌고 당시 직장인들은 휴지를 건물밖으로 던져주며 그들의 용기에 박수쳤다고한다. 누군가에는 그때의 기억이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으로, 누군가에는 회피하고싶은 부끄러움으로,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딴나라 이야기로 치부되었을 6.20항쟁은 그렇게 일부를 제외한 전국민의 지지속에서 진행되었다.

 

1987년 6.10항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6.10 항쟁은 대통령직선제 개헌 등 민주화를 요구하며 전국적으로 전개된 시민 항쟁이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분부'가 기획하였고 6.10 국민대회를 기점으로 당시 전국에서 매일 평균 100회 이상의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 참가한 연인원은 대략 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6.10 항쟁의 결과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1987년 6월 29일 6.29 선언을 통해 대통령직선제 개선 요구수용을 받아들였고, 이후 대한민국은 본격적인 민주화 단계로 접어들게 되었다.

 

(자료참조 - 나무위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tvN 다큐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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