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의 시작 2 '프랑스 대혁명'의 배경과 '인권선언'
- 역사와 정치/곰돌이의 역사관(글씨기 연습용)
- 2023. 7. 27.
보통 민주주의를 얘기할 때 아테네에서 시작된 민주주의와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민주주의 2가지 중 후자를 뜻한다. 아테네에서의 민주주의란 지금의 민주주의와 달리 당시 폴리스의 일부 공화정 지도자 그들만의 민주주의를 뜻한다.
프랑스 대혁명은 1789년 5월 5일에서 1799년 11월 9일까지 프랑스에서 일어난 시민 혁명을 뜻한다. 프랑스 혁명은 이 시기외에도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도 있지만 보통 알려진 시기는 1789년의 혁명을 의미한다. 프랑스 혁명 기념일은 7월 14일로 이 날은 국경일이자 공휴일이다. 프랑스 혁명의 시초가 된 바스티유 감옥 습격이 일어난 1789년 7월 14일을 기념하는 것이다.
프랑스 대혁명
프랑스는 기존 절대왕정시대인 구체제에서 18세기 선진국의 특징을 지니는 자본가 계급이 떠오르고 있었고, 미국 독립혁명의 영향으로 시민들의 자유주의에 대한 의식이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프랑스 혁명은 구체제를 완전히 종식시킨 후 나폴레옹 전쟁과 각 유럽의 민족주의와 자유주의를 서양에 전파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프랑스의 근대화는 각 유럽의 군주들에게 자신들의 국가체제도 바뀔 수 있다는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프랑스 혁명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절대왕정과 봉건제도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부체제와 사회를 만든 최초의 사회 혁명으로 평가 받는다.
프랑스 대혁명의 배경
프랑스는 자국을 비곳한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과 미국 독립 전쟁등 당시 어려지역의 전쟁에 참여하였는데, 그 결과 프랑스의 재정은 완전히 파탄나고 말았다. 또한 프랑스의 사회는 인구의 2%밖에 되지않는 성직자와, 제2계급인 귀족이 전체 토지의 40%를 차지하며 여러가지 혜택을 받는등 나머지 98%의 제3계급인 평민들은 무거운 세금으로 인한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다. 이러한 국가 재정의 파탄과 사회제도적 모순은 제3계급에서 의사, 변호사, 사업가등의 전문직을 통해 부를 축적한 새로운 부르주아 계급들로 인해 점점 사회 개혁적인 목소리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특히 장 자크 루소의 직접 민주주의 이념을 나타내는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주장은 부르주아 계급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계급또한 특권층에만 집중된 혜택과 제도에 저항하려는 이념으로 모두 혁명에 가담하게 된다.
바스티유 감옥 습격
왕정체제를 유지하려는 기존 세력이 지방 여러 곳으로 군대를 결집시키려 하자, 이들 군대와 시민세력은 계속적으로 충돌을 반복하였다. 이 즈음 7월 14일 파리 시민들은 혁명에 필요한 여러 무기들을 탈취하기 위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게 된다. 이 바스티유 감옥 습격은 프랑스 대혁명의 도화선이 되게 된다.
농민반란과 봉건제의 폐지.. 그리고 인권 선언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농민들은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혁명에 참여하였다. 성을 침입하고 자신들의 불리한 문서를 불태우는등 영주와 지주들을 공격하였다.
국민의회는 이에 8월 4일 봉건제 폐지를 선언하며 농민들의 반란(?)을 잠재우려 노력하였다. 봉건제 폐지는 물론 시대적인 한계가 있긴 하였지만 영주제와 농노제의 폐지, 소득에 비례한 세금납부등의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러한 시민 혁명은 8월 26일 드디어 ‘인권선언’을 발표하게 된다. 주권재민과 사상의 자유, 법앞의 평등, 재산, 투표, 과세의 평등 등 새로운 사회질서를 위한 기준원칙을 정하며 혁명의 정의와 이념을 세우게된다. 이러한 ‘인권선언’은 미국의 독립 혁명의 영향을 받은 면이 있다. 계몽주의와 자연법 사상의 영향을 받은 이 선언은 프랑스 대혁명의 핵심으로 인간의 천부적 권리는 장소와 시간을 초월한 보편적인 가치임을 명시하고있다. 이 인권선언으로 인해 종교와 출판의 자유인 인간의 기본권을 억압하던 로마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한 기존 체제의 억압을 완전히 끝내게 된다. 제헌국민의회에 의하여 1789년 8월 26일에 채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