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최고의 천재(?) 설 총..이두 표기법을 집대성..그리고 훈민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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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내용 중 일부 상세한 내용은 네이버 백과사전 등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리하였음을 미리 알립니다

 

 

 

 

 

우리나라는 세종대왕님이 훈임정음을 창제하기전부터 이두라는 표기법을 가지고 우리말을 표기하고 있었다. '이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던 표기법이다.. 그럼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우리말을 사용하였을까..????
한국어는 대략 9,000년 전 신석기시대에 지금 중국 동북부에 살던 농경민에서  비롯된것으로 밝혀졌다. 우리 한국어의 계보는 우랄 알타이 어족에서 시작한다...
우리 민족이 우랄 민족에서 파생되었다는것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우랄 알타이어족은 투르크.. 현재의 튀르키예에서 시작하여 중앙아시아를 거쳐 몽골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경로를 가진 어족이다.. 번외로 사용과 언어체계가 최대인 인도유럽어족(인도게르만어족)은 인도와 유럽전역으로 펼처나간 어족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그리스어와 라틴어가 여기에 해당된다. 한국어외에도 몽골어와, 시베리아의 퉁구스어, 그리고 일본어도 이에 해당한다. 음절의 모음과 뒷 음절의 모음이 같은 종류끼리 만나는 모음조화가 나타나고 주어+목적어+서술어순으로 말을한다.. 수식어가 앞에 오는것도 특징이다.
여기에서 우리말이 갈라졌고 삼국시대까지 우리는 특별한 글없이 중국으로부터 전해진 한자를 사용하였다.
한자는 대략 위만조선때 우리나라에 들어온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위만이 (고)조선을 침락하던때인데 이때가 기원전 195년이다. 이 때 처음으로 한자가 우리나라에 전해진것으로 추측되고  이두는 이 한자를 우리말로 표기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설총 이전에도 삼국시대부터 이두를 이용한 표기방법이 여럿 발견되었다. 설총은 이러한 이두의 표기법을 전체적으로 다시 집대성한 인물로 보는것이 더 정확하다. 설총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천재는 바로 신라 시대의 학자 설총이다. 설총은 원효대사가 파계하고 태종 무열왕의 딸인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천재소년이다.. 그는 최치원, 강수와 함께  신라의 3대문장가로 알려진 그 당시 인텔리 계층이었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 출처 네이버 

 

설총 출처 : 네이버

 

위 원효대사와 요석공주가 만나서 아래 설총이 탄생하였다...............

내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은 단순히 혼자가 된 요석공주를 불쌍히 여긴 태종 무열왕이 원효를 요석궁에 묶게 하였는데 후에 설총이 태어났다. 이 설총은 커서 이두를 만들었다......여기까지다.. -_-;; 여기서 알 수 있는 한가지.. 원효의 성은 '설'씨이다.. ㅎㅎㅎㅎ 그리고 잘못된 한가지.. 설총은 이두를 만든것이 아니라  '이두'라는 표기법을 집대성하였다. 설총의 최대 활동시기는 통일 신라 신문왕 시기와 동일한데.. 신문왕은 문무왕의 아들로 문무왕이 바로 태종 무열왕 김춘추의 아들이다.

태종 무열왕이 백제와의 전투에서 조금 일찍 죽은것을 감안하면 대략 시기가 비슷하다.

 

 

그 유명한(?) 화양계가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등장하는데.....설총이 신문왕과 나눈 대화이다..

내용은 사진을 참조하며.....

 

설총의 태어난 해는 대략 655년으로 알려져있으나 죽은해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지 않다. 경덕왕때까지 생존했다는 것을 보면 대략 80세 전후에 돌아가신 것 같다.. 설총이 이두에 관심을 보였던건 당시 한자로 당시 생활을 표현하는것이 우리말과 맞지 않다는것을 인식하였기때문일것이다.. 이 당시에.. 지식인이.. 그것도 단순한 지식인이 아닌 공주의 남편이 자신에게는 필요없는 이러한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천재라 할 수 있고, 상당히 실용적인 성격의 학자라 볼 수 있는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 본인 의견

 

경주에 위치한 설총의 묘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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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내용처럼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기 전에도 우리는 우리의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당연하다.. 우리에게 글자가 없던 것이지 우리의 말은 그 당시에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사실이다.. -_-;;

영화 '황산벌'을 보라... 김유신, 의자왕, 연개소문이 각각의 사투리를 쓰며 싸우지않나..ㅋㅋ 그 영화의 표현 방식은 약간의 코믹이 감안된 것이긴하지만...

 

훈민정음을 창제하기전 집현전 학사인 최만리는 한글창제에 대해 이렇게 반대한다. 우리는 그 이전에도 이두를 사용하여 백성들이 말을 표기할 수 있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다시 이런 말을 표기할 글자가 필요없다고... 하지만 한자를 단순히 우리말로 표기하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리하여 세종대왕이 우리의 말을 그대로 표기할 수 있는 한글을 창제한 것이다.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바로 훈민정음이다..

 

 

 

이 훈민정음이라는 문자 체계의 사용 방법을 알리기 위해 만든 책의 제목이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이러한 해례본도 1940년이 되어서야 발견됐다.. 또 다른 해례본인 상주 해례본은 모두 아시듯(?) 지금 배씨가 많은 금전적 보상을 기대하며(?) 뻐팅기고 있어서 어떻게 될지 잘 모른다.. 일부는 불타버렸다는 뉴스도 있고.. ㅠㅠ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신세경이 왜 그토록 해례본을 지키기위해 죽음까지 불사했는지 어느정도 짐작도 된다.. (흑.. 불쌍한 신세경.. ㅠㅠ)

(신세경이 저렇게 금전적 보상금 챙기라고 죽음을 무릅쓰고 지킨게 아닐텐데... -_-;;)

 

 



이두는 이러한 한글이 창제되기 전의 우리말의 표기법이다. 우리는 한글 이전에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였는데 이것을 차자표기법이라 하는데 이런 표기법중의 하나가 이두인 것이다. 한글이전에 우리말을 한자로 기록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우리말을 중국어로 번역하여 한문으로 적는 방법과 한자의 음이나 의미를 빌려서 우리말을 적는 방법이다. 이두는 우리말 어순에 따라 한자를 배열하고 문맥을 분명히 하기위해 문법적 요소를 덧붙였다. 이처럼 이두는 표기법이다.. 이러한 방법은 신라시대 이전부터 사용되었으며 이를 설총이 집대성하였고,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쳐 한글이 창제된 후에도 관청의 행정문서나 민간의 계약문서에 계속 사용되었다.

내용이 중간에 반복이 되는 부분도 있고, 사실이 아닌 부분도 존재할 것이다.. 중간에 내용이 반복되는 것은 나의 지식이 얕아서 정리를 제대로 못해 그런것이고...(ㅠㅠ)

사실이 아닐 수 있는 가능성은 이때의 기록이 정확하게 남아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재에 남은 과거의 유물이나 자료를 통해 추측할 뿐이다.. 물론 글로 남아있는 자료가 있으면 최고지만..... 조금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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