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역사 여행 '종묘' 두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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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임시정부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은 아직까지 진보와 보수사이에서 건국일을 가지고 서로 말장난(?)을 하고 있다. 우리 대한민국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일까. 그리고 조선의 근간이 되는 종묘처럼 대한민국의 근간이 되는 곳은 어디일까....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종묘'에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며 두 번째 포스팅 start!!!!

 

 

2. 대한민국의 적통성

 

(두번째 포스팅은 본인이 포스팅을 작성하고도 무슨 말인지 헷갈리는 포스팅입니다.. ^^)

 

국가를 건설한 첫 번째 왕은 국가를 건설한 이래 자신이 왜 국가를 건설했는지, 그리고 이 국가의 건설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국가 건설의 당위성을 증명하기 위해서 우리나라의 경우 (고) 조선의 단군신화, 고구려의 주몽신화가 존재하고 신라와 가야의 경우는 알에서 사람이 태어났다는 얼토당토 한 신화를 내세우며 자신들이 세운 국가의 당위성을 증명하고자 했다. 왜 그 시기에 자신들이 세운 국가가 필요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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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않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본관은 전주이다. 하지만 우리가 배운 역사를 기반으로 하면 이성계는 함경도에서 자신의 세력을 키워서 고려의 실력자가 된 후, 조선을 건국하였다. 이성계의 조상은 원래 전주에 뿌리를 내리고 살던 가문이었다. 정확한 역사기록에는 없지만 당시 전주의 권력가와의 다툼에서 패배한 이성계의 조상은 자신들의 가문사람들을 거느리고 함경도로 이주하게 되고, 거기에서 뿌리를 내리며 다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이성계를 여진족이라고 폄하(?)하는 일부 주장들은 이성계의 조상이 함경도에 정착하면서 원나라의 벼슬을 하게 되는데, 당시 그 지역은 여진족과 인접한 지역으로 이러한 복합적인 상황들이 맞물려 그의 삼한에서의 정통성을 깎아내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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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성계 가문과 우호적인 여진족도 있었다. 우리가 흔히 하는 이성계의 오른팔겪인 이지란의 경우 여진족 출신으로 원래 이름은 퉁두란이다. 이렇게 우호적인 여진과의 관계도 있지만 대부분 고려와 여진의 관계는 불편함을 유지하였다. 조선 세종시절 김종서가 북방을 정벌하며 6진을 개척한 이유에서만 보더라도 여진과 고려의 관계가 좋은 관계는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태조 이성계는 이러한 본인 조상들의 태생적 출신을 명확하게 하면서 본인이 조선을 건국하는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라도 본인의 조상들에 대해서 좀 더 근사하고 그럴듯한 story를 입히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종묘는 이렇듯 이성계 본인의 6대손부터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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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대에 생각하면 어쩌면 불필요한 논쟁일수도 있지만 당시로 따지면 그러한 사소한 하나하나가 단순히 본인의 역사가 아닌 국가의 정통성을 확립할 수 있는 기조가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특히나 조선시대가 성리학을 최우선으로 하는 유교사회로 정착되면서 조선은 중국과의 사대주의 노선에 맞춰 대부분의 사회적, 문화적 부분을 중국에 따라가게 된다. 뭐.. 이성계가 위화도 정벌을 반대하면서 주장한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맞서 이길 수 없다'는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당시의 군사력을 비교해 보더라도 조선이 새로이 떠오르는 명나라와 대치하는 건 나라의 존망이 걸린 일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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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종묘는 조선시대 국왕의 역사를 말해준다. 그리고 그런 역사를 기반으로 조선의 귀족(양반)들은 본인들의 역사를 거기에 끼워맞추게된다. 당시 일반 서민들은 국가가 고려에서 조선으로 변하며 좀 더 나은 세상을 원했겠지만 국가를 운영하는 위정자들은 그런 것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새로운 나라 조선에서 자신들의 정통성을 유지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그로인해 붕당정치로 이어지게 되고 그 결과는 조선의 결말을 알듯이 국왕과 결착한 특정 가문의 집권으로 조선은 변화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채 망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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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종묘에 대한 인식을 다분히 비난만 하고 비관적으로만 바라볼 수는 없다. 어쨌든 한 나라 역사의 기준이 되는 시발점이 종묘이므로 어느 정도의 현대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현대적인 해석이란 과거의 역사를 좀 더 냉정하고 정확한 사실을 기반으로 다시 한번 평가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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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국가의 정통성을 '종묘'에서 찾는다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조선시대는 왕정시대이므로 왕위세습이 필수였기 때문에 국가의 정통성이 바로 왕위세습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의 국가의 정통성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찾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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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조선의 궁궐들과 종묘 등 현재 남아있는 조선 왕족들의 흔적을 찾아다니면서 조선 왕족이나 귀족인 양반들이 아닌 일반 평민에 대한 자료나 흔적이 너무나도 적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고, 그 승자 중에서도 일부 특권층의 기록이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비주류(아웃사이더??)의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수백 번의 외세 침략을 받으면서 많은 역사의 흔적이 소실되지 않았던가..  정말 일반 평민들도 본인들이 정통성을 왕족이나 양반들과 같이 생각했을까... 단순한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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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대한민국은 상해임시정부에서 시작되었다. 일부(?) 세력들이 다른 주장을 하고 있긴 하지만 헌법 전문에 아래와 같이 명시되어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ㆍ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4ㆍ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ㆍ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헌법전문-1987년 10월 29일)

 

 

우리 헌법 전문에는 위의 내용처럼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시작으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위 헌법전문은 1987년 6.10 항쟁 이후 제정된 것이다.

그럼 우리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4.19 민주이념을 계승할만한 역사적 자료나 흔적이 있는지 고민해 보았다. 상해 임시정부의 경우 근거지가 일제 침략으로 인해 중국 상해이므로 대한민국 영토에 당시의 건물이나 흔적을 발견할 수는 없다. 그럼 1960년 4월 19일에 일어난 4.19 민주화운동에서 그 정통성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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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유튜브에서 어떤 분이 서울의 YMCA 건물을 언급한 적이 있다. 서울의 YMCA 건물은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진행 시 수많은 민주화 운동원들의 피난처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할 수 있던 근본이 되는 민주화 운동... 그 중심에서 그들의 피난처 혹은 안식처 역할을 했던 서울 YMCA 건물... 지금도 서울 종로에 가면 YMCA 건물이 그대로 있다. 본인 역시 그 방송을 들으면서 일정 부분은 동의하는 내용이었다. 현재의 대한민국이 명목상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싸우고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친일세력이 제대로 청산되지 못하면서 이승만 정권이 들어선 후 그 기득권 세력이 여태까지 국가 권력의 중심에 서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이러한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닐까..  오랜만에 방문한 서울 '종묘'를 거닐며.. 외국인의 질문을 받으며.... 두서없이 끄적인 글이 이렇게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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