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은 1897년인 광무 원년 조선이 제국임을 선포하며 '대한제국'으로 국호를 바꾸며 광무개혁을 통해 조선의 근대화를 추진하게 된다. 하지만 근대화를 추진하기에는 대한제국의 힘이 너무나도 부족하였다. 대한제국은 영토와 백성을 지키지 못한 나약한 제국으로 그 대가는 위정자들이 아닌 백성들에게 고스란히 넘어가게 되었다. 이 포스팅에서 반드시 기억해야되는 것은 '을사5적'과 '정미7적'이다. 이 썩을 친일 매국노에 의해 조선왕조 500년과 대한제국은 멸망하게된다.
여우사냥, 그리고 을미사변.. 한 나라의 왕비가 시해당하다
1895년 10월 8일 조선 주재 일본공사관인 미우라 고로는 일본군 공사관 수비대와 경관, 일본군 경성 수비대, 일본의 낭인들, 조선군 훈련대와 함께 경복궁을 무력으로 침입하여 고종의 아내인 여흥 민씨를 시해한다. 조선의 왕후가 비참하게 시해된 사건인 '을미사변'은 작전명 '여우사냥'이란 이름으로 계획되었다.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한 일본 내각과 미우라 고로 직전의 조선공사였던 이노우에 가오루가 계획한 '여우사냥'은 '경술국치'에 앞서 조선의 왕후를 지켜내지 못한 한 나라의 마지막을 알리는 치욕스러운 사건이었다.
고종의 아내이자 조력자였던 여흥 민씨는 러시아와 협력하여 일본의 침략을 막으려 하였다. 하지만 일본은 '을미사변'을 일으켜 여흥 민 씨를 시해하고, 조선의 내각을 친일내각으로 만들어버렸다. 이에 고종은 결국 러시아 공사관으로 망명(도망)하게 되는데 이를 '아관파천'이라고 한다.
여흥 민씨에 대한 평가는 많이 엇갈리는 편이다. 하지만 그녀에 대한 정치적인 비판과 비난은 오롯이 자국민의 몫이지, 감히 다른 나라가 간섭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은 왕비조차 지켜낼 힘이 없는 망해가는 왕조였다. 또한 기존의 여흥 민 씨에 대한 평가 중 상당수가 일본 측의 왜곡과 야사에 의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오히려 고종의 정치적 내조자이자 조선의 국모로 다시 평가받고 있다. 그녀의 정치적 판단의 결과가 설령 실패로 마무리되었을지라도 그녀는 조선말 일본과 러시아, 중국사이에서 조선이 자주적으로 지탱할 수 있도록 흥선 대원군과 경쟁하며 자신의 정치력을 발휘하였다. 물론 그녀의 가문인 민 씨 형제들에 대한 평가는 별개이다.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광무황제로 즉위하였고, 그의 아내인 여흥 민씨또한 왕후에서 황후로 추존되었다. 시간상의 차이가 발생하지만 우리가 조선의 마지막 임금으로 고종을 설명할 때 그의 왕비는 황후가 아닌 왕후가 맞는 표현일 것이다. 명성왕후는 현종의 아내이자 숙종의 어머니이며, 명성왕후 김 씨이다. 그래서 조선과 대한제국의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 조선 고종의 왕비는 그녀의 출신가문에 따라 여흥 민 씨로, 대한제국의 광무황제의 황후는 명성황후로 표현하는 것이 바른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명성황후를 폄하하는 뜻으로 민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실제 민비가 명성황후를 폄하하는 표현인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그래서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본 글에서는 민비라는 표현은 하지 않기로 하였다)
대한제국의 선포
고종이 굳이 조선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대한제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한 이유는 당시 시대상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정치/ 외교문제를 해결하고, '대한제국'이 다른 나라의 지배나 간섭을 받지않는 자주국가임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러한 결과로 청. 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난 후 일본 '시모노세키 조약'에서 청국의 조선에 대한 종주권이 부인된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청. 일전쟁 후 일본의 조선을 지배하려는 야욕으로 인해 일본은 끊임없이 조선의 일에 간섭하였다. 동학농민군을 초토화시킨 작전도 일본에 의해서 자행되었으며, 결국은 고종의 왕비인 여흥 민 씨가 1895년 10월 일본에 의해 시해되는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을미사변)
경복궁에서 러시아 공사관으로 망명(도망)한 고종은 친러내각을 수립 후 경운궁으로 환궁하게 된다. 그리고 을미사변으로 왕비인 여흥 민 씨가 시해되고 2년 뒤인 1897년 10월 12일, 조선의 마지막 군주 고종은 조선이 제국임을 선포하며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명명하였다. 대한제국은 전제군주제 국가이자 대한민국의 마지막 군주국이다.
반드시 기억되어야 하는 5인 '을사5적'과 '을사늑약', 그리고 '정미 7적'과 '정미 7 늑약'
일본은 1905년 여순전투와 동해해전등에서 승리하며 대한제국에 대한 자신들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그리고 1905년 6월 12일 러. 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게 되며 9월에 체결된 '포츠머스 조약'에 따라 러시아는 대한제국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된다.
을사늑약은 대한제국의 외부대신인 박제순과 일본 제국의 주한 공사인 하야시 곤스케에 의해 체결된 불평등 조약이다. 1904년 러. 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 7월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일본의 대한제국에 대한 종주권을 인정받고, 8월 제2차 영일동맹을 통해 영국으로부터도 대한제국에 대한 지도 및 보호의 권리를 인정받았다. 그리고 바로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서 을사늑약을 체결하였다. 여기 어디에도 대한제국의 결정권은 없었다.
이는 1965년 박정희 정부당시 일본과의 한일 국교 정상화를 하기 위한 한일기본조약의 제2조를 통해 이 조약이 '이미 무효'임을 상호 확인하였다.
을사5적은 1905년 11월 17일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한다는 내용이 담긴 '을사늑약' 체결에 동의한 5명의 내각대신으로 박세순, 이지용, 이근택, 이완용, 권중현이다.
추가로 알아야 할 사실은 당시 참정대신인 한규설과 탁지부대신 김영기, 법부대신 이하영은 을사늑약 체결에 반대하였다. 을사늑약 체결 후 참정대신인 한규설은 일본의 무력강압에 의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고, 외부대신 박제순이 그 자리를 물려받게 된다. 법부대신 이하영은 초기 반대입장을 펼쳤으나 후에는 다른 을사5적보다 더욱더 매국활동을 하였다. 하지만 처음에 을사늑약 체결에 반대하였기에 을사 6적이 아닌 을사5적으로 빠지게 된다.
을사늑약이 체결되고 2년 후인 1907년 대한제국 군대의 해산, 사법권의 위임, 경찰권의 위임, 관리 임명권 등을 일본에 넘기는 것을 골자로 한 '정미 7 늑약'을 체결한다. 이 체결로 인해 대한제국은 내정에 관한 모든 권한을 상실하였고, 실질적인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 '정미 7 늑약'의 명의는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전권 위임 특사 겸 조선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로 명시되어 있다.
이 '정미 7 늑약'에 찬성한 친일 매국노 7명이 이완용, 송병준, 이병무, 고영희, 조중응, 이재곤, 임선준이다. 이완용은 '을사5적'에 이어 '정미 7적'에도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당대 최고의 친일 매국노임을 선포하였다.
이것들에 대한 자세한 매국일지는 다른 포스팅에서 다시 하기로 한다.
일본에 강제에 의한 '한일병탄늑약' 그리고 경술국치
'을사늑약'과 '정미 7 늑약'으로 대한제국의 모든 권리를 앗아간 일본은 기어이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순종의 조칙 형태로 발표하였다. 이는 실제 8월 22일 늑약이 체결되었지만 절차적 정당성을 밟기 위해 일본은 일주일 동안 발표를 미루었다. 이것이 500년 조선을 이은 대한제국의 멸망과 일제강점기를 알기는 '경술국치'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손종 황제가 발표한 조칙에 대한제국의 국새가 찍히지 않았고, 황제의 서명조차 들어있지 않았다. 당시 황실의 전권위임을 받은 내각총리대신 이완용과 고종 황제의 친형인 흥친왕 이재면이 조약에 참여하였는데, 이완용과 흥친왕은 정식적으로 전권위임을 받지 않았다. 이러한 부분은 '한일병탄늑약'이 대한제국의 정식적인 조약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하고 '한일병탄늑약'자체가 원천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근거이다.
당시 '한일병탄늑약' 당시 미국과 영국의 지지가 이 조약의 정당성이 될 수 없고, 국제법적으로도 통용되지 않는 내용이다.
우리의 이완용은 '을사늑약'과 '정미 7 늑약'에 이어 대한제국을 일본에 갖다 받치는 '한일병탄늑약'에까지 등장하며 당시 최고의 매국노임을 다시 한번 만천하에 알리게 된다.
이렇듯 친일 매국노들에 의해 대한제국은 멸망하게 되고, 다시 나라를 되찾기 위해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독립운동을 펼치게 된다. 중국 상해에서 탄생한 '대한민국 정부' 선포는 현 대한민국의 시작을 알리는 시작이 되었다.
(본 포스팅은 글쓴이의 야주 얕은 지식과 구글, 다음, 나무위키등에 있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