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정도전을 비롯한 고려말 신진사대부들이 성리학을 새로운 나라 조선의 근간으로 하여 건국되었다. 하지만 정도전은 조선이 성리학의 왜곡된 해석과 그에 따른 붕당 정치로 망하게 될 것을 알았을까? 성리학의 왜곡된 해석은 글쓴이의 주관적 입장이긴하지만 어쨌든 정도전이 무덤에서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일것이다. 성리학과 붕당 정치, 그리고 조선의 멸망한 원인에 대한 포스팅이다. 조선 성리학을 집대성한 이황과 이이(and 김종직, 조광조) 퇴계 이황은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사성과 대제학에까지 이를 정도로 학문적 완성도 높았던 퇴계는 '을사사화' 후 고향으로 내려와 독서에 전념하는 구도자의 생을 살아갔다. 그이후에도 선조에 이르까지 계속적으로 관직진출의 요청을 받았다. 1560년 고향..
퇴계 이황은 조선 중기인 1502년 안동에서 출생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퇴계 선생에 대한 지식은 아주 소박하다. 도산서원과 조선 성리학을 완성시킨 학자정도로만 알고 있다. 왜 퇴계 선생이 훌륭한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나만 그런 건가.... 내가 퇴계 선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이유는 바로 오늘 포스팅의 제목인 고봉 선생과의 사단칠정 논쟁 때문이다. 그러면서 알게 된 또 하나의 다른 이유.. 여기서는 다른 건 다루지 않고 퇴계 선생과 고봉 선생의 사단칠정에 대한 이야기를 대부분 하고자 한다. 퇴계의 학문은 영남학파라고 불릴 정도로 조선시대 당시 경상도 지방에서 최고의 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조선시대 붕당의 시작인 동. 서인의 분열을 일으킨 성암 김효원이 그의 제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