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포스팅 특집 제 4탄 !!!!
아래 포스팅되는 내용은 본인이 알고 있는 얕은 지식과 인터넷 서치와 예전에 읽은 여러 책들의 기억들이
혼합되어있다..온전히 개인적인 생각을 포스팅하는것이니 이 포스팅을 읽으시는 분들은 오해가 없으시길 바라며....
내용의 일부출처 : 위키백과, 김용운 - 천황이 된 백제 왕자들 및 다수..
백제가 언제부터 왜와 외교 관계를 맺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는 전혀 기술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따르면 진구(神功)황후 46년(366)에 양국이 최초로 국교를 맺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백제와 일본의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근초고왕대로, 국교 수립 후 양국은 꾸준히 사신을 교환하며 문화를 교류하였다. 1,50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 곳곳에는 백제의 문화가 남아 있다.백제가 일본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 것은 발달된 선진 문화와 학문의 전파 때문이다. 학문과 기술을 전하며 일본인의 스승으로 남은 백제인들,그 대표적인 이가 바로 왕인(王仁) 박사를 비롯해 궁월군(弓月君), 아직기([阿直岐) 등을 꼽을 수 있다. (내용의 출처 - 위키백과)
백제는 4세기 무렵 동아시아의 강력한 고대국가를 건설하였다.백제의 4세기 최전성기를 이룬 왕은 우리가 국사시간에 많이 배운 '근초고왕'이다..여기서 우리는 30대 중반에서 40대 후반정도의 나이가 될것이다...
나는 암기시대의 교육을 받았다. 예전 중학교 국사시간에 선생님이 알려주신 외우는 방법..백고(무)신의 가격은 456원이다...
이 말은 즉.. 백제의 전성기는 4세기, 고구려는 5세기, 신라는 6세기라는 뜻이다..기가 막히지 않나.. ㅋㅋㅋㅋ 우리 국사선생님 짱이다...
다시 본론으로.. -_-;;
근초고왕은 346년에 즉위해 375년에 사망하였다...기간은 대략 20년정도이다..이때 백제는 영토적으로도 신라와 고구려를 위협하며 백제의 최대 영토를 차지하게된다.또한 백제는 지리적으로 서해를 끼고 있었기에 이 당시 중국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5호 16국 시대의 혼란기였다..백제는 이러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상대적으로 신라와는 달리 중국의 발전된 문명을 일찍 받아들였고, 이러한 발전된 문명을 일본으로 전할 수 있었다...반면 고구려는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백제에 비해 중국과의 상호교류보다는 영토 정복 전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고구려 광개토태왕 시절을 생각해보면 왜 중국의 수나라, 당나라가 고구려를 못잡아먹어서 안달인지 어느정도 이해는 할 수 있다...
일본 고대국가의 시작 '야마토 정권' 일본의 고대국가의 시작은 '야마토 정권'이 그 시발점이다. 고대 삼국이전.. 가야가 아직 멸망하기 전.. 가야역시 일본과의 교류가 빈번하였다..특히나 가야의 일부 세력은 일본 큐수지방의 비옥한 평야지대로 진출하며 그 세력을 넓혀갔다..하지만 이때 비류계의 백제가 일본으로 진출하며 큐수에서 가야계를 몰아내고 담로국과 쿠나국을 건설한다. 비류계의 백제에 패한 가야는 나라지방으로 이동하여 야마토 정권을 수립하게 되는데.. 이 가야계인 진무덴노가 일본의 제1왕조를 연 사람이다. 가야계가 이 지역을 제압할 수 있었던 절대적인 이유는 철기의 사용이다.. 그 당시만하더라도 신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고대 국가는 청동기를 사용하였다..하지만 철기문화가 일찍 발달한 가야는 강력한 철기를 이용하여 군사적 우세를 점할 수 있었고, 이러한 군사적 뒷받침으로 작은 부족이아닌 '야마토 정권'을 수립할 수 있게된것이다.
백제의 본격적인 일본 진출... 오진 덴노...일본의 역사는 신공왕후가 원래 일본에 거주하여 신라를 정벌하고 일본으로 돌아와
오진천황을 낳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신공왕후는 원래 백제사람으로 가야에서 활동하다 광개토태왕에 밀려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중국서적에 기록되어 있다. 신공왕후와 함께 이동한 백제계는 기존 쿠나국을 세운 백제 세력과 연합해 일본의 제2왕조를 열게된다. 신공왕후의 남편은 덴노라고 하는데 실존인물이 아닐 가능성이 크며, 오진 덴노를 출산하여 오진덴노가 제2왕조의 왕이 되는데 오진이란 한자로 웅진과 같은 말이라고 한다.. 웅진은 옛 충남 공주를 가르키며 웅진에는 수촌이란 지명이 있는데 이 수촌을 일본어로 읽으면 미쓰홀.. 즉 미추홀이 된다. 미주홀은 지금의 인천으로 추정되며 미추홀이 인천에서 웅진으로 이동하였으며 이는 비류백제계의 이동경로와 유사하다.
백제계의 제3왕조.... 계체 덴노.. 오진 왕조 말기 혼란을 틈타 여러 호족들이 서로 왕을 옹립하는등 혼란기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때 백제 개로왕은 그이 동생 곤지를 일본으로 파견하는데 임심한 자신의 후궁을 딸려서 일본에 파견하였다. 곤지를 일본말로 적으면 게이타이.. 즉 계체가 된다. 곤지가 일본에 도착하여 낳은 이가 바로 백제 무령왕이다.. 원래 일본을 다스릴 임금을 만들기위한 목적으로 후궁을 보낸것이었으나, 후에 백제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백제로 돌아와 무령왕으로 즉위하였다.무령왕이 즉위하자 곤지는 무령왕의 이름이 적힌 거울.. 즉 인물화상경을 하사했는데 그 거울이 일본에서 17개가 발견되었다.곤지는 이러한 방법으로 세력을 구축하고 천황이 되었다.. 위 내용은 김용운 교수의 '천황이 된 백제의 왕자들'에 나오는 내용이다. 물론 이 내용을 온전히 모두 사실로 받아들일 순 없다.. 본인 역시 흥미있는 내용이지만 100%다 진실이라고 주장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근초고왕 시절 백제가 일본에 발달된 문물을 전해준건 사실이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 배운 왕인 박사와 아직기가 이 시대 인물들이다.
실제 왕인 박사는 근초고왕 이후의 사람이다. 그는 32세 무렵 일본국의 초청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우리가 흔히 아는 '아스카 문화'의 시발점이 된다. 아스카 문화는 야마토 정권시절 일본이 아시아 대륙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던 시기....
즉, 쇼토쿠 태자가 활동하던 시기이다... 하지만 이 쇼토쿠 태자에 대한 내용이 정확하지 않다... 마굿간에서 태어났다는 설부터.. -_-;; 백제인이라는 설까지.. (ㅠㅠ) 어쨌든 일본은 이 아스카 문화로부터 일본의 문화가 정착되었다고 보는게 정설이다.
왜냐하면 왕인 박사가 일본에 전해준것이 바로 논어와 천자문이기때문이다.. 일본어인 히라가나 역시 한자에서 파생된 글자이다.. 이렇듯 왕인 박사가 백제에서 일본으로 중국과 백제의 문화를 전파했듯이... 왕인 박사 이전에 아직기라는 인물이 있었다.. 일본서기에 따르면 백제왕이 아직기에게 말 2필을 주어 일본의 오진 덴노에게 선물하였는데, 이때 아직기가 일본에게 승마술을 전했다고 알려졌다. 오진 덴노는 아직기가 경서에 밝은것을 알고 황태자의 스승으로 삼고, 혹 백제에 더 뛰어난 학자가 있는지 묻자 아직기는 왕인 박사를 추천하였다. 『일본서기』는 왕인 박사를 일컬어 ‘후미노비토(書首)들의 선조’라 했고
『고사기』는 ‘후미노니토(文首)들의 선조’라고 적고 있다. 오사카의 츠루하시역에는 ‘왕인 박사 묘’가 있다. 왕인 묘의 진위 여부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옛 기록과 주민들에게 구비전승의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왕인 박사가 전달한 『논어』와 『천자문』은 일본 지방 라이온스 클럽에서 청동 조형물로 제작하여 전시되어 있다. 왕인 박사는 아직도 일본 문화의 시조로 존경받으며, 후세 사람들은 에도시대부터 이 자리에서 제를 올리며 왕인 박사를 기리고 있다. 위 내용은 일본서기에 있는 내용이 거의 대부분이다.. 우리 나라 역사에서 백제는 패자이기때문에 그 자세한 기록이 나와있지 않다.. 허나 일본서기에서 백제와 왕인 박사는 일본의 고대 문화를 정착한 주요인물이기에 보다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듯 하다.. 물론 중간중간 서로 잘 맞지 않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뭐.. 그 시대가 문자로 정확히 남겨진 시대가 아니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또하나 재미있는 가설인 천황 백제인설은 6~7세기경 백제의 왕족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천황이 되었다는 설이다.그 배경은 5세기까지 일본은 한나라와 한국, 특히 백제와 많은 교류를 했으며, 유전적인 혈통도 서로 비슷해졌다. 하지만 교류는 상호적인 것이며 어느 정도였는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역사서 쇼쿠니혼기(속일본기)에 따르면 간무 천황의 어머니는 백제 무령왕의 후손이다.
간무 천황의 직계 후손인 아키히토 천황은 2001년 12월 23일 기자 회견에서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다"면서 천황으로는 처음으로 이를 인정하는 말을했다. 게이타이 천황....게이타이.. 즉 앞서 말한 곤지이다..그의 아들이 무령왕.. 간무 천황의 어머니는 무령왕의 후손.. 이렇게 되는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백제 성왕이 긴메이 천황과 동일 인물이라는 가설도 내놓았다.
540년(성왕 18) 고구려를 공격하다 패한 성왕이 왜로 망명해 천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가설은 좀..... 믿기 힘든 부분이 많다.. 통상 우리는 백제 성왕이 신라 진흥왕과의 싸움에서 패배하여 전사했다고 알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것이 후에 백제 의자왕이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하는 빌미이기도 하다. 만세일계는 일본 황실의 혈통이 단 한 번도 단절된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견해이다. 1867년 이와쿠라 토모미가 처음 사용한 말이다. 뭐... 그렇다고 하자... 남의 나라 일이다...
가정이다..백제가 삼국을 통일하였다면 현재 우리와 일본과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지금보다는 나았으려나...역사에 가정은 없다.. 그냥.. 우리나라 대통령의 3.1절 [축사]를 듣고... 갑자기 두서없이 포스팅하였다... 젠장...대한민국 만세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