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야구가 역사다!! 최동원과 이대호의 역사를....'부산근현대 역사관' 그리고 피란수도 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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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야구를 좋아하지만 편식(?) 체질이 있어서 한화 야구만 좋아한다....ㅎㅎㅎㅎ 롯데 자이언츠를 싫어하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아하는것도 아니다... 하지만 부산은 야구가 역사다... 즉.. 최동원과 이대호가 곧 부산의 역사인것이다..ㅎㅎㅎ 이 박물관을 보고 부산의 야구사랑을 실제로 느끼게된 '부산근현대 역사관'이다.

 

 

 

 

일을 마치고 ktx까지 시간이 있어서...부산에 왔으니 이번엔 국밥으로 점심을 먹고.... 안내판을 보니 눈에 들어온 '부산근현대 역사관'.... 난 처음 박물관 이름만 보고 그냥 부산의 역사를 담은 박물관이겠거니했다.....그렇다... 대한민국에서 야구를 역사에 담을만한 도시는.... 부산밖에 없는것이었다.. ㅠㅠ

 

 

 

 

 

 

1층에 있는 'CASA BUSANO' 아 와... 그냥 한글로 쓰면 안되나...>.<

 

 

 

 

그 어디에도 야구를 전시했다는 문구는 없다.... ㅜㅜ

 

 

 

 

이 정도까지는 이해할만했다... 뭐... 어떤 스포츠는 그 시작이 있기에.... 또 부산이 워낙 야구로 유명하기도하고..ㅎㅎㅎ

 

 

 

 

 

 

 

이제 서서히... '부산은 야구다'로 접어든다.. 저 김용희군이 롯데 감독을 지낸 김용희 감독을 말하는것일 것이다.

 

 

 

 

초창기에 사용하던 야구 용품과 야구운동복....

 

 

 

 

아래는 황금사자기 전국 야구대회에서 우승한 깃발이다.. 왠지.. 내가 국민학교 시절에 자주보던 디자인들이다.. -_-;;

 

 

 

 

 

 

제 45회 화랑대기 전국 야구대회 우승의 깃발!!!!

 

 

 

 

제 76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겸 주말리그 왕중왕전 '우승'....

 

 

 

 

아무리 야구를 안보더라도 베이징 올림픽때는 야구를 본 사람들이 많겠지.. ㅎㅎㅎ

 

 

 

 

이제 부산 야구의 중심인 최동원과 이대호를 만나보러.. ㄱㄱㄱ!!!!!

 

 

 

 

제 50회 화랑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와 제 32회 대통령배 전국고교 야구대회 우승 기념 볼.... 당시 1970년대에서 80년대는 국가차원에서 야구를 장려하는 시기인데 이는 전씨 아저씨가 야구를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지네들의 독재에 대한 원성을 밖으로 돌릴 돌파구가 필요해서이다.. 88 서울 올림픽도 그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그래서 당시 대회이름에 '대통령배'가 들어가면 거의 최고의 대회를 뜻하는 것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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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투수는 선동렬, 최고의 타자는 이승엽, 최고의 야구선수는 이종범이라는 얘기가 있다..(아마 있을것이다....^^) 최동원 선수는 투수, 타자, 선수를 넘어선 가장 야구에 진심인 사람으로 기억된다. 

 

 

 

 

 

 

내가 야구를 보기 시작할때 이미 최동원 선수는 거의 은퇴시기? 은퇴를 한 시점이어서 그의 플레이를 직접적으로 본 기억은 없다.

 

 

 

 

하지만 최동원 선수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혼자 4승을 거두며 롯데를 우승시킨건 정말.. 지금 다시 봐도 믿기지 않는... 아니 믿을 수 없는장면이다....

 

 

 

 

한국시리즈는 7전 4선승제이다.. 즉... 7게임 중 4게임을 이겨야 우승하는건데.... 최동원 선수가 롯데가 이긴 4게임에 모두 출전하여 승리 투수가 된것이다...-_-;; 

 

 

 

 

 

 

물론.. 최동원 선수를 제외하고서라도 부산에는 김용희, 윤학길, 박정태등 당대 유명한 선수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  이대호 선수는 일단 별명에서 모든걸 압도한다... 4번 타자도 대단한데 조선의 4번 타자라니... ㅠㅠ 특히나... 9경기 연속홈련은 당시 실제로 하루 하루 뉴스를 통해서 접했는데.... 최고였다..... ㅎㅎㅎ 그리고 공격 7개부분 석권도.... 이 선수가 도루에만 욕심냈다면 한국 최고의 타자는 이승엽이 아닌 이대호로 바뀌었을 것이다..ㅋㅋㅋ

 

 

 

 

 

 

 

 

야구는 이쯤해서.. 마무리하고...^^ 제1 상설전시실로 들어서면 이제... 진짜 부산의.. 삶의 역사를 볼 수 있다.

 

 

 

 

광복 후 건국준비위원회와 치안대는 자채활동을 통해 부산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미군정기 동안 부산은 인구 증가와 식량부족, 고물가, 실업난등으로 지역민의 삶은 더욱 곤궁해졌다. 1950년 6월 전쟁이 발발하자 국회와 대통령, 정부가 부슨으로 내려오고, 군사시설과 각국 대사관, 유엔기구, 학교 등도 부산에 자리 잡았다. 부산은 사람과 물자가 모이는 행정과 정치, 재건의 중심지였다. 전쟁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 부산을 향한 행결은 끈없이 이어졌다. 원도심 인근의 공터와 야산은 피란민의 천막으로 뒤덮이고, 물은 부족하고 불은 넘쳐났다. 생존을 위해 돈벌이가 될 만한 일은 닥치는 대로 해야했고, 희망을 놓지 않고 배움을 이어갔다. 이 시기 부산은 모두에게 생존과 희망의 도시가 되었다.(생존과 희망의 도시 설명 중)

 

 

 

 

 

 

 

 

 

 

 

 

 

 

 

 

전쟁을 전후하여, 대한민국의 전후 복구와 재건을 돕기 위한 유엔군과 유엔산하 국제기구, 민간원조단체의 구호와 원조, 재건 활동 등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국제연합한국재건단(UNKRA)은 한국의 경제 성장과 재건을 위한 장기적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행하였다. 유엔한국민사원조사령부(UNCACK)는 피란민 통제와 구호, 경제 현황과 인구 조사, 전염병 통제와 한국 의료진 교육 등 다양한 민사업무를 전개하였다. 국제연합민사원조사령부(UNCAC)는 구호물자 도입과 피란민 구호, 난민 재정착 지원, 직업 훈련과 농사 지도 등의 광범위한 활동을 펼쳤다. 휴전 이후에는 한국민사원조사령부(KCAC)로 개편되어, 한국 정부부처와 협력하며 다양한 민사업무를 수행하였다. 이밖에도 유니세프, 적십자 등의 국제연합 산하기구나 민간원조단체의 원조와 구호가 있었다. (국제기구의 원조와 재건 활동 설명 중)

 

 

 

 

 

 

 

 

 

 

양달석 작가의 '판자촌'

 

 

축음기와 음반

 

 

 

 

 

 

피란수도 부산의 위생문제는 심각하였다. 상하수도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공동 변소에는 오물이 넘쳐나고 변소앞에는 늘 사람들의 긴 줄이 이어졌다. 빨래도 쉽지 않았다. 공동 수도와 우물로는 부산의 식수난은 해결되지 않았다. '물전쟁'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식수난은 심각해져 공동 수돗가에 길게 늘어진 '양동이줄'은 일상이 되었고 '물장사'가 등장하기도 하였다.(물 부족과 위생 문제)

 

이거 사용하신적 있으신 분????은 분명 시골 출신임....ㅋㅋㅋㅋㅋㅋ 나도 국민학교 시절까지만해도 사용함......^^ 아.. 내 나이... ㅠㅠ

 

 

 

 

 

 

 

밀수품(1950~1960년대 부산본부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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