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토기는 경주 어느 왕릉에서 출토된 토기의 일부이다... 위 사진은 경주 황남동 적석목관분에서 출토되었는데, 30대 여성 귀족과 20대 남성의 인골이 포개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신라의 성문화는 '여성상위'였다. “신라의 경우 같은 성씨는 물론 형제의 자식이나 고종·이종 자매까지 아내로 삼았다.” 를 쓴 김부식은 “중국의 예속을 따진다면 도리에 크게 어긋난다”면서 신라의 풍습을 평했다. 신라의 leekihwan.khan.kr 사진의 출처 신라는 개방적인 사회였다.. 위 두 사진으로 신라의 성풍습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 역사상 존재하는 국가중 여왕이 나라를 통치한 적은 신라말고는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려시대 천추태후가 권력을 잡은적은 있으나 결코 왕의 자리에 오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