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5일 다섯번째 지하철 여행... 국립 고궁 박물관.... 도 홀로여행이다.. 야호!!!!!! >.<
경복궁을 먼저 둘러보고 옆에 위치한 국립 고궁 박물관으로 향하였다.
헌데 포스팅 순서가 바뀐 이유는 아직 경복궁 사진과 포스팅을 다 마무리하지 못했다.. ㅜㅜ
국립 고궁 박물관은 조선왕조 500년을 기록한 박물관이다.
나름 조선의 서민들의 삶에 대한 전시를 기대했지만 기대와는 다르게 조선왕조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_-;;
뭘.. 실망이라고까진 할 건 없다.. 경복궁옆의 고궁 박물관이라.. 나름 컨셉은 맞추었다....ㅎㅎㅎ
원래 오늘 목적지에 여기는 없었기에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포스팅을 하였다...
아메바적인 두뇌를 가졌기에 원래 계획한 곳이 아닌곳을 돌아다니면 머리회로가 1차원에서 멈추고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ㅠㅠ
여기 박물관의 자세한 내용은 위의 홈페이지를 참조하거나 포스팅 맨 아래... 추천하는 블로그가 있으니 그곳을 참조하길^^
국립 고궁 박물관은 경복궁역을 나오면 바로 옆에 위치해있다.
박물관을 먼저 구경하고 경복궁으로 향해도 되고, 경복궁을 모두 구경하고 박물관으로 향해도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무료관람'은 반대하는 입장이다. 왠지 무료는 나를 좀.. 뭐랄까..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_-;;
물론 학생들의 무상급식등 청소년들에게 지원되는 혜택들에 대해서는 적극 찬성한다.
하지만 일반 성인들에게까지 무료혜택은 조금 반대하는 입장이다. 어느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성인남녀는 100원이 됐든 1,000원이됐든 일정 부분의 비용을 지불하는것이 사회를 구성하는 요소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박물관 관람료를 10,000원씩 받자는 얘기는 아니다. 경제적 활동을 하는 구성원들은 경제적 활동에 비례해서 작은 금액이라도 그 비용을 지불하고, 그 비용으로 청소년과 취약계층에게 지원을 하는 그런 시스템이 좋다고 생각한다.
오해하지 말길... 보수세력이 얘기하는 선택적 복지를 말하는것이 아니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나오는 첫 전시물이다..
임금이 앉는 자리... 문득 든 생각인데.. 여기.. 임금님이 앉으시면.. 좀.. 딱딱하지 않았을까.. -_-;;
영조가 왕세손인 정조에게 직접 글씨를 써 내린 은인이다.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정조의 효성을 기리기위해 은인에 '효손'과 글씨를 쓴 나이 팔십삼서를 친히 적어 정조에게 주었다. 왕의 글씨를 새긴 유일한 어보이다.
* 은인 - 은으로 만든 보인을 이르는말이다. 은으로 제작한 인장을 흔히 '은인'이라고 한다.
* 어보 - 국가와 왕실을 상징하는 예물을 일컫는다. 보통 왕, 왕비, 왕세자등 왕실의 의례용 도장을 말한다.
구장복을 입을 때 머리에 쓰는 최고 격식의 모자를 면류관이라고한다.
앞뒤로 옥과 구슬이 늘어뜨려져있어서 시야를 가리고, 좌우에도 작은 숨뭉치가 늘어뜨려져 있다. 여기에는 '악은 보지 말고 나쁜 말은 듣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
* 구장복 - 국왕이 지녀야 할 덕목인 9종류의 장문을 옷에 그리거나 수놓아 군왕의 위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의복
* 장문 - 면복에 음향오행설에 따라 수놓은 문양
의외로 소박한 느낌이다..
면복은 국왕의 평상복(?)이 아니라 국가의 중요행사와 종묘제례등에 입는 최고의 예복이다.
우리가 보통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본(?) 태조 이성계의 모습이다.
위 그림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현대에 반신상으로 모사한 작품이다.
태조 어진 원본은 태조가 청색 곤룡포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정면을 보고 있는 전신상이며, 1872년 고종 9년에 도화서 화원 조중묵이 그린것이다.
* 어진 - 왕의 초상화를 이르는 말
말 그대로 임금의 어필을 새긴 각석이다.
모든 문화재가 그렇듯 어필각석 자체가 중요한 문화재라기보다 새겨진 내용이 더 중요하다.
실록각은 조선왕조 실록을 보관하던 사고 중 경북 봉화의 태백산사고에 걸려 있었던 현판이다.
의궤는 국가와 왕실에서 진행된 행사의 모든 과정을 기록한 보고서 형식의 왕실 기록물이다.
조선에서는 혼례, 장례, 탄신의례 등 각종 행사를 치를 때 임시기구인 도감을 설치했고, 행사가 끝나면 의궤청에서 의궤를 편찬하였다. 의궤에는 국왕의 결정사항, 관청 간에 주고받은 문서, 담당자와 장인의 명단 등 행사와 관련된 모든 내용을 기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행사에 사용되는 각종 뭎룸과 반차도등을 그림으로 묘하여 글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세부 상황을 이해하기에 용이하다.
의궤는 조선 초부터 제작되었으나 현재는 임진왜란 이후에 제작된 의궤만 전해지며,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참..
이놈의 japan은 예나 지금이나 도움이 안된다..이런 씨xㅌe타vlksenkg...... >.<
정조는 1795년 정조 19년에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여 경기도 화성에 있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 현륭원을 참배하였다.
수천 명에 이르는 대규모의 행차를 통해 왕권을 견고히 하고 개혁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음력 윤 2월 9일부터 16일까지 8일간의 화성 행차는 반차도, 그림 병풍, 의궤 등 다양한 기록물로 전한다.
반차도는 행렬의 대열과 순서를 빠짐없이 그린 것으로 사전에 왕의 검토를 거치게 하였다.
주요 행사를 그린 기록화 8첩 병풍은 여러 벌 제작하여 공이 있는 자에게 상으로 내렸으며 의궤청을 설치하여 화성 행차의 전말을 날짜별로 기록하였다.
기존 의궤와는 달리 '원행을묘정리의궤'는 금속활자인 정리자로 글씨를 찍고, 목판으로 그림을 찍어 대량인쇄가 가능하게 하였다.
잠깐의 T.M.I
역사의 사실적 기록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그 역사적 사실을 적은 사료를 해석하는데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으나, 후대의 우리는 선대의 조상들이 기록해놓은 역사적 기록물을 토대로 그 시대의 생활을 유추하는 것이다.
물론 현재까지 사료로 남은 대부분(?)의 역사적 사료는 승자의 기록임을 부인할 수 없다. 가령 정조의 화성 행차만 보더라도 그가 남긴 역사적 사료들은 모두 그의 왕권을 더욱 공고히하는데 사용되어진 자료들이다.
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이 말을 누가 처음으로 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나도 몇번이나 이곳저곳 찾아보았지만 대부분이 추측일뿐 정확한 사실은 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승자는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기위해 모든 그 시댁적 상황을 자신들에게 맞추어 사료를 작성한다. 그렇기때문에 이제는 역사의 사료를 분석할때 좀 더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비판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조선시대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가 삼봉 정도전이다. 태종 이방원은 자신에게 필요한 정당한 사실만을 발췌하였고, 나머지 후대가 비난할 수 있는 모든 내용은 역사에서 빼버렸다. 누가 옳고 누가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역사는 비정하다... 그런 말이다.. ㅎㅎㅎ
규장각은 정조때 창설된 왕실 도서관겸 학술연구기관이다. 숙종대에는 어제나 어필을 봉안하던 작은 건물이었으나, 정조대에 창덕궁 후원의 2층누각에 자리하면서 역대 주요 도서를 보관하고 학문을 연구하는 중심 기관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정조는 규장가가을 통해 국내외의 방대한 도서를 수집 / 정리하게 하였으며, 당대 최고의 인재들과 함께 수많은 도서들을 간행하였다. 이뿐만 아니라 규장각으로 하여금 과거시험을 주관하게 하거나 승정원 등에서 담당하던 근시의 임무도 맡기는 등 기능을 확대시켰다. 이로써 규장각은 국가의 학술 및 출판을 겸하던 왕실도서관과 정책을 토론하는 중추기관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세종에게 집현전이 자신의 정책들을 개발하고 뒷받침하는 기관이었다면, 정조에게 규장각은 그의 실학적인 사상을 정립하고 실행시키는 기관이었다.
과거제도의 가장 의문점 중 하나이다.. 성리학은 인간의 본성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국가를 경영하고, 백성들을 관리하는데 인간의 본성만을 연구해서 어떻게 사용되어질까.. 포스팅을 다시 쭉.. 읽으면서 갑자기 든 의문이다.. -_-;;
경회루는 조선시대 연회관이다.. -_-;;
경회루의 건축원리를 설명하고 있는 '경회루전도'에 의하면 경회루는 불을 억제하기 위해 주역의 원리에 따라 지어졌다고 하는데, 화재를 방지하기위해 구리로 만든 용 두 마리를 연못에 넣었다고 한다.
1997년 11월 경복궁 경회루 연못 준설작업 중 경회루 북쪽 하향정앞 연못 바닥에서 청동용이 발견되었다.
적의는 조선시대 여성 최고 신분의 복식으로 조선말까지 왕비와 왕세자비의 궁중 대례복으로 사용되었다.
참고로 영친왕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이며 고종의 일곱번째 아들... 이름은 이 은이다.
침대없는 이런 온돌방이 좋다.. ㅎㅎㅎ
단순하면서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나 소박하면서도 아름답다.
앞에 보이는 차가 순종의 어차이고, 뒤에 보이는 차가 순정효황후의 어차이다.
순종의 차는 무려 제너럴모터스에서 제작했고, 순정효황후의 어차는 다임러사가 제작하였다..(겁나 비싸겠네.. -_-;;)
자동차의 초기 제작모델의 모형이되는 마차를 본따 제작된것으로 보인다. 나름 클랙식하고 왕실차라 그런지.. 멋스러워보인다...
여기까지가 국립 고궁 박물관 관람의 끝이다.
사진을 꽤 많이 찍긴했지만 방문객들이 너~~~무 많아서 어떻게.. 편집을 하기가 너무 애매했다.. -_-;;
확실히.. 이런 박물관은 무조건 일찍 가야한다.. 그래야 편안한 상태로 내 마음대로 찍사활동을 할 수 있다..ㅋㅋㅋ
여기는.. 다음에 다시 한 번 방문하고 싶다..
계획에 없던 방문이기에 제대로 관람도 못하였을뿐아니라, 생각외로 내가 모르는 조선 사료들이 많아서 엄청 재미있었다.
여기가 조선왕조에 대한 기록이라면 다음번엔 민초들의 삶을 기록한 곳을 찾아보고 싶다.
아.. 여기.. 국립 고궁 박물관... 다른 블로거님의 포스팅도 함께 소개한다...
아래 블로거 주인님이.... 요즘 나의 박물관 관람의 주범인것은 안 비밀이다.. ㅋㅋㅋㅋ.
역사관련하여 구경하고 공부하는게 일생의 취미인데.. 이 분 블로거보면 서울의 웬만한 역사 박물관은 다 가본듯하다..
젠장................너무 부럽다........ㅠㅠ
이 분.. 벌써 2019년에 여길 방문하셨다.. 하.. 참... 난 뭐했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