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장가들다'와 '시집가다'의 차이점을 아시나요???? 고구려에는 '서옥제'라고 하는 데릴사위제도가 있었다. 이는 혼인을 하면 신부의 집 뒤편에 조그만 집을 짓고 거리에 들어가서 살면서 자녀를 낳고, 자녀가 장성하면 아내를 데리고 신랑집으로 돌아가는 제도이다. 이는 고구려가 가지고 있는 지리적 환경과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고구려는 알고 있듯이 산악지형이 국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이다. 이 말은 농사를 짓기 위한 남성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당시 고구려는 백제, 신라와 더불어 정복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던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남성이 상대적으로 여성보다는 조금은 더 귀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좀 더 깊고(?) 농담적으로 설명하면 국가에 필요한 군..
위 토기는 경주 어느 왕릉에서 출토된 토기의 일부이다... 위 사진은 경주 황남동 적석목관분에서 출토되었는데, 30대 여성 귀족과 20대 남성의 인골이 포개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신라의 성문화는 '여성상위'였다. “신라의 경우 같은 성씨는 물론 형제의 자식이나 고종·이종 자매까지 아내로 삼았다.” 를 쓴 김부식은 “중국의 예속을 따진다면 도리에 크게 어긋난다”면서 신라의 풍습을 평했다. 신라의 leekihwan.khan.kr 사진의 출처 신라는 개방적인 사회였다.. 위 두 사진으로 신라의 성풍습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 역사상 존재하는 국가중 여왕이 나라를 통치한 적은 신라말고는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려시대 천추태후가 권력을 잡은적은 있으나 결코 왕의 자리에 오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