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벌거벗은 세계사 28. 게르만 민족의 이동으로 시작된 유럽 국가의 시작

반응형
반응형

 

 

 

알렉산더의 동방원정과 헬레니즘 문명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들이 그러했듯이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제자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키운듯하다. 어린 나이에 마케도니아의 왕에 즉위한 알렉산더는 아버지 필리포스2세의 친구인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어린시절부터 철학, 정치, 과학 등 전분야에 걸쳐 많은 가르침을 받는다. 물론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때문이라고만 할 순 없으나 알렉산더는 '그라니코스 전투'를 시작으로 페르시아 다리우스 3세와의 전쟁, 그리고 이집트까지 그 영토를 확장시키며 그가 정복한 수많은 곳에 그의 도시인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한다. 그리고 그의 정복전쟁의 이동에 따라 그리스, 로마의 문명은 유럽 전역을 비롯해 아프리카까지 전해졌으며 그렇게 그리스 문명과 페르시아 문명, 오리엔트 문명은 서로 융합되어 독특한 문명을 꽃피운다. 이것이 헬레니즘 문명이다.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은 단순한 정복전쟁을 떠나 동양과 서양의 첫 번째 문화융합이라는 결과를 낳게 된다. 실질적으로 그리스 문명이 서양 전역과 동양으로 뻗어나갈 수 있었던 원인에 대해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알렉산더가 건설한 '알렉산드리아'는 이런 그의 철학과 사상을 세계 곳곳에 뿌리내리게 하였다.

 

 

인도의 간다라미술은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받게된다 (사진출처:https://ko.wikipedia.org/wiki/%EC%9C%A0%EB%9F%BD%EC%9D%98_%EC%97%AD%EC%82%AC#/media/%ED%8C%8C%EC%9D%BC:Gandhara_Buddha_(tnm).jpeg)

 

 

알렉산더의 죽음과 유럽의 분열

 

 

알렉산더의 유럽 정벌은 기원전 323년 바빌론에서 갑작스러운 열병으로 급사하게 되면서 그가 정복한 대제국은 혼란에 휩싸이게 된다. 그의 사후 40년간 그가 이룩한 대제국은 끝없이 분열했으며 알렉산더의 왕통은 단절되어 버린다. 결국은 (1)안티고노스가의 마케도니아, (2)셀로우코스가의 시리아, (3)프톨레마이오스가의 이집트로 최종 분열된다. 결국 기원전 200년 즈음을 기점으로 로마가 세 왕국을 차례대로 정복하며 알렉산더의 헬레니즘 문명은 막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로마'가 역사에 등장하게 된다. 로마 초기 이야기는 [(짝퉁) 벌거벗은 세계사 26. 고대 그리스와 로마 첫 번째 이야기]에서 참고하시길...

 

 

(1) 안티고노스 : 알렉산더의 부장 장군이던 안티고노스 1세 모노프탈모스가 창시한 헬레니즘 시대의 왕조로 마케도니아 왕국의 세번째이나 마지막 왕조이다.

(2) 셀로우코스 : 헬레니즘 시대 가장 영토가 넓었던 제국으로 동방 영토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3) 프톨레마이오스 :  알렉산더 사망 후 기원전 30년까지 이집트를 지배한 마케도니아 왕조이며 초대 왕 프톨레마이오스1세이고 마지막 왕이 바로 클레오파트라 7세이다. 클레오파트라 7세 이후 독립국가 이집트의 군주로서의 파라오는 명맥이 완전히 끊기게된다. 이들은 새롭게 건설한 '알렉산드리아'를 수도로 삼았는데, 당시 고대 세계에서 가장 번성한 대도시였던것으로 추정된다.

 

 

 

(짝퉁)벌거벗은 세계사 26. 고대 그리스와 로마 이야기 첫번째

그리스 로마 이야기는 대부분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정도로 알고 있다. 이 호메로스의 작품은 서양 문학의 최초이자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포스팅은 일리아드와 오

chhyung.tistory.com

 

 

반응형

 

 

게르만 민족

 

 

게르만 민족은 인도유럽어족 중에 게르만어계열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보통 독일어권 민족을 게르만 민족이라고 하는데 그와 더불어 영어권 백인들의 뿌리가 되는 민족이기도 한다.

여기서 '게르만'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애매하다. '게르마니아'라는 지명이 게르만인의 땅이라는 뜻이긴 하지만, 이 게르만의 뿌리가 어디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는듯하다. 그리스의 역사학자 '타키투스'는 게르만이 라인강 서쪽의 통그리족이라 주장하며 그 지역의 민족집단을 게르만 민족이라고 한다고 주장하였는데, 대강의 지역은 라인강 위주의 지역 민족을 말하는 것일 것으로 추정된다.

 

 

 

 

게르만민족의 이동(사진출처:https://ko.wikipedia.org/wiki/%EA%B2%8C%EB%A5%B4%EB%A7%8C%EC%A1%B1%EC%9D%98_%EB%8C%80%EC%9D%B4%EB%8F%99#/media/%ED%8C%8C%EC%9D%BC:Invasions_of_the_Roman_Empire_1.png)

 

 

 

훈족 '아틸라'에 의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훈족은 참 독특한 민족이다. 4세기에서 6세기 사이 중앙아시아에 존재했던 유목민족들로 튀르크 계열로 추정되는 민족이다. 유럽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스키티아라고 알려진 지역의 일부인 볼가강 동쪽에 살았다고 처음 기록되고 있다. 서양에서 '훈족'으로 알려진 이 민족이 바로 동양에서 '흉노'로 알려진 기마민족이다. 한국사에서 4세기에서 6세기 고대 삼국시대로 우리는 예전 드라마 '태왕사신기'에서 광개토태왕 '담덕'의 정복전쟁 중에 부딪친 유목민족으로 흉노가 등장하는데, 이때 흉노족의 수장인 '아틸라'가 바로 흉노족의 최대 전성기를 일군 군주로 알려져 있다. 보통 흉노, 스키타이로 알려진 민족이 바로 그들이다.

 

훈족은 4세기 이후 중앙아시아에서 흑해 연안과 동유럽으로 이주하면서 기존 민족이던 게르만족이 서쪽으로 밀려나게 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훈족은 지금의 우크라이나 일대에서 당시 게르만 민족 중 제일 날나가던 동고트족을 정복하며 이들이 서진하면서 주변의 다른 게르만 계열의 민족들도 모두 쓸어버리게 된다. 이 결과가 바로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다.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을 계기로 서로마 제국은 멸망하게 된다. 훈족은 아틸라가 군주로 있던 당시 최대 전성기를 맞이하였지만 대부분의 유목민족이 그러하듯 훈족 역시 아틸라 사후 빠르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바로 그들 스스로 문자와 기록을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 훈어, 고트어등이 있었지만 이들의 문자와 언어는 그들을 제외한 다른 민족에게 전파되지 못했고, 또한 부족연맹체로 이루어진 집단이었기 때문에 강력한 왕권체제를 이루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이런 게르만 민족의 이동으로 서로마 제국의 영향권에 있던 유럽, 아프리카 등지에 게르만 민족은 수많은 왕국을 세우게 된다. 영국의 시초가 되는 앵글로 색슨족의 '칠 왕국', 오늘날 네덜란드 지역에 건국된 '프리슬란트 왕국', 지금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시초가 되는 '프랑크 왕국', 북아프리카 전역을 지배한 '반달 왕국'등이 모두 이 시기에 건국된 게르만 민족 계열이 세운 왕국들이다.

 

(포스팅은 글쓴이의 얕은 지식과 구글, 다음, 나무위키등에 있는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됨^^)

 

 

반응형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