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천주교가 전파될 당시 신해박해, 신유박해등으로 수많은 천주교도들이 희생되었다. 흔히 알고 있는 김대건 신부는 한국인 최초의 로마 가톨릭회 사제이며, 그는 26세의 나이에(1846년 9월 16일) 서울 한강변 새남터에서 국문 효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렇게 천주교는 수많은 희생자들 위에서 서서히 조선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그럼 불교는 언제, 어떻게 한반도에 전파되었을까? 이번 포스팅은 신라에 불교를 전파한 내가 아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교자 이차돈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대 국가(신라)의 종교 한반도의 고대 국가는 토네니즘 신앙에서부터 출발하였다. 고대 국가는 군장형태의 부락집단생활에서 실질적인 국가를 갖추기 시작하던 시기인데, 이 당시에는 하늘에 제를 올리는 제사장의 권한이 막강한 시기였다. 드라..
5편에 이은 한반도 고대국가의 건국과 병합, 멸망을 이어갑니다!!!! 백제, 마한 백제는 역사에서 배웠듯이 주몽과 소서노의 아들인 온조가 소서노와 함께 한반도 남쪽으로 이동하며 지금의 한강유역에 자리를 잡고 건국한 국가이다. 비류와 온조는 주몽과 소서노의 아들로 고구려 건국 시 주몽세력과 함께 고구려의 근거지인 졸본지역의 유지로서, 주몽에 이어 고구려 2대 왕으로 추대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주몽의 첫 번째 부인의 아들인 유리의 등장으로 졸본세력은 왕위 계승전에서 밀려나게 되고, 소서노는 그의 아들들과 그녀를 따르는 졸본 일부 세력들을 데리고 한반도 아래로 남하하였다. 비류와 온조는 각기 다른 지역에서 나라를 일으켰으나 후에 비류의 백성들을 온조가 모두 거둬들이면서 그들 형제는 하나의 국가를 건설할 수 있..
고대 삼국의 전성기 신라는 고대 삼국중 가장 뒤늦게 번성한 국가이다. 백제가 근초고왕 시절인 4세기에 최전성기를 구가하며 한강 유역을 비롯하여 일본에까지 그 영향력을 발휘할 때 신라는 아직 정식적인 왕이 등장하지 않았다. 당시 신라는 왕이라는 칭호대신 이사금, 마립간이라는 족장의 우두머리 정도로 여겨졌다. 백제의 전성기를 지나 두 번째 전성기를 맞이한 국가는 바로 고구려이다. 고구려는 광개토태왕시절 침략전쟁을 통해 국가의 영토를 계속적으로 늘려갔고, 그의 아들인 장수왕 때에 고구려 역사상 최대영토를 차지하게 된다. 광개토태왕은 백제와의 국경선 전쟁 시 백제 아신왕을 제압하며 백제가 보유한 한강 일대를 접수하였고, 신라가 일본으로부터 침입을 받을 때 군사를 보내 신라를 도와주면서 그 영향력이 최대치로 뻗어..
위 토기는 경주 어느 왕릉에서 출토된 토기의 일부이다... 위 사진은 경주 황남동 적석목관분에서 출토되었는데, 30대 여성 귀족과 20대 남성의 인골이 포개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신라의 성문화는 '여성상위'였다. “신라의 경우 같은 성씨는 물론 형제의 자식이나 고종·이종 자매까지 아내로 삼았다.” 를 쓴 김부식은 “중국의 예속을 따진다면 도리에 크게 어긋난다”면서 신라의 풍습을 평했다. 신라의 leekihwan.khan.kr 사진의 출처 신라는 개방적인 사회였다.. 위 두 사진으로 신라의 성풍습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 역사상 존재하는 국가중 여왕이 나라를 통치한 적은 신라말고는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려시대 천추태후가 권력을 잡은적은 있으나 결코 왕의 자리에 오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