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쓸데없는 history.... 울릉도와 독도는 이사부 장군이 정벌한 후 1,500년 이상 대한민국 영토이다.
우리나라 역사문헌에 우산국에 대한 내용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작 몇 줄 정도로 기록되거나 언급조차 거의 되지 않는 나라이다.
우산국은 현재 대한민국의 울릉도와 독도, 그리고 그 주변섬과 해역을 포함하는 작은나라이다.
울릉도는 대략 500만년전 동해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독도가 먼저 생겨나고, 그 이후 울릉도라는 화산섬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또 2만년전 다시 한 번 폭발이 일어나고, 대략 7천년전 일본까지 화산재가 날아갈 정도로 폭발이 다시 발생하였다.
몇차례의 화산 폭발이 반복되면서 울릉도에는 청동기 시절을 즈음하여 그 이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이때 무슨 배가 있어 배를 타고 울릉도로 사람이 들어갔겠어 의문이 들지만 처음 울릉도는 한반도와 연결되어 있었다.
구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오면서 호모 사피엔스는 한반도 전역에 포진되어 있음은 현재 고인돌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발견되고 있음이 증명한다. 이 때 호모 사피엔스의 이동이 울릉도로 이어졌을것으로 보는게 타당할듯 하다.
그러면서 몇 번의 화산폭발이 반복되면서 소멸될 호모 사피엔스는 소멸되고 울릉도와 독도는 섬으로 변해버린것이다.
이제부터 설명의 편의성을 위해 울릉도를 우산국으로 통일하여 글을 적는다.
우산국이 문헌상에 등장하는 시기는 대략 3세기경이라고한다. 중국의 고전인 '삼국지위지동이전'에 따르면 3세기경 우산국에 사람이 살기시작했다고 기록되어있고 우리 고대국가인 삼국시대 이전에 울릉도와 독도는 '우산국'이라 불리는 작은 해상왕국이었다고 추정된다. 물론 독도가 '세라국'이라 불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 부분은 아직 자료를 정리하지 못해서 '세라국'에 대한 내용은 배제하고 글을 쓴다.
우리나라 문헌에는 고려시대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에 울릉도와 우산도(독도)라는 2개의 섬이 우산국이라는 하나의 독립국을 형성하고있다라고 되어있다.
이 때 당시 우산국은 내륙지방인 신라와 언어가 약간 달랐다고 한다. 어느 문헌에는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고 나와있기도하고, 또 어느 문헌에는 일본(여기서는 대마도를 의미할 것이다)과도 언어가 통하였다고도 한다.
하지만 지정학적 위치와(신라와 울릉도는 대략 90km, 울릉도와 대마도는 대략 190km정도) 신라인들을 비롯해 동예와 옥저 사람과 일부 예맥족들이 울릉도로 흘러들어간것을 감안하면 좀 심한 사투리정도로 이해해야하지 않을까.
여기서 예맥족은 고대 한반도와 중국의 동북부지역에 살던 사람들을 의미하고, 고구려 을지문덕이나 강감찬, 연개소문 관련 사료에 본인들을 예맥족이라 표현하는 일부 자료가 있는것을 감안하면 여기서는 고구려 사람이라 보는것이 적당한 추정일것으로 생각한다.
이 우산국은 신라 지증왕 13년인 512년 신라 장군 이사부에 의해 신라에 병합되고, 이때부터 울릉도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로 편입되게된다.
오늘 포스팅할 내용은 이러한 우산국의 신라 합병과정을 적어보려한다. 물론 인터넷을 좀 뒤적이면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지만 나름 흥미롭게 본 자료들이어서 포스팅으로 기록하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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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국에 대한 문헌상의 자료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한다.
유일하게 우산국에 대한 내용은 구전으로 내려오는 왕이 한 명 존재하는데, 이가 바로 '우해왕'이다.
우해왕은 우산국의 마지막 왕으로 알려져있으며, 우해왕 초기에는 섬나라인만큼 일본(여기서는 대마도를 의미한다) 및 신라와의 해상교역을 통해 나름 안정적으로 나라를 운영하였다.
이 때 당시 신라역시 지증왕시절로 신라도 서서히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가고 있던 시기였다.
신라입장에서는 우산국이 일본으로 향하는 경계선에 위치해있어 완전하게 신라로 병합하지 않은 상태에서 우산국이 점차 발전해간다면 신라는 대마도와 우산국 두 나라를 모두 상대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하게된다.
물론 우산국이 당시 신라에서도 일부 사람들이 건너가서 생활하긴하였지만 완전한 신라의 우군이라 할 수는 없었다.
우산국은 우해왕의 안정적인 나라운영으로 백성들은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였다.
이 때 대마도는 우산국 주변에서 해적질을 일삼으며 해안가를 어지럽히고 있었는데 우해왕은 이런 대마도 해적을 소탕하고 대마도를 정벌하려하였다. 대마도 왕은 이때 그들의 세력이 우해왕을 이길 수 없음을 알고 항목을 선언하고 풍미녀라는 여인을 우해왕에게 바치게된다.
하지만 모든 국가의 마지막이 그러하듯 우해왕 역시 말년에 들어 국가 재정은 파탄나고만다. 우해왕은 대마도에서 풍미녀라는 여인을 데리고와 왕후에 앉힌 이후 나랏일은 등한시하고 풍미녀와의 사랑(?)에만 집착하게된다.
이런 시점에서 신라의 지증왕은 호시탐탐 우산국을 정벌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신라는 내륙에서의 전쟁은 우산국보다 강할지언정 해상에서의 전력은 매번 우산국에게 패해 우산국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신라 장군 이사부는 매번 해상전에서 패배함에따라 전략을 수정하였다. 그것은 바로 나무로 우산국에서는 볼 수 없는 동물을 나무로 깎아 만들어 배에 싣고 우산국으로 향했다.
우산국 해안에 도착한 이사부 장군은 나무로 만든 대형 목각 동물을 배 전면에 세워놓고 우산국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우산국 병사들은 처음 보는 대형 동물(?)에 혼비백산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그들은 우산국내에서 그러한 동물을 본적이 평생에 한 번도 없기때문이다.
이에 feel받은 우리의 이사부 장군은 계속적으로 목각 동물로 위협을 가하였고, 우산국은 제대로된 대응조차해보지 못하고 신라에 항복하고 말았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트로이 목마는 아킬레우스와 헥토르의 10년전쟁을 종결시키는 역할을 하였지만 우리 이사부 장군의 목각 인형(^^)은 단 한방에 우산국을 정벌한 것이다..
이것이 구전과 약간의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고대 우산국의 자료이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도 얘기했듯이 우리의 고대사는 울릉도와 독도를 하나의 섬으로 통일하여 부르고있다.
일본은 야마토 정권이 처음으로 전국을 통일하는데 이 때 시기가 3세기 말이다.
그들의 문헌적 기록이나, 중국의 기록, 우리의 역사기록을 비교해보건대 독도가 일본땅일수는 없다는 것이 모든 문헌적 사료들이 증명해주고 있다.
예전 구글지도에서 독도를 검색하면 나오지 않던 시기가 있었다.(-_-) 이것을 어떤 대학생 한 명이 문제를 제기해 지금은 'dokdo'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렇듯 사소한것 하나에서부터 우리는 우리의 독도를 스스로 지키고,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야기가 이상한(?)곳으로 흐른건 나의 필력의 문제이지 독도가 우리땅이 아닌것은 아니다... ^^
아래는 '독도체험관' 포스팅이다. 다음번 서대문가면 이곳으로 ㄱㄱㄱ(혹시나 했는데...역시나 이분은 안가본곳이 없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