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신진사대부는 권문세족을 비판하며 화려하게 등장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상을 펼칠 수 있는 주군(이성계)을 추대하며 새로운 나라를 꿈꾸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꾼 신진사대부들은 조선에서 무엇을 이루려고 했을까. 조선왕조 500년의 시작 그들의 이야기다.
권문세족의 몰락
고려는 태조 왕 건이 각 지방 호족들과 혼인으로 자신의 권력기반을 닦은 이후 호족의 나라였다. 호족은 지방의 뛰어나고 우수한 친족집단을 의미한다. 고려시대는 호족들의 권력이 막강했기에 '음서제'라 하여 5품 이상의 관직생활을 했거나 국가에 공훈을 세운 인물의 후예, 혹은 왕족의 후예를 과거제를 거치지 않고 관리로 임용하는 제도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지속적으로 후대에 물려줄 수 있었다. 이러한 호족의 후손들은 고려 말기 정치, 경제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보수적인 세력으로 변모하게 되는데 이들이 권문세족이다. 권문세족은 고위관직을 독점하였으며, 권력을 장악하였다. 이들 권문세족 역시 대를 이어 고려 말기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러한 권문세족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부패해질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이 권력을 대물림하는 이유가 본인의 능력 때문이 아닌 조상의 공훈으로 물려받은 것이기에 그들은 조선의 선비들처럼 과거에 급제해야 하는 이유가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오로지 조상의 음덕으로 많은 부와 명예를 거머쥔 그들은 부를 축적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하였다.
1170년 무신정변의 단초가 된 김돈중은 '삼국사기'를 지은 김부식의 아들로, 그는 자신보다 연배가 훨씬 높은 무인 정중부를 인종이 참여한 연회장에서 그의 수염을 불태워버린다. 김부식은 경주 김씨로 신라 왕실의 후예였지만 그의 부모는 관직이 높지 않아 과거로 관직에 진출하였다. 하지만 그의 아들 김돈중의 만행으로 고려 무신정권이 시작되고 말았다.
정중부로 인해 시작된 무신정권은 최충헌의 최씨 무신정권 60년과 몽골(원)의 침입등을 거치면서, 국가 재정은 거덜나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권문세족의 재산은 기하급수적으로 쌓여가기 시작했다. 잠시나마 공민왕에 의해 신진사대부가 등장하며 개혁정치를 펼쳤지만, 노국공주의 죽음 이후 공민왕 역시 스스로 자멸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고려는 새 살이 돋을 틈도 없이 서서히 썩어가기 시작하였다.
신진사대부의 등장
신진사대부는 고려말, 조선초 정치, 사회, 문화등 다방면에서 개혁을 이끌었던 세력들이다. 그 중심에 선 인물은 '이색'인데 그는 고려말 성리학을 공부하는 모든 신진사대부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이색은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더불어 고려삼은으로 불리는 존경받는 성릭학자였다. 그의 문하에 정몽주를 비롯하여 정도전, 이숭인, 남재, 권근, 하륜, 윤소정 등 고려말 조선초에 등장한 대부분의 신진사대부들을 키워낸 인물이다. 그의 제자들 중 정몽주, 길재의 후학들이 조선에 이르러 사림파를 형성하였다.
그들이 공부한 성리학은 중국 송나라 시대 획일화된 유교사상에 대한 비판과 불교의 영향력 증대에 비판하며 탄생하였다. 조선이 숭유억불 정책을 시행한 이유역시 이러한 성리학의 탄생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고려말 조선초 신진사대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중국 남송의 학자 주희는 불교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기에 그의 불교를 배척하는 사상은 자연스레 신진사대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공민왕은 최충헌의 무신정권 60년으로 망가진 고려를 다시 재건하고 싶어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기존 훈구세력과 권문세족들이 아닌 본인을 보좌할 새로운 세력이 필요했다. 그러한 이유로 공민왕은 성리학의 대부인 이색을 발굴하게 되고 그의 제자들 역시 이색과 함께 고려를 새롭게 재건하기 위한 개혁정치를 펼쳤다.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원 개혁을 추진하며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철령 이북의 영토를 다시 되찾아온다. 또한 원나라의 간섭으로 인해 바뀐 관제를 다시 복구시키고, 몽골식 생활풍습을 금지시켰다. 그렇게 서서히 친원세력을 몰아내고, 정방을 설치하여 왕권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공민왕은 신돈을 등용하여 불법적인 농장을 없애고 그 토지를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며 농장의 노비들은 양인으로 해방시켰다.
신진사대부 세력은 이렇듯 개혁적인 공민왕과 함께 부패해진 고려를 바로세우고 원나라의 힘이 약해지는 틈을 타서 새로운 중국의 주인으로 떠오르는 명과 협력하며 국가기반 자체를 완전히 뒤바꾸며 백성들의 지지를 얻기 시작한다.
이성계, 홍건족과 왜구를 섬멸하며 영웅으로 떠오르다
이성계는 충숙왕 4년인 1335년 동북면에서 태어났다. 이성계가 전주 이씨의 시조인 이유는 그의 조부 이안사가 전주의 호족출신이기 때문에 그의 조부의 본을 딴것이다. 이안사가 동북면에 자리를 잡은 이후 서서히 지지기반을 넓혀갔다. 그의 아버지 이자춘은 쌍성총관부 만호로써 원나라에 벼슬을 하고 있었다. 이때 당시는 원나라의 지배기여서 후에 일부 학자들이 이안사가 동북면에 자리 잡고 그의 조상들이 원나라 벼슬을 한 것을 이유로 이성계를 원나라인으로 주장하는 이가 있는데, 글쎄.. 난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이성계는 전장에서 신궁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이름이 고려에 널리 알려진 계기는 바로 왜구인 아기발도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황산대첩'이다. 드라마에서도 곧잘 묘사되는 황산대첩은 고려말 왜구를 숙청한 최대의 전투로 이성계의 이름을 천하에 알리게된다. 그렇게 이성계는 동북면에 확실한 자기세력을 뿌리내리며 동시에 신진사대부들인 정몽주, 정도전과의 교류를 통해 정치가로서의 수업도 착실히 받게 된다. 여기에서 정몽주는 이성계를 통해 고려를 재건하려고 하였고, 정도전은 이성계를 주군으로 내세워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려 하였다. 이성계는 이 순간 정도전과 손을 잡으며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그의 아들 이방원에게 목숨을 잃게 되고, 정도전은 새로운 나라 건설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온건 개혁파와 급진 개혁파의 대결
공민왕의 개혁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으며 더욱더 개혁적인 정책을 펼쳐나가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공민왕과 신진사대부의 최대 약점은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자체가 너무나 미약하였고,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등으로 국제정세가 개혁적인 정책을 펼치기엔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중 권문세족의 반발로 신돈이 제거되고, 공민왕 역시 안타깝게 시해당하고 만다. 그들의 1차 개혁은 이렇게 공민왕의 죽음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공민왕과 함께한 1차 개혁에서 자신들을 뒤받침할 세력이 없음을 절실하게 느낀 신진사대부들은 그들의 든든한 울타리이자 뒷배가 되어줄 세력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때 등장한 세력이 홍건족과 왜구를 격퇴시키며 새롭게 등장한 무인 '이성계'였다. 이성계 역시 기존의 권문세족보다는 신진사대부들의 개혁적인 정책에 흥미를 느꼈고, 자연스레 신진사대부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강력한 세력이 되었다.
이 당시를 즈음하여 신진사대부들 역시 고려를 재건하려는 온건적 개혁파와 고려를 없애고 새로운 나라를 일으키려는 급진적 개혁파로 분열되게 된다. 온건적 개혁파는 신진사대부들의 정신적 지주인 목은 이색을 비롯하여 그와 함께 고려말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포은 정몽주가 주를 이루었다. 그들은 역성혁명이 아닌 지금의 고려를 재건하는 방향으로 개혁 정치를 펼치고자 하였다. 하지만 기존의 고려의 제도 속에서는 자신들의 이상을 펼칠 수 없다고 판단한 또 다른 신진사대부들은 고려의 왕 씨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고자 했다. 그들은 이성계를 새로운 나라의 주군으로 선택하며 역성혁명을 주장하였는데 이들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삼봉 정도전이었다.
정몽주와 정도전은 이색의 문하에서 함께 수학을 하였으나 그들이 생각하는 개혁의 길은 이렇듯 고려를 새로이 재건하려는 온건개혁파와 고려를 없애고 새로운 나라를 일으키려는 급진개혁파로 나뉘게 된다. 이성계는 정몽주와 정도전을 모두 거두려 하였으나 정몽주의 고려를 재건하려는 주장을 굽힐 수가 없었다.
위화도 회군의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된 이성계
더 이상 고려는 나라를 지탱할 힘이 없었다. 남은 건 고려 최고의 장수이자 최후의 충신 최 영뿐이었다. 1388년 최 영은 우왕과 더불어 요동을 공격해서 명나라의 기세를 꺾고자 했다. 하지만 이성계는 이런 최 영의 주장을 반대하며 4 불가론을 전했다.
1. 작은 나라인 고려가 큰 나라인 명을 공격하는 것은 불가하다
2. 농번기인 여름철에 군대를 동원하는 것은 불가하다
3. 군대를 명과의 전쟁에 모두 직결시키면 왜구의 습격에 대비할 수 없다
4. 여름철에 비가 많이 내리면 활을 쓸 수 없고 질병을 앓게 된다
이러한 이성계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최 영은 명과의 전쟁을 고집하며 요동정벌을 진행하였다. 어쩔 수 없이 요동정벌에 나선 이성계는 결국 위화도에서 군대를 돌려 회군하였다. 이가 바로 '위화도 회군'이며 이 사건을 계기로 이성계는 고려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위 4대 불가론은 이성계가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질적으로 이성계를 지지하는 급진개혁파의 주장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반원, 친명세력으로 친원세력의 권문세족이 주류인 고려를 재건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또한 실제 당시의 사회상을 보더라도 그들의 주장이 타당한 것으로도 보인다.
이성계를 지지하며 권력을 잡게 된 개혁파는 여기에서 완전히 둘로 나눠지게 된다. 이색과 정몽주를 중심으로 한 온건 개혁파는 이성계를 중심으로 고려를 다시 재건하려고 하였다. 정몽주는 이성계가 망해가는 고려의 마지막 희망이라 여기고 그를 비롯한 급진개혁파들의 주장을 대부분 받아들이며 고려를 재건하려 하였다. 하지만 정도전을 비롯한 급진 개혁파들은 고려의 제도와 사회를 완전히 개혁하여 새로운 나라, 즉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며 왕조교체를 주장하게 된다.
그들의 '과전법'으로 불리는 토지개혁에서 정면으로 부딪히게 된다. 정도전은 농민에게 토지를 직접 배분한다는 계구수전론으로 권문세족의 모든 재산을 빼앗으려 하였다. 이는 권문세족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구실이었지만 어쨌든 이러한 정도전을 비롯한 급진개혁파의 주장은, 고려의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어서 고려를 재건하려는 정몽주 등의 온건 개혁파는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이들의 싸움에서 이성계는 정도전의 급진개혁파와 손을 잡으며 정몽주의 온건 개혁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정몽주의 죽음과 절차적 정당성의 훼손
공양왕 4년인 1392년 정몽주는 이성계가 사냥 중에 낙마하여 큰 부상을 입게 되면서 마지막으로 급진개혁파들을 숙청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는 급진개혁파인 정도전, 남은, 윤소종, 남재 등을 탄핵하여 유배를 보내게 된다. 이성계는 당시 자신의 권력으로 정몽주를 제압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새로운 나라의 건국을 역성혁명이 아닌 공양왕의 선위를 받아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싶어 했기에 정몽주를 죽일 수는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은 정몽주를 제거하기로 결심하고 마지막으로 정몽주의 마음을 돌려보기로 하였다. 이때 나온 시조가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이다.
이방원 '하여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힌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천년만년 살고 지고
정몽주 '단심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의 생각을 확인한 이방원은 결국 선죽교에서 정몽주를 제거하게 된다. 정몽주의 죽음으로 온건 개혁파는 급진 개혁파와의 싸움에서 최종적으로 패하게 되고, 유배를 떠났던 급진 개혁파는 다시 조정으로 복귀하게 된다.
선위형식으로 조선을 건국하려던 정도전과 이성계의 계획은 이방원으로 정몽주 제거로 인해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이성계와 이방원의 사이가 멀어진 결정적인 계기가 된 사건이다. 어쩔 수 없이 정도전은 최소한의 선위절차를 밟게 되는데, 정비 안씨를 찾아가 공양왕의 폐위와 이성계를 새로운 왕으로 옹립하는 교지를 요청하게 된다. 이를 정비 안씨가 수용함으로써 공양왕은 정식으로 폐위되고, 이성계는 신하들의 추대와 간청으로 1392년 7월 새로운 왕조를 열게 된다.
정도전이 설계한 한양 천도와 조선 선포
새 왕조를 연 이성계(태조)는 수도를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아무래도 최대한 고려의 색깔을 빼는 것이 급선무였던지라 정도전, 하륜 등에게 명하여 새로운 나라의 수도를 옮기는 일을 진행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한 천도계획은 계룡산과 무악, 남경을 검토하여 최종적으로 남경, 즉 지금의 서울로 천도를 하게된다. 정도전은 수도이전부터 조선조 초대 궁궐인 경복궁 창설, 한양 성곽 증축등의 총책임자로서 조선조 초기의 밑그림을 그리게 된다.
(본 포스팅은 글쓴이의 야주 얕은 지식과 구글, 다음, 나무위키등에 있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