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내 개인의 역사의 주관적 해석이다)
나는 1980년 1월생이다.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은 나와는 전혀 별개의 사건들이다.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1986년에는 벌써 88 서울 올림픽 개최가 확정되었고,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는 어찌 되었든 국민 직선제로 우리 국민 스스로가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을 정도의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였다. 그 결과 역시 내가 원한 결과가 아니더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의 산물이다.
4.19 혁명은 1960년에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에 대항하여 일으킨 민주 항쟁이다.
1960년은 우리나라가 광복한지 15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기로, 우리는 미국의 신탁통치로 인해 강제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얻게 되었다. 광복하기 전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하에 국민의 주권은 조선이 아닌 일제에 있었다. 조선시대는 왕정국가로 국가의 모든 권력은 오롯이 왕에게 집중되어 있었고 왕이 아닌 일반 백성, 하물며 양반에게 흔히 우리가 말하는 국가의 권력은 없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운동가들이 원한 것은 첫 번째 우리의 독립이었고, 두 번째 국민이 권한을 행사하는 독립국가였다.(그것이 민주주의사회든 사회주의사회든 그건 나중의 일이다)
강제적으로 얻게된 자유와 권력, 그리고 정상적으로 청산되지 않은 친일세력으로 인해 국가의 권력은 독립을 위해 목숨을 마쳐 독립운동을 한 분들이 아닌 친미세력과 친일이서 친미로 자연스레 변절한 자들이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된다.
아무런 대가 없이 권력을 쥐게 된 권력의 정점에 선 그들은 그 권력을 본인들의 부를 축적하는 데 사용하였고, 권력의 정점이 그러할진대 다른 위정자들이야 말해서 무엇하랴. 그렇게 서서히 고인 물처럼 썩어가든 국가를 4.19 혁명으로 다시 일으켜 세운건 위정자들이 아닌 열심히 생업을 살아가던 일반 국민이었다. 그렇게 우리나라는 제대로 된 국민들의 희생으로 민주주의 국가로 한 단계 발돋움하였다. 이것이 제2공화국인 장 면 정부이다.
장 면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수립하여 정부 주도의 경제 성장을 계획한다. 우리가 흔히 국정 교과서에서 배운 박정희 시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장 면 정부의 경제 정책으로, 이를 박정희 대통령이 그대로 이어서 진행한 것이다.
고대 국가의 성립 이후 국가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힘과, 의식주를 해결하는 삶의 제공 이 두 가지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은 본인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급급한 나머지 국민의 삶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고, 장 면 정부는 점진적인 경제개발을 통한 삶의 개선을 꿈꿨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의 세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실질적 힘이 없었다. 장 면 정부로 국가의 권력은 넘어갔지만, 사법권력과 입법권력은 그대로인 상태였고 행정권력의 일부만 차지할 수 있었고 국가의 안보를 책임질 군의 세력은 여전히 친일세력이 절대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남북이 분단된 상황이었기에 군의 역학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컸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군의 중심을 이루는 세력들은 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 이승만 정권당시에는 본인들의 정체성으로 인해 대놓고(?) 활개 칠 수 없었고, 장 면 정부에서의 국가적 어젠다는 경제 성장이 첫 번째 목표이고 두 번째가 안보였기에 상대적으로 군의 박탈감은 심하였다. 또한 4.19 혁명당시 미국과 충돌했던 일부 장교 세력들 역시 본인들의 승진 등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이러한 당시 시대적 상황들로 인해 당시 육군 소장이었던 박정희는 1961년 2월 강제예편당한 김종필을 비롯해 육군사관학교 8기생들을 중심으로 비밀리에 군사 쿠데타를 기획하게 되는데, 이들은 1961년 5월 강제 예편이 예정되어 있었다.
1961년 5월 16일 군사 정변은 이렇게 당시 자신들의 처우에 불만을 품은 장교들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국가를 상대로 일으킨 조선시대에 비유하자면 역모사건이다.
이 사건은 1979년 12.12사태에 이르러 일단락되지만 다시 정권을 잡은 후계는 당시 강제로 중앙 정보부장 서리를 요구하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전두환이 차지하게 되며 실질적인 역사의 평가를 받을 수 없었다.(중간에 최규하 대통령은 생략한다) 이렇게 25년 이상 지속된 군사정권은 1987년 6월 10일 6.10 항쟁에 이르러서야 당시 민정당 총재였던 노태우가 차기 대통령 선거는 직선제로 치른다는 발표를 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실질적 군사독재 시기를 벗어나게 된다.
6.10 민주 항쟁 이전까지는 5.16을 군사 혁명이라고 치켜세웠지만, 민주화 이후 5.16 군사정변이 공식 표현이 되었다.
5월 16일은 기념해야하는 기념일은 아니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되는 꼭 기억해야하는 부끄러운 역사의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