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는 고대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자 그의 정복전쟁인 동방원정으로 인해 전 세계에 헬레니즘 문명을 꽃피우게 된다. 카이사르 시저와 함께 많은 고민을 했지만 개인적으로 좀 더 세계사에 영향을 끼친 인물은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알렉산더 하면 떠오르는 것이 그의 애마 부케팔로스와 스승 아리스토테렐스, 그리고 헬레니즘이다. 통상적으로 유럽의 고대와 근대는 르네상스 시기를 기준으로 구분하는 편인데, 밀라노 칙령의 시기를 기준으로 구분한다.
알렉산더의 어린시절
알렉산더는 고대시대를 대표하는 정복왕이다. 아시아의 테무진이 역대 최대의 영토를 정복했으나, 알레산더 역시 20세도 되지 않은 않은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마케도니아에서 시작해서 페르시아 제국과 이집트 그리고 인도까지 정벌하는 등 고대사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한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 역시 작은 마케도니아의 왕이었지만 야심있는 정복왕이었다. 어린 시절 알락산더는 이런 그의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가 모든 나라를 정복하면 나는 뭘 해야하지?' 라고 말할정도로 필리포스 2세역시 뛰어난 정복왕이었고, 그의 아들 알렉산더는 어쩌면 아버지의 야심을 뛰어넘는 재능과 뛰어난 신체를 보유하고 있었다.
알렉산더의 초기 어린 시절 그를 대표하는 것은 딱 2가지이다. 바로 부케팔로스와 아리스토텔레스. 부케팔로스는 그가 전쟁에서 평생을 함께 한 그의 애마이다. 부케팔로스는 후대 역사가들이 알렉산더를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닌 실제 고대역사에 존재하는 가장 유명한 말이다. 이 부케팔로스가 어떻게 알렉산더의 애마가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어떤 말 장수가 필리포스 2세에게 부케팔로스를 팔려고 하였지만 워낙 길들여지지 않은 사나운 성격 때문에 포기하려던 찰나 알렉산더가 부케팔로스를 진정시키며 자신의 애마를 만드는데, 부케팔로스가 사납게 날뛴 이유가 자신의 그림자 때문인 걸 알아차리고 그 그림자를 보지 못하게 조정하였다고 하는데.. 음.. 뭐.. 사실과 과장이 어느 정도 섞여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한다. ㅎㅎㅎ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 과학자로 뉴턴이 떨어지는 사과에서 중력을 발견하기 전까지 서구문명의 모든 지식의 정점인 인물이다. 역사에는 알렉산더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라고 나와있지만 실제 우리가 생각하는 스승과 제자의 관례라고 생각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물론 알렉산더가 아리스토텔레스에게 학문을 배운 건 사실이지만 그는 왕자신분으로 당시 유명하다고 이름난 많은 이들이 그의 어린 시절 학문적 스승이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어서 좀 더 부각되는 면이 있다. 물론 그에게 학문을 배우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알렉산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 중 일부만 그의 정복전쟁과 정치에 활용하였을 뿐이다. 참고로 그가 가장 좋아했던 책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로 항상 그 책을 끼고 생활하였다고 한다.
여담으로 그의 스승에 대해 얘기하자면, 알렉산더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고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이다. 플라톤은 흔히 이데아론과 국가, 유토피아로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보다는 조금 덜 유명한 철학자이지만 그래도 엄청 유명한 인물이다. 이런 플라톤의 스승이 '악법도 법이다'라고 외쳤지만 그런 말을 실질적으로 한 적 없는 소크라테스이다. 후대에 미친 영향은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스승들인 플라톤과 소크라테스보다 월등히 많지만 그의 지식의 원천이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인 것이다. 끝!!!
알렉산더의 동방원정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은 아버지 필리포스 2세에 이어 마케도니아의 왕에 즉위한 시점에서 시작된다. 알렉산더는 우선 주변나라들부터 정복해 가기 시작했다. 그리스의 고대국가인 테베는 알렉산더가 20살도 안된 어린 나이에 왕에 즉위하는 것을 보고 무시하고 반란을 일으키지만, 알렉산더는 단순히 반란을 진압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테베를 멸망시켜 버린다. 알렉산더가 유럽 최고의 정복군주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전투능력 때문이다. 옛 문헌기록을 모두 100% 믿을 수 없지만 알렉산더는 마케도니아 병력 5만으로 병력 100만의 페르시아 제국을 7년 만에 정복해 버린다. 우리가 보통 영화에서 페르시아 제국은 악역으로 많이 나오는데(임모탈이 그 주인공..ㅋㅋ) 이는 당연히 서양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지 페르시아 제국은 나쁜 놈이어서가 아니다.
옛 기록을 보면 알렉산더는 대략 40여 회의 전투를 벌였는데 그중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고 한다. 뭐.. 물론 우리의 성웅 이순신 장군도 단 한 번의 패배를 기록하지 않았으니 일단 믿어보기로 하고... 근데 이 내용이 중요한 이유는 알렉산더는 정복전쟁을 펼쳤기 때문에 원정이라는 상대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이러한 소수병력으로 정복전쟁을 펼치며 군사들의 신임을 얻은 이유 중 첫 번째는 바로 항상 그가 선봉장이었다는 점이다. 지휘관이 가장 위험한 맨 앞에서 전투를 지휘하니 그 군대의 사기는 떨어질 리 없다. 또한 당시 고대 그리스의 전투방법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데, 이들은 중장보병으로 긴 창과 방패를 가지고 전투에 임하였다. 이렇게 긴 창과 방패를 무장한 군인들이 밀집대형으로.. 아니 그냥 직사각형의 모양이라고 하면 이해가 편할 것이다. 이렇게 딱 모여서 창을 앞으로 내리고 전진하면 단순한 평야지대의 전투에서 이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물론 이런 대형은 정면을 공격하는 데는 아주 유리하지만 상대적으로 측면이 공격당할 경우 방어하기 쉽지 않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다. 어찌 되었든 알렉산더는 자신의 군대를 이렇게 중무장시켜 그리스 변방의 마케도니아에서 출발하여 인도까지 정복전쟁을 펼쳤던 것이다. 알렉산더가 왕위에 즉위할 때 16살이었고 그가 정복전쟁 중 병으로 죽은 나이가 32세였다. 난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내 앞길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분은 30대에 깔끔하게 세계를 정복해 버린 것이다.. ㅠㅠ
헬레니즘 문화
헬레니즘은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이 마무리된 후 그리스와 오리엔트 지역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생긴 일종의 역사적 현상이다. 헬레니즘은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헤브라이즘과 유럽 문화의 2대 원류로 평가받는다.
당시의 그리스는 세계 문명의 중심이었다. 물론 황하와 인더스, 나일에서도 문명이 발생하였지만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생한 문명은 특이하게 수학과 과학이 집중되어 발달하게 된다. 이런 그들의 문명은 다른 문명들에 좀 더 빠른 성장을 보였고, 국가의 체제를 완성한 그들은 그리스를 벗어난 다른 영토까지의 확장을 노리게 된다. 물론 알렉산더 이전 카이사르 시저의 정복전쟁으로 갈리아 지방(지금의 프랑스 지역)까지는 그들이 알고 있는 영토였지만 알렉산더는 정복전쟁을 통해 그들의 문화를 확장한 영토에까지 전하게 된다. 알렉산더는 이집트를 정복한 후 이집트의 파라오에 오르게 되고, 그 이후 약 300여 년간 이집트의 최고 지도층은 이집트인들이 아닌 바로 그리스인들이다. 그들은 그렇게 자연스레 그들의 유럽 문화를 이집트에 전파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일부러 '내가 여기에 우리 문화를 전수해 줄게'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역사서에서 공부한 중국의 '비단길'을 통해 유럽의 문물이 아시아에 흘러들어왔듯이 이 당시에는 전쟁을 통해 승자의 문화가 패자의 영토에 강압적으로 뿌리내리게 되는 것이다. 유럽의 기하학, 수학, 과학은 인도에까지 전파되었고 그들은 좀 더 뛰어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단순히 유럽의 문화가 더 뛰어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와 토착지역의 문화가 결합하여 새로운 문화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헬레니즘은 이러한 정복전쟁으로 인한 다른 여러 민족들과의 융합에서 탄생한 것으로, 자연스럽게 세계 시민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물론 헬레니즘이라는 말 자체가 그리스적인 사상이나 문화를 뜻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정복전쟁으로 각기 다른 대륙의 문화가 융합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재 중 하나로 평가받는 경주 석굴암의 경우도 인도의 간다라 양식을 본뜬 것인데 좀 더 추적을 해보면 헬레니즘 문화에서 파생된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