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시인 이육사의 황혼, 청포도, 광야... 그리고 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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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육사는 흔히 알고 있는  일제 강점기 시대 윤동주, 만해 한용운과 더불어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알고 있다.

시인 윤동주는 특별한 호는 전해지지 않는 것 같다. 아호가 해환이라는 것만 전해지고, 호는 잘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세 분이 모두 저항시인이다.. -_-;; 

윤동주 시인과 만해 한용운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포스팅하고 오늘은 이육사 선생에 대해 포스팅하고자 한다.

 

 

 

 

 

육사 선생의 대표적인 시는 황혼, 청포도, 광야, 절정 등이 있다.

이육사의 육사는 어릴때 이 분의 호가 아니다.

1927년 조선은행 폭파 사건에 연루되어 대구 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는데, 그때의 수인번호가 264였다.

본명은 이원록이고 이원삼이라고도 한다. 혹시 이 분에 알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아마도 이 활로 알고 있는데 이 이름은 그가 첫 시를 발표할 때 사용한 이름이다. 

육사는 1933년 육사라는 필명으로 '황혼'이라는 시를 '신조선'에 발표하며 실질적으로 시단에 데뷔하게 되는데, 우리는 이때부터 육사라는 호로 이 분을 기억한다. 

 

황 혼

내 골방의 커튼을 걷고
정성된 맘으로 황혼을 맞아들이노니
바다의 흰갈매기들같이도
인간은 얼마나 외로운 것이냐

황혼아 네 부드러운 손을 힘껏 내밀라
내 뜨거운 입술을 맘대로 맞추어 보련다
그리고 네 품 안에 안긴 모든 것에
나의 입술을 보내게 해다오

저 십이성좌의 반짝이는 별들에게도
종소리 저문 삼림 속 그윽한 수녀들에게도
시멘트 장판 위 그 많은 수인(囚人)들에게도
의지할 가지 없는 그들의 심장이 얼마나 떨고 있을까

고비사막을 끊어가는 낙타 탄 행상대에게나
아프리카 녹음 속 활 쏘는 인디언에게라도
황혼아 네 부드러운 품 안에 안기는 동안이라도
지구의 반쪽만을 나의 타는 입술에 맡겨다오

내 오월의 골방이 아늑도 하오니
황혼아 내일도 또 저 푸른 커튼을 걷게 하겠지
암암(暗暗)히 사라지긴 시냇물 소리 같아서
한번 식어지면 다시는 돌아올 줄 모르나 보다

 

1904년 5월 18일 경상북도 예안군 의동면 원촌동에서 출생하였다. 여기는 현재 안동시 도산면 원촌리 원촌마을이라는 곳으로, 어느 정도 예상했을지도 모르지만 이 분은 퇴계 이 황 선생의 14대손이다.

이 분의 집안은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하였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지만 이광호, 이영호, 이효정 선생, 그리고 육사 선생의 시신을 거둔 이병희 선생까지 모두 친인척이며 독립 운동가이다. 이병희 선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의열단 출신의 독립 운동가이다.

 

 

그는 독립이 되기 1년여 전인 1944년 1월 만 39세의 나이로 베이징 주재 일본총영사관 교도소에서 옥사하였다.

우리가 많이 알고 있는 청포도, 광야등의 시는 1937년 동인지인 '지오선'을 통해 발표한다.

 

청포도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려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실제 이 분의 고향인 도산 원촌마을은 내가 어릴 때 가족들과 함께 이육사 문학관을 방문하면 여름에 익어가는 청포도를 볼 수 있었다.

 

광 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 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개인적으로 '청포도'보다 더 좋아하는 육사 선생의 시는 바로 '광야'이다.

특히나 마지막 구절은 어린 시절 한동안  가슴을 먹먹하게 한 구절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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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집인 '육사시집'은 1946년 시인 신석초등 문학인들에 의해 유고시집으로 발간되었다.

그는 대표적인 저항시인이기도 하지만 절제된 언어와 상징적인 표현, 은유 등을 사용하여 인간의 정신적인 세계를 많이 표현하려 하였다고 한다.  내가 시인 윤동주와 더불어 이 분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후에 이 분을 평가할 때 사회주의 운동과 관련하여 비판을 하기도 하는데 이분이 사회주의자인 것은 사실이나, 공산주의를 옹호하거나 당시 남로당을 지지하진 않았다. 이 분은 김원봉 선생에 대해서도 상당히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는데 이 내용은 잠시 접어두고 이 분의 동생이 남로당 고위직으로 일하였기에 연좌제적인 성격으로 인해 당시 정확하게 이 분에 대해 모른 상태에서 함께 비판을 하였다.

이 분이 청도도와 광야때문에 단순히 저항시인으로 많이 알려져있지만 상당히 전투적인(?)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셨다.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기도 했으며, 그의 친척인 이병희 선생이 의열단 출신인만큼 어찌보면 펜보다는 총으로 독립을 이루려는 활동을 많이 하셨다. 위에 김원봉 선생을 비판한 이유가 김원봉 선생이 중국측의 힘을 빌려 독립운동하는것에 대해서 자주적인 독립운동이 아니라고 할만큼  상당히 주체적인(?) 성격이 강하였다. 모든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그러하듯, 이 분의 후손들 역시 독립운동가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상당히 힘든 삶을 살았다.

 

tmi....

내가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몇 가지 있는데, 그중에 이 분도 포함된다.

어릴 때부터 수없이 들었던 이름이고 상당히 자랑스러운 이름이기도 했다.

육사 선생은 우리 어머니의 외할아버뻘이시다.... 맞나..... 외할머니의 삼촌이니 대충 그 정도 촌수일 것이다.

 

나중에 안동을 방문하게 되면 아침은 옥야식당에서 경상도식 해장국으로 몸과 마음을 배불리 하고, 봉정사에 들러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극락전을 구경한다.

점심은 모두가 알고 있는 안동찜닭을 맛있게 드시고 하회마을을 방문하여 서애 류성룡 선생의 흔적을 찾아보면 된다. 그리고 도산서원으로 이동하여 퇴계 이 황 선생보다는 경치를 구경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이육사 문학관을 들러 그분이 남긴 시와 그때의 고뇌를  함께 견디어 보는 것도 괜찮은 여행이다. 시간이 된다면 맹사성 종갓집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대궐다음으로 크다는 아흔아홉 칸 종갓집인 임청각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다. 이곳은 일제 강점기 때 철도를 이 집안 중앙으로 뚫어버려 지금은 많이 훼손되긴 하였지만, 그곳에는 신라시대 전탑과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다. 여긴.. 우리집 종택이기도하다..ㅋㅋㅋ

아.. 빵을 좋아하다면 맘모스 제과에 들러 아메리카노에 유자케이크를 먹는것도 아주 좋은 선택이다.^^

 

난.. 뭐.. 어린 시절 자주 다니던 곳들이어서 지금은 그렇게 큰 감흥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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