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100%로 까칠양파님이 순간 미웠다... -_-;;
4.19 국립묘지를 다녀오고(4월 15일) 집에 도착 후, 거짓말처럼 몸살에 걸렸다...ㅜㅜ
물론 몸살의 원인 90% 이상은 이 날 비를 맞았기 때문이니라....
지난번 서대문을 방문했을때 4.19 혁명 기념도서관을 가지 말았어야 했다.
그냥 애초에 내가 알고 있는 정도의 4.19 혁명으로만 알고 있어야 했고, 굳이 관련 자료들을 다시 찾아볼 필요는 없었다.
그럼 나에게 4월 19일은 부정선거로 인해 촉발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첫 발??? 정도로만 알고 그냥 그날이 되면 1분쯤 묵념을 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4.19 혁명 기념 도서관을 가지 않았다면 관련 포스팅을 쓰지 않았을 것이고, 그럼 까칠 양파님이 본인의 포스팅을 알려주지 않았을 것이며 난 굳이 우리나라 근대사에 대해서 더 파고들지 않았을 것이다....
하긴 뭐.. 그렇게 되면 결국엔 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건가... ㅠㅠ
1960년 3월 15일 3.15 부정선거에서부터 4월 26일 이승만의 하야까지....
4.19 혁명은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함께 꼭 기억해야 하는 날이다.
정말 놀라운 건 4.19 혁명의 시작인 2.28 대구 시위는 고등학생들이 주도했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실이긴 하였지만 이때 우리나라 고등학생들......
세계사에서 학생이 중심이 되어 무언가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혁명이 있었나....
아직은 생각나지 않는다...(그때의 고등학생님.. 존경합니다...ㅠㅠ)
일단 오늘의 포스팅은 다른 건 다시 정리하기로 하고 '진영숙 학생'의 유서만 소개하기로 한다.
한성 여자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진영숙 학생은 그 해 4월 19일 방과 후 집에서 어머니를 기다리며 유서를 작성 후 데모에 참여했고, 버스에서 머리를 내밀고 데모를 하다 미아리 고개 어딘가에서 경찰의 총에 맞고 사망하였다.
인터넷 어디에도 그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없다. 어찌 보면 당연할 것이다. 진영숙 학생은 그 당시 그냥 중학교에 다니는 어여쁜 중학생일뿐이었으니 그녀 자신도 본인이 그렇게 유서를 쓰고 사망할지는 몰랐을 것이다.
자기 자신과 아무런 연관도 없는 마산에서 3.15 부정선거 시위로 김주열 학생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책상에 엎드려 울었다는 진영숙 학생... 도대체 이 학생은 어머니에게 어떤 교육을 받았기에 그 나이에 그런 사회적 부조리를 알고 거기에 울분할 수 있었나.... 중학교 2학년이면 15세 소녀이다... 계산해 보니 이때.. 우리 아빠 대략 국민학교 6학년정도 되었을 당시다..-_-;;
난 중학교 2학년 때 무엇을 했나... 그냥 학교 수업을 마치면 도서관에서 책이나 읽던 그저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다..
아마 이 학생도 그러했을 것이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수다 떨고, 방과 후에 혼자서 본인을 키우시는 어머니를 위해 집안일을 돕는 그런.. 착한 학생일 뿐이었을 것이다.
중학교 2학년이 도대체 무엇을 안단 말인가... 1960년에 중학교 2학년이면 우리나라가 광복되던 해 태어나, 학교도 안 들어간 나이에 한국전쟁을 겪고 이제 겨우 열심히 살아가자고 다짐하던 시기였을텐데... 글을 쓰면서도 원망스럽다.. 왜 이런 사람들에게 행복한 삶을 주지 않는 것인지....... (이래서 난 종교를 믿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는 잊지 못하는 편지는 윤봉길 의사의 편지다...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어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에서 보건대
동양으로는 문학가 맹자가 있고
서양으로는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
- 윤봉길 의사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
윤봉길 의사가 1932년 12월 19일 일본 대판 위수형무소에서 서거했을 때 나이가 24살이었다.
이 분도 참...... 어이가 없다... 어떻게 24살의 청년이 이런 글을 쓸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최소한 이분은 스물이라도 넘지 않았나... 하긴.. 지금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나....
처음 4.19 혁명 기념 도서관을 다녀온 후 까칠 양파님 때문에(?) 한 바탕 눈물을 흘렸지만, 다시 이렇게 눈물이 나올지는 몰랐다..
그나마 이 날... 선글라스를 끼고 비가 와서 다행이었다....-_-;;
남들이 보면 이상했을 것이다.. 나이 든 남자 한 명이 어느 액자 앞에서 혼자 훌쩍이고 있었으니.....
찾아보니 이때 당시 학생의 유서는 진영숙 학생의 유서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유서에도 썼듯이 이때 진영숙 학생처럼 많은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불의에 항거하고, 이승만 하야를 외쳤을 것이다.
포스팅을 마무리하며... 그녀의 편지를 지금 타이핑해 본다... 조금이라도 더 기억이 되려나....... 모르겠다.. 이런 아메마..ㅠㅠ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 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가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니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했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상 이만 그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