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의 동방원정과 헬레니즘 문명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들이 그러했듯이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제자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키운듯하다. 어린 나이에 마케도니아의 왕에 즉위한 알렉산더는 아버지 필리포스2세의 친구인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어린시절부터 철학, 정치, 과학 등 전분야에 걸쳐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때문이라고만 할 순 없으나 알렉산더는 '그라니코스 전투'를 시작으로 페르시아 다리우스 3세와의 전쟁, 그리고 이집트까지 그 영토를 확장시키며 그가 정복한 수많은 곳에 그의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한다. 그리고 그의 정복전쟁의 이동에 따라 그리스, 로마의 문명은 유럽 전역을 비롯해 아프리카까지 전해졌으며 그렇게 그리스 문명과 페르시아 문명, 오리엔트 문명은 서로 융합되어 독특한 ..
위 토기는 경주 어느 왕릉에서 출토된 토기의 일부이다... 위 사진은 경주 황남동 적석목관분에서 출토되었는데, 30대 여성 귀족과 20대 남성의 인골이 포개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신라의 성문화는 '여성상위'였다. “신라의 경우 같은 성씨는 물론 형제의 자식이나 고종·이종 자매까지 아내로 삼았다.” 를 쓴 김부식은 “중국의 예속을 따진다면 도리에 크게 어긋난다”면서 신라의 풍습을 평했다. 신라의 leekihwan.khan.kr 사진의 출처 신라는 개방적인 사회였다.. 위 두 사진으로 신라의 성풍습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 역사상 존재하는 국가중 여왕이 나라를 통치한 적은 신라말고는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려시대 천추태후가 권력을 잡은적은 있으나 결코 왕의 자리에 오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