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에 이은 한반도 고대국가의 건국과 병합, 멸망을 이어갑니다!!!!
백제, 마한
백제는 역사에서 배웠듯이 주몽과 소서노의 아들인 온조가 소서노와 함께 한반도 남쪽으로 이동하며 지금의 한강유역에 자리를 잡고 건국한 국가이다. 비류와 온조는 주몽과 소서노의 아들로 고구려 건국 시 주몽세력과 함께 고구려의 근거지인 졸본지역의 유지로서, 주몽에 이어 고구려 2대 왕으로 추대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주몽의 첫 번째 부인의 아들인 유리의 등장으로 졸본세력은 왕위 계승전에서 밀려나게 되고, 소서노는 그의 아들들과 그녀를 따르는 졸본 일부 세력들을 데리고 한반도 아래로 남하하였다. 비류와 온조는 각기 다른 지역에서 나라를 일으켰으나 후에 비류의 백성들을 온조가 모두 거둬들이면서 그들 형제는 하나의 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의 초기 이름은 '십제국'이라 하였다. 원래 십제국은 한반도 서쪽지방을 지배하던 마한의 54개 연맹체의 일부였으나 고구려에서 남하한 온조세력의 철기문화에 병합되었다. 이렇게 십제국으로 시작한 백제는 본디 한반도의 삼한 세력 중 가장 큰 정치 집단인 마한을 6세기 경 최종 병합하면서 백제의 세력은 지금의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으로한 국가 경계선을 만들게 된다. 백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별도의 포스팅에서 다시 거론하기로 한다.
마한은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를 지배하던 삼한세력인 마한, 진한, 변한 중 하나의 세력으로 54개의 정치집단으로 이루어진 부족연맹체이다. 한강 유역부터 충청도와 전라도까지를 지배하던 정치세력으로 삼한 중 가장 강력한 정치집단이었다. 백제를 건국한 온조가 남하하기 이전까지 한반도 서쪽지역을 관장하든 마한 세력은, 온조 세력의 철기문화에 대항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병합되었다. 마한은 당시까지 청동기 문화가 주를 이루었기에 온조 세력의 철기 문화를 이겨낼 수 없었다. 마한에 대한 기록은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삼국사기 등 일부 사서에 마한의 연맹세력 가운데 목지국이 중심 역할을 했다는 기록 정도만 남아있는 상태이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한반도에 중국의 문자나 문화들이 많이 전래되지 않은상태이고, 삼국의 통일이 백제가 아닌 신라였기 때문에 기록자체가 미미한 부분도 있다.
신라, 진한, 변한
신라는 고대 한반도 동쪽에서 시작된 군주제 국가이다. 통일신라 기간까지 약 1천년간 56명의 군주를 거치며 한국역사를 통틀어 가장 오랜 시간 존속하여 흔히 '천년왕국'이라는 별명과 함께 황금 문화로도 알려져 있다. 신라는 고대 삼국중 가장 빨리 건국된 나라이기도하다.
당시 한반도는 철기 문화가 아닌 청동기 문화가 전파되던 시기로, 권력을 가진 부족장들이 등장하며 기원전 8세기를 즈음하여 지금의 경주지역에서 세력을 키워나갔다. 그리고 기원전 2세기경, 중국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멸망한 (고)조선의 유민들이 남하하였는데 이들은 철기문화를 비롯해 당시 한반도의 청동기 문화보다 앞선 문물을 보유하고 있었다. 조선의 유민들은 경주지역에서 6개의 부족을 형성하였는데, 그들이 양산촌(이씨), 고허촌(최씨), 친지촌(청씨), 대수촌(손씨), 가리촌(배씨), 고야촌(설씨)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조선의 유민들에 의해 철기 문화가 전해지게 되고 기원전 57년 이들 6개 부족은 협의하에 가장 큰 부족인 양산촌의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며 군장국에서 고대국가로 나아가게 된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신라는 경주지역을 중심으로한 소규모 연맹체에 불과하였다. 신라를 건국한 6부족 중심세력은 점점 그들의 세력을 안정적으로 발전시키며 신라의 중요 귀족사회를 이루는 집단으로 발달하게 된다. 신라만의 독특하고 폐쇄적인 제도인 골품제가 발생한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신라는 임금의 칭호가 초기에는 거서간으로 시작해서 차차웅, 이사금, 마립간등으로 점차 변했는데 신라 초기에는 박 씨, 석 씨, 김 씨의 성씨가 번갈아가며 왕위를 계승하였다. 실질적인 왕의 칭호는 지증왕시절부터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지증왕 이전까지의 신라는 고대국가라기보다는 강력한 정치적 집단으로 보는 편이 맞을듯하다. 거서간은 '귀한사람' 혹은 '군장', '제사장'을 의미하는 말이며, 차차웅은 '스승'을 뜻하는 말이다. 이사금은 신라말 '잇금'에서 유래하였는데, '치아수가 많은 연장자'를 뜻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임금'이라는 표현의 원형이 되는 말이 바로 이사금이다. 마립간은 경주 김씨의 왕위 독점과 중앙집권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내물(마립간)에서부터 6대에 걸쳐 약 150년간 사용되었으며 이때부터서야 비로소 군장국가를 벗어나 서서히 고대국가로 나아가는 중앙집권화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진한은 한반도의 경상도 일대를 지배하던 정치 세력이다. 이들은 당시 고대 한반도의 토착세력이던 '진'을 계승한 부족국가이다. 진한은 12개의 부족국가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경주 세력을 대표하던 사로국이 후에 (고)조선에서 유민온 세력들인 6부족과 병합하여 신라를 건국하게 된다. 하지만 후대에 와서 사로국의 유물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유물이 (고)조선 계통의 유물로 나타나서 당시 한반도의 토착세력이던 '진'또한 (고)조선 계열의 민족으로 추정되고 있다. 진한에 대한 기록은 마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이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후에 신라와 병합된 부족연맹들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음즙벌국, 압독국, 실질곡국, 초팔국, 비지국, 다벌국, 소문국, 감문국, 골벌국, 우유국, 기저국, 불사국등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당시 이들이 사용한 언어는 같은 한반도의 마한과 달랐다고 한다. 이는 진한의 토착세력 역시도 중국의 진나라가 멸망하면서 남쪽으로 이주해 오면서 진한의 토착세력들과 섞이며 그들만의(?) 언어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높다. 신라라는 나라 자체가 외부 세력들에 의해 건국되었음을 이해하면 그들의 언어 역시 당시 마한세력보다는 중국의 영향을 좀 더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변한은 지금의 전라도 남쪽과 경상남도 지역으로 12개의 부족 연맹체로 이루어져있었으며, 이들이 후에 '가야'로 발전하게된다. 변한은 현대에 와서 학자들의 연구결과 진한과 문화와 풍습등에서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고고학적으로 변한과 진한은 크게 구분 지을 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 지금 학계의 주장이다. 변한 지역은 철광석 생산지로 유명하여 후에 변환을 이어받은 가야는 그들만의 훌륭한 철기문화를 발전시키게 된다.
(본 포스팅은 글쓴이의 야주 얕은 지식과 구글, 다음, 나무위키등에 있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