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2)종교의 본질은 믿음인가, 신념인가.. 화성 '남양성모성지' 출사(feat. 우리는 그들의 희생아래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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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편에 이어~~~~아무거나 주절거림)

 

이처럼 천주교는 조선의 성리학적 풍습에 완전히 위배되었기에 양반중심의 사회에선 전파가 이루어질 수 없었다. 대부분 중앙권력에서 밀려난 양반들과 중인들 사이를 중심으로 알음알음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천주교 박해 당시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남인들이 많았던 이유는 당시 그들이 정조 사후 안동 김씨인 김조순 일파의 세도정치가 시작되면서 권력에서 밀려났기 때문이다. 중인들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그들은 상업을 중심으로 부를 안게 되었지만 그들의 출신성분으로 인해 중앙권력으로 진출하지 못하였다. 그러한 그들의 태생적 문제로 인해 자연스레 천주교에 빠져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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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성모성지 - 성체조배실1
성체조배실1

 

 

남양성모성지 - 성체조배실2
성체조배실2

 

 

정조 사후 천주교는 신해박해, 신유박해등을 거치며 조선에서 모진 핍박을 받게 된다. 조선인 최초로 영세를 받은 이승훈은 최초의 순교자이기도 하다. 그는 그라몽 신부에게 베드로라는 한국 교회 최초의 세례를 받은 천주교인으로 이름을 남겼다. 그 역시 정약용 집안과 관계있는 인물로 정약용과 처남매부 사이이다. 그의 어머니는 이가환이라는 자의 누이인데 이가환은 당시 천재로 알려진 정약용이 '내가 이사람보다 나은 것이 없다'고 할 정도의 당시 조선 최고의 천재였다. 이승훈은 순조가 즉위한 1801년 신유박해때 이가환, 정약종, 홍낙만 등과 함께 서대문 형장밖에서 참수되었다. 이승훈의 가문은 그의 순교 이후 그의 후손들 모두 순교하였는데, 1868년 고종 5년에 그의 아들인 이신규와 그의 손자 이재의가 순교하였고 1871년에 그의 증손인 이연구, 이균구가 모두 제물포에서 순교하였다.

 

 

남양성모성지 - 성체조배실3
성체조배실3

 

 

이들이 이토록 자신의 목숨을 받쳐가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무엇일까... 자유? 평등?........은 아닐것이다. 지금이야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한것은 없다라고 하지만 당시 시대적 배경은 사람의 목숨보다 더 가치있는것이 있었던것일까....이들은 종교의 힘을 빌려 중앙권력으로 진출하고 싶었던걸까??? 결과적으로 그러한 사례가 없기에 만약에 그런 가정이 있다고 한들 실패라고 할 것이다. 당시 천주교의 중심이 되는 세력은 남인을 비롯한 중앙권력에 밀려난 양반세력들과 양반이 될 수 없는 태생적 한계가 있던 중인들, 그리고 조선시대에서 사람 대접(?)을 받지 못했던 아녀자들이다. 그들이 바라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이었길래 자신의 목숨을 받쳐가며 종교(천주교)에 집착했을까...

나는 현재 종교활동이 자유로운(?) 대한민국에 살고 있어서 그들의 처절한 울부짖음?? 이런건 잘 모른다. 물론.. 당시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종교의 활동이 자유롭다는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약수물이다

 

 

당시 이들에게 있어 종교는.. 천주교는... 자신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매개체가 아닌 자신들의 후손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명분이 되었을 것이다. 보통 부모님들이 그렇지 않은가.. 나는 못배우고 못살아도 내 자식만큼은 열심히 공부시켜 남부럽지 않게 살아야한다... 당시 이들도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들 스스로도 당시 그들이 믿는 종교로 인해 자신들 죽음으로 내몰릴 그런 상황을 몰랐을리 없다. 다만.. 그들 한사람 한사람의 희생이 더해져 자신의 후손들은 그나마 평등한 세상에 살게 하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두서없는 결말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종교의 힘은 평등이다. 조선시대를 비롯한 중사회는 계급이 정해져있는 사회이다. 왕이 통치하는 왕정시대는 모두가 그러하다. 물론 서양의 종교전쟁은 이러한 나의 생각을 비웃듯 본인이 마음대로 이혼하고 재혼하려고 교황청을 뛰처나오기도 했지만...ㅋㅋㅋ 예수가 그렇듯.. 마리아가 그렇듯.. 싯다르타 고타마가 그렇듯... 종교는 모든 인간은 평등한 존재이며 그 평등한 관계속에 서로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는게 아닐까.. 물론~~~~ 지금의 일부(?) 혹은 다수의 종교인들이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며 정치질을 하고, 외제차를 끌고 다니며 도박을 하기도 하고...뭐... 그냥 일부라고 위안을 삼자....

 

 

먹을수 있겠지 ㅡㅡ;;

 

 

 

 

병인박해는 조선 흥선대원군이 집권했던 시절인 1866년인 고종3년에 일어난 대규모의 천주교 탄압사건을 말한다. 1872년까지 약 6년여에 걸처 일어났으며, 8천명이상의 천주교 신자들와 프랑스 선교사 등이 처형당했다. 흥선 대원군은 초기 천주교에 대해서 큰 반감이 없었다. 그는 오히려 프랑스 선교사 등을 통해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으려하였다. 하지만 당시 시대상황으로 인해 본인의 정치적인 입지가 흔들리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천주교 박해를 실시하였다. 당시에는 제너럴 셔먼호 사건, 병인양요등이 차례로 발생하며 흥선 대원군의 쇄국정책도 강화되었다.

 

 

남양성모성지 - 병인박해
병인박해

 

 

앞서도 말했듯이 난 종교를 믿지 않는다. 종교적 신념? 믿음??? 난 이런것이 없다. 내가 생각하는 종교는 그냥 현대 사회에서 하나의 단체일뿐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자신들의 영역(?)을 넓히려하는... 딱.. 그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종교가 민심을 통일시키고 국론을 하나로 모으는 좋은 도구였을지 모르지만 지금의 종교는 그냥 하나의 이익단체에 불과하다. 그 어떤 종교에서도 자신들의 잘못은 말하지 않는다. 설사 있어도 그냥 개인의 일로 치부해버린다. 그러다가 자신들의 이익에 불합리한 결정이나 상황이 오면 벌떼처럼 달려들면서 이것은 종교탄압이라고 외친다. 이건 단순히 어떤 한 종교를 특정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개xx)가 그러하고 불교가 그러하다. 난 우리나라 정치에 전광x이라는 목사의 이름이 함께 거론되는것과 어느 스x이 외제차를 몰고 도박을 하다 결렸다는 뉴스를 보면 역겨워진다. 그러면서 그들은 크리스마, 석가탄신일이 되면 온갖 휘항찬란한 문구를 써가며 자신들의 종교가 아닌, 자신들의 욕망을 불태운다.

 

 

팩트만 체크하자

 


하긴 지금의 시대는... 예전처럼 종교의 힘으로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그런 시대는 아니다. 그럼 거기에 맞춰 종교의 역할도 변해야할텐데 그 변함의 끝이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는 이익단체로의 변함이니 그것이 문제인것이다. 인간은 욕망의 덩어리이니 그것을 탓할까만은 종교가 그런 욕망의 배설구가 되지는 않길 바라지만.. 글쎄.. 잘 모르겠다....

 

 

대성당 가는길

 

 

길을 산책하다 보니 어느덧 대성당앞까지 와버렸다.. -_-;; 근데.. 문이 잠겨있다.. ㅠㅠ(하..나...정말..>.<) 참고로 난 교회나 성당 내부를 들어가본일이 한 번도 없다..ㅎㅎㅎ 그나마 사찰은 구경하면 대웅전에 들려 절도 하고 한것 같은데 이상하게 교회의 십자가는 좀.. 부담스럽다..(이건 오롯이 개인적인 성향이다.. ^^)

 

 

남양성모성지 - 대성당
대성당

 

 

무슨 글을 쓰려다 여기까지 온 걸까.. ㅠㅠ 종교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 글도 두서없이 내가 쓰고 싶은글 마음대로 쓰다보니 한 편에 모자라 두 편으로 나뉘어 포스팅하고 있네.. ㅎㅎㅎ

 

 

뜬금없지만.. 모두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

 

 

남양성모성지 - 대성당에서 바라본 남양
대성당에서 바라본 남양

 

 

푸르름을 안고있는 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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