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5일 어린이날.. 소파 방정환 선생을 기리며... 어린이 화이팅^^
- 곰돌이의 소소한 일상
- 2023. 5. 5.
“어른이 어린이를 내리누르지 말자.
삼십 년 사십 년 뒤진 옛사람이 삼십 사십 년 앞사람을 잡아끌지 말자.
낡은 사람은 새 사람을 위하고 떠 받쳐서만 그들의 뒤를 따라서만 밝은 데로 나아갈 수 있고
새로워질 수가 있고 무덤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 1930년 7월, 소파 방정환 선생의 강연 中
5월 5일은 어린이날....
어린이일때에는 그냥 빨간 날이어서 좋았고, 성인이 된 20대에는 이런 빨간 날도 일하느라 그냥 흘려보냈다..ㅠㅠ
이제 무엇인가 빨간날에 대해서 생각해 볼 여유 아닌 여유를 가지니 벌써 40대가 되었다.. 젠장.. >.<
위의 문구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천도교 회관 앞에 새겨져있다고 한다. 회관앞에 있으니 다음번에 종로를 가면 한 번 밖에서 몰래 봐야겠당..ㅎㅎㅎㅎ
위는 1931년 소파 방정환 선생이 만든 보드 게임판 '세계발명말판'이다.
이것은 1929년 소파 방정환 선생이 보드게임판이다.
난 어린이날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없다.
뭐.. 시골에서 자란 나 또래는 모두 그렇듯이(?) 특별히 어린이날이라고 부모님이 뭔가 선물을 사주거나 놀러를 가진 않는다.. 특히나 5월 5일을 전후로 5월은 논에 모내기를 하고, 4월에 밭에 심은 작물들 잡초관리를 해야 하고, 과수원에 잡초제거를 해야 하는 겁~~~~나 바쁜 달이다..ㅋㅋㅋㅋ
내가 기억하는 건 어린이날은 빨간 날이어서 tv를 하루종일 방영했다는 것.. 알지 모르지만 80년 전후생은 tv 방영이 오후 5시인가 애국가와 함께 시작한다.ㅋㅋㅋ 오전에 몇 시까지 방영을 한지는 학교 다니느라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12시 전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집 첫 tv는 흔히 말하는 로터리 흑백 tv였는데, 방송도 딱 4개 kbs1, kbs2, mbc 그리고 ebs 이렇게만 방영하였다. 서울방송(sbs)는 내 기억에 좀 더 시간이 지난 뒤 방영을 해줬는데, 우리는 대구, 경북지방이어서 메인 프로그램은 sbs 방송을 하였지만 중간중간 뉴스나 일부 방송은 대구방송인 tbc가 방영되었다.
소파 방정환 선생관련해서 자료를 찾아보다 마음에 드는 뉴스를 발견했다.
2015년 5월 5일 jtbc 뉴스 브리핑에서 손석희 앵커가 했던 말이라고 한다.
뉴스룸 2부의 문을 엽니다.
"어른이 어린이를 내리누르지 말자. 삼십 년 사십 년 뒤진 옛사람이 삼십 사십년 앞사람을 잡아끌지 말자. 낡은 사람은 새 사람을 위하고 떠 받쳐서만 그들의 뒤를 따라서만 밝은 데로 나아갈 수 있고 새로워질 수가 있고 무덤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1930년 7월 어린이 인권운동가 방정환.
'어린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만든 분, 소파 방정환 선생이 한 강연에서 했던 말입니다.
서울 종로구 천도교회관 앞에도 새겨져 있지요. 개인적으로는 매우 인상 깊어서 이미 한두 번 인용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오늘(5일) 모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소개해드렸습니다.
같은 강연에서 방정환 선생은 이런 말도 했습니다.
"싹을 위로 보내고 뿌리는 일제히 밑으로 가자"
싹이 위로 가고 뿌리가 밑으로 가는 것은 사실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러나 80년 전에 남긴 방정환 선생의 이 말들이 지금까지도 유효한 것은 세상의 이치와는 달리 뿌리가 올라와 목청을 높이는 사이에 싹들은 그 밑에 눌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삼사십 년 뒤진 옛사람들이 삼사십년 앞선 새사람들을 잡아끌지 말라. 먼저 산 사람들이 사실은 뒤져 있다는 것. 당시로서는 놀라울 수밖에 없는 소파 선생의 통찰력은 바로 여기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어린 새사람들의 미래를 빌려 쓰고 있는 오늘 우리 어른들의 모습을 다시 한번 돌아봅니다.
어린이날. 앵커 브리핑이었습니다.
이분이 1899년에 태어나서 1931년에 타계하셨으니 1920년~30년이 이 분의 주 활동했던 시기였을 것이다.
30대 초반에 돌아가셨으니 20대가 주 활동했던 나이대일 것이고, 이 시대, 이런 나이에, 저런 생각을 한다는 게 참... 대단하다기보다는 깨어있다고 해야 하나...
아직 여성인권도 100% 존중받지 못하는(?) 시대인데 100년 전에 이분은 어린이의 인권을 주장했다.
'어린이날'과 함께 '어린이'라는 말을 처음 만들었다고 하는데, 일제 강점기 시절 참혹한 현실에서도 모든 어린이들이 골고루 행복을 누리며 민족적 자부심을 잃지 않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했다고 한다.
이분은 20대에 이미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밖으로 표현하며 자신의 이름을 100년이 넘도록 오롯이 남겼는데, 40이 넘어가는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_-;;
그냥.... 이런 날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