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국이라 불린 제주.. 우린 얼마나 알고 있나...
- 역사와 정치/곰돌이의 역사관(글씨기 연습용)
- 2023. 3. 10.
오늘의 쓸데없는 history... 제주도 !!!!
[주요내용은 네이버 지식백과를 참조하였습니다]
== 제주의 시작.. 탐라 ==
제주도에는 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한다.제주도에서 발견된 뗀석기를 통해 이때부터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인돌, 토기 등이 발견되는 걸로 봐서 제주도는 석기 시대부터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에서 제주도가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 시대이다. 하지만 이 당시 제주도는 탐라국이라는 독립국으로 독자적인 국가를 운영하고 있었다. 탐라국은 삼국 중 백제와 교류가 가장 빈번하였고, 백제가 멸망한 후에는 신라와 교류를 하면서독립된나라를 유지했다. 이때 신라는 탐라라는 이름으로 탐라를 신라에 귀속하게 된다.
탐라국 자체가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이기때문에 탐라국은 초기 부족국가를 형성할 떄부터 해상무역을 통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다. 또한 한반도와 떨어진 섬이라는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삼국의 통일 전쟁과정에서 벗어날을 수 있었고, 초기에는 백제와의 교역, 통일 신라이후에는 신라에 일정 조공을 받치며 나름 탐라국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였던 것이다.
고려 시대 초창기까지도 탐라국은 고려와는 다른 독립된 국가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1105년(고려 숙종 10년)에 탐라국은 독립국의 지위를 잃고 고려에 귀속되었다. 이 때 탐라국이 아니라 탐라군으로 바뀌어 고려에 속한 하나의 군이 되었다.
“탐라를 고려에 포함시킬 것이다. 하지만 왕과 왕자는 그대로 두어 탐라를 다스리도록 하겠다!”
고려의 한 지방이 되었지만 탐라의 왕은 계속 탐라국을 다스리도록 하였다. 고려에 속한 탐라군이지만 고려는 탐라군을 중국이나 일본과 같이 외국을 대하듯 사신을 대하였다. 이는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고려입장에서 탐라군은 고려의 군이긴 하나 외국과 같이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탐라군은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시기, 탐라에 목장을 짓고 원나라 몽골 평야에서
말을 가져와 말을 기르게 하였다. 제주도에 말이 많은 이유는 바로 이 시기부터이다..
이렇게 고려시대까지 고려의 속국형태로 지내온 탐라는 조선 시대로 들어오면서 정부에서 실제로 관리를 탐라로 내려보내 탐라를 관리함으로 비로서 우리나라 역사에 정상적으로 편입하게 된다. 이 후 탐라는 근대까지 전라도에 속한 지역이었다가 1946년이 되어서야 자치도로 분리되었다.
제주 방언은 상당히 특이하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삼국시대부터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하였고, 지리적으로 일본과도 가까웠기에 그들의 언어에는 일본어가 어느정도 섞여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고려 시대 원나라(몽골)의 지배를 받던 대략 20여년의 시기동안 몽골어도 그들의 언어에 섞여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토종 제주 방언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이러한 독특한 제주어도 점점 소멸되어 간다고 하니.. 우리 문화적 관점에서도 소멸되지 않도록 유지시킬 수 있는 그런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 탐라국 역사의 시작 삼성혈 신화 ==
제주시 이도 1동에 가면 움푹 파인 세 개의 구덩이가 있다. 삼성혈 이라고 부르는 이곳이 바로 탐라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신화에 따르면 약 4,300년전 이 세 구멍에서 탐라의 시조가 되는 세 인물이 태어난 곳으로 전해진다. 뭐.. 우리 민족이 5,000년 역사이니 비슷하다.. ㅎㅎㅎ 우리 단군님보다 더 오래됐으면 좀 거시기할뻔 했는데.. ㅠㅠ
먼 옛날 탐라에는 사람도 없고, 곡식도, 가축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양을라, 고을라, 부을라라는 세 사람이 땅에서 솟아났다....(신화로 생각하자.. ㅠㅠ)
세 사람은 모두가 잘생겼고, 거짓이 없고, 서로 상부상조하며 살던 어느날... 배 한 척이 탐라로 왔다.
그 배에는 벽랑국의 공주 세 명이 타고 있었는데 양을라, 고을라, 부을라 세 사람은 그 세 명의 공주들과 결혼을 하게 된다.
성산읍 온평리에 있는 혼인지는 세 을라와 공주들이 결혼을 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공주들은 자기들이 가져온 곡식 씨앗과 송아지, 망아지 등의 가축을 가져와 탐라에도 사람들이 정착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이에 세 을라는 화살을 쏘아 떨어진 곳을 각자의 정착지로 삼게 되는데, 이때 쏜 화살은 각각 일도, 이도, 삼도에 떨어졌다.
제주시의 일도동, 이도동, 삼도동은 여기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이렇듯 세 을라는 탐라국에 나라를 세우게 되는데 이 때 이름을 탐라라고 짓고 함께 탐라를 다스렸다. 세 을라의 후손들이 바로 제주 토착 성씨인 고 씨, 부 씨, 양 씨이다.
여기서 하나 흥미로운건 벽랑국의 위치다.. 최근 역사학자들은 이 벽랑국을 현재의 완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본인 역시 일리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4,300년 전.. 그 당시의 해양 기술을 감안하면 제주 근방의 지역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멀어도 대마도 정도이지 않을까.... 아직은 정확하지 않은 역사적 내용으로 앞으로 좀 더 많은 조사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 탐라국과 우리 고대, 중세국가와의 관계 ==
삼국시대에는 '고.을.나'의 15대 후손 3형제 (후, 청, 계)가 당시 한국의 고대왕조의 하나인 '신라'(B.C 57~A.D 935)에 입조하여 '탐라'라는 국호를 갖게 되었고, 이때부터 '탐라'는 '신라'를 섬기게 되었다.
옛 문헌에 따르면 이 탐라국은 고구려, 백제 및 신라로 분열된 삼국시대에는 이들 삼국과 독자적으로 혹은 그에 예속되어 있으면서 외교관계를 맺어왔다. 탐라국이 육지에 예속되어 행정구역으로 편제되기 시작한 것은 고려 중기 이후이다.
1271년(원종 12)에 삼별초가 제주도에 웅거하면서 몽골에 마지막까지 항쟁을 벌이다가 1273년에 패한 후 탐라국은 원나라의 직할지가 되어 목마장이 설치되었다. 그후 약 1세기 동안 탐라국은 고려와 원나라 사이에 소속이 여러 차례 바뀌는 복잡한 과정을 겪다가 1367년(공민왕 16)에 완전히 고려에 회복되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탐라가 육지로 와전히 귀속된건 조선 태종이후라고 볼 수 있다. 이때 탐라는 전라도에 귀속되어 1946년까지 이어져온것이다.
== 우리가 꼭 기억해야 인물 김 만 덕 ==
제주도를 역사적으로 기억하는 것은 그렇게많지 않다. 6.25 당시 제주 4.3희생사건은 나중에 따로 알아보기로 하고...
제주도는 조선 시대 이후 유배지로 가장 많이 각광(?)받은 곳이다. 우리가 흔히 아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유배지가 제주도였다. 추사는 다산 정약용과 조선 시대 최고의 실학자 중 한명으로 거론되며 그의 글씨 추사체는 그 당시 청나라에도 널리 알려졌다.
그의 가문은 조선 후기 최고의 명문가문 중 하나임을 감안하면 추사는 어린시절부터 딱히 어려움없이 자랐을 것이다.. 그런 추사라 제주도로 유배를 왔으니 이곳이 얼마나 답답하였을까...라고 잠깐 생각해보고...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할 인물은 바로 거상 김 만 덕 이다.. 드라마로도 방영한 적 있는 이 분은 평민인 김응렬과 어머니 고씨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의 성함은 정확하지 않다.
전해진 얘기로 어릴때 부모를 모두 잃고 은퇴한 기생의 수양딸로 들어가 기생 수업을 받았다고한다.
김만덕이 거상이 된 이유는 아직 확실하게 고증되어지지 않았다. 기생수업을 받긴 하였지만 기생이 되지 않은것으로 보이며, 성인이 된 후 객주일을 하며 재물을 모은것으로 보이나 그 재산 형성 과정은 명확하지 않다.
그 당시 심노승이라는 자가 김만덕이 기생출신으로 성격이 야비하고, 음흉하여 쏼라쏼라라해서 부를 축적했다고 하나 믿을 수 없는 게.. 김만덕은 죽기 전 자신의 양아들에게 기본 생활비만 남겨주었고, 나머지 모든 재산은 제주도의 빈민들에게 기부했다고하니 앞의 심노승이란 자가 남긴 기록은 그저 김만덕과 경쟁관계에 있는 객주 정도로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표본이다..(본받아라.. 재벌들아!!!!) 이 당시 제주도민의 삶은 궁핍하였다.
제주의 특산물은 귤을 중앙정부에 철마다 세금으로 받쳐야해서 실제 제주민은 제대로 된 귤을 먹어보지 못했을것이다. 또한 땅이 육지만큼 농사를 지을정도로 비옥하지 않아서 가을에 거둬들이는 곡물또한 육지와 비교하여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살아 생전에도 김만덕은 1795년 제주도에 태풍이 강타해 농사에 타격을 입었을때 자신의 재산으로 육지에서 쌀 500섬을 사들여 제주도민을 구하라고 관가에 헌납했다고한다. 김만덕이 생을 마친게 1812년이니... 지금으로부터 200년 정도의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다. 추사 김정희가 1856년에 숨을 거두었으니 지금으로 대략 160년 전이다.. 하긴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독립한게 1945년이다... 엄청 오래돼 보이는 얘기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냥... 제주도에 대해서 이것저것 기록해보았다.
제주 신화는 우리 단군 신화나 신라의 혁거세 신화와는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 우리는 제주도가 그 옛날 존재할때부터 그냥 우리 제주도인줄 알았을것이다. 하지만 제주는 제주 나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며 발전하였고, 어찌보면 그들의 국력이 조금 더 강했다면그냥 제주라는 독립국으로 계속 존재했을지도 모를일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
대강의 기억은 나의 머리속에서 나왔지만 세세한 부분은 naver의 힘을 빌려서 작성하였다 ^^
다음번엔 daum의 힘을 빌려볼까 한다....(라임 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