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벌거벗은 한국사(대한민국) 10. 역사를 기록하는 방법의 주관적 해석과 주장 (feat. 내 마음대로 끄적거리기 1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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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지금은 우리 집 한채만 산꼭대기에 덩그러니 남아있는 경상도의 흔히 말하는 깡촌이고, 졸업한 국민학교는 내가 중학교 3학년때인가 폐교가 되었을 정도로 인구도 적고 놀거리도 없는 시골마을이었다. 그런 곳에서 내가 놀 유일거리는 서울에 계신 작은 고모가 보내준 각종 백과사전과 위인전을 읽는 것이었고, 그것이 내 독서의 시작이었다. 벌거벗은 한국사를 마무리하며 앞으로 내가 읽을 책들과, 내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며 과거의 나의 기록이 미래의 나의 관점과 얼마나 달라졌을지를 기록으로 남긴다.

 

 

가끔 쓸데없는 생각을 한다. 조선 태종이 왕자의 난을 일으키지않고 권좌에 오르지 않았다면 세종은 훈임정음을 창제하지 못했을까? 태종의 첫째 아들 양녕대군이 원래대로(?) 왕위에 올랐다면 세종의 운명은 어떠했을까?? 현대에 와서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를 하지 않고 민주적인 정부를 운영했다면 그 후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왜 역사는 순리대로 흐르지 않고 중간에 한 번씩 돌발행동을 하는 것일까?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며 걷기를 하다 보면 이렇듯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곤 한다.

 

역사란 과거에 있었던 사건. 사고 그 자체를 말하는 사실과, 기록물, 학문, 그리고 철학적인 개념등으로 설명이 된다. 역사를 이해하는 가장 유명한 말 중 하나는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서술한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의 계속적인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말한 부분이다. 특히나 아시아의 한자 문화권에서는 날짜를 헤아린다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데, 이는 농업사회와 연관된 역법과 달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은 읽어볼만한 책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역사에 대해 울부짖는 부류는 크게는 정치인이다. 동양의 사마천의 '사기'와 서양의 헤로도토스의 '역사'이후 인간은 모든 인간의 정복활동을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한다. 당시 그들이 기록에 의존한 이유는 그 기록을 후세에 남겨 지표로 삼으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단순히 당시 정복자와 권력가의 유산을 기록하고 싶어서이다. 그들의 욕망을 하나씩 기록하기 시작했고, 그들의 기록은 다음 권력자에 의해서 조금은 왜곡되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 기록들은 계속적으로 남겨져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이다. 

 

역사란 그런 것이다. 거창하게 역사를 알고 거기에서 반면교사를 얻어야 한다고 수많은 정치인들이 떠들어대지만 일부 지식인과 정치인을 제외하고 그들이 역사를 인용하는 이유는 그들의 당위성과 명분을 찾기 위함이지 결코 그들이 주장하는 국민을 위한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역사의 기록은 승자의 기록이고 정복자의 기록이지, 그들과 함께 살아간 백성들을 위한 기록은 아니다.

 

 

사기 - 사마천은 당시 무제의 미움을 받고 권력에 밀려나 사기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역사는 필연적으로 과장되게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거의 처음으로 등장하는 역사에 남은 권력자인 고구려의 주몽을 보고 있노라면 역사의 과장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아버지인 해모수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어려서부터 신궁으로 소문난 활솜씨, 그리고 시록을 대충 계산해 보면 대략 16세 전후로 그는 고구려라는 고대왕국을 건설한 장본인이다. 아.. 그리고 우리는 주몽의 정확한 이름을 모른다. 주몽은 당시 부여에서 활을 잘 쏘는 신궁을 가리켜 주몽이라 불렀으며 주몽은 그렇게 고유 명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한반도의 역사에 (고) 조선이 있긴 하지만 당시의 사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기에 고구려, 백제, 신라를 실질적인 한반도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보면 그 시작인 고구려의 역사부터 수많은 과장과 왜곡으로 쓰여지기 시작한 것이다.

 

 

주몽의 본명은 무엇일까 - 국학원 역사 문화공원의 동명성왕 동상

 

 

그럼 역사가 과장되고 왜곡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당시의 시대가 과학적이기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당시의 최고 권력자는 정복군주이지만 그 정복군주를 지탱하는 힘은 흔히 신녀라고 말하는 주술사들이다. 그들은 하늘의 힘을 빌려 정복군주의 권위를 세우고 명분을 찾아주었으며, 별자리를 읽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시기를 정해주곤 하였다. 지금이야 가짜뉴스가 퍼지면 직접 기사를 찾아보거나, 유튜브를 찾아보는 등 본인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본적인 플랫폼이 구축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환경이 조성되지 않다 보니 주술사의 말이 곧 법이 되는 세상이었다. 간혹 주술사의 말이 틀려 농사를 망친다 하더라도 그건 주술사의 잘못이 아닌 나라를 운영하는 일부 권력자가 하늘의 말을 듣지 않은 이유로 몇몇의 권력자를 처치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의 기록을 남기기 시작하였고, 그들을 대신하여 다시 권력자로 등장한 이들은 그들이 남긴 방식을 토대로 다시 나라를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거기에는 백성을 위하는 위민이나 사실관계를 밝히는 그 어떠한 노력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승자가 기록한 과장되고 왜곡된 기록이 되는 것이다.

 

그럼 과학의 시대로 접어든 이후에는 역사가 사실을 바탕으로 기록되기 시작했을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서양의 경우 대략 과학의 시대를 뉴턴 이후라고 가정한다면 1600년대 이후, 한반도의 경우는 관점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1900년대 이후부터라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건 조선시대를 과학의 시대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기도 하다. 좀 더 간편하게 근대 이후라고 생각한다면 광복 이후부터 과학의 시대라고 가정했을 때, 광복 이후에 기록된 우리나라의 역사는 사실을 기반으로 기술되었다???? 글쎄.. 딱히 확신할 순 없다.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대한민국이 건국되는 과정에서부터 대한민국의 건국시기를 가지고 아직도 진보와 보수가 대립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단순히 과학의 시대에 접어들었다 하더라도 역사가 정직하게 사실만을 기록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건국전쟁'??? 맞나???? 아무튼... 이걸 보신 분도 계시려나... 난 아직 안 봤고 앞으로도 볼 생각이 없지만 대충의 스토리는 각종 기사를 통해 접했는데... 뭐.. 접하기만 했고 앞으로도 접하기만 할 생각이다.

 

 

아이작 뉴턴의 등장은 사회가 점진적이나마 주술의 세계를 벗어날 수 있게하였다

 

 

주술사의 시대에는 과학적 근거와 합리적인 이유를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 역사가 단순히 정복자와 권력자의 사유물이 되어버렸다고 하지만 과학의 시대가 되었다 하더라도 역사가 피정복자와 피권력자의 산물이 되지는 않는다. 과학의 시대에도 역사는 권력자의 사유물이고, 그들은 주술사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역사를 자신들의 언어로 기록하며 남기기 시작했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역사라는 의미자체가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개체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지 거기에 굳이 과학적 근거와 합리적 이유를 제시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과학의 시대 이후 대체적으로 역사는 사실에 근거하여 기록되지만 일부는 기억나지 않고, 정확한 행동을 가늠하기 어려운 '사실'들을 기록을 작성하는 자들의 주관적 해석과 판단으로 쓰이기 때문에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사실에 의거한 기록이 아니라 역사를 기록하는 자의 판단과 해석으로 쓰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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