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레코드와 비틀즈, 너바나의 추억 그리고 (서)피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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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레코드와 비틀즈, 너바나

 

아무런 목적 없이 골목길이나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의외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곤 한다.

이날(5월 13일)도 광화문에 들러서 여기저기 구경을 하고,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을 방문한 후 그냥 하염없이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오랜만에 보는 세운상가와, 종로 먹거리 골목, 피맛길(골), 서울레코드에서 비틀즈와 너바나를 포스팅한다.

 

 

종로3가역을 중심으로 아직 탑골공원과 종묘는 가보지 못했다. 블로그 포스팅을 위해 가보진 못했다는 것이다.ㅎㅎㅎ

 

종로 먹거리골목

 

1호선 종로3가역에는 세운상가와 종묘, 골목 좁은 사이로 '종로 먹거리골목'이 있다.

 

 

종로 먹거리골목으로 오세요

 

 

이 골목은 잘못 들어서면 위 사진처럼 먹거리 골목이 아닌 세운상가의 전자부품 골목으로 들어선다. 세운상가는 구로유통상가, 안양유통상가와 더불어 수도권에서 가장 큰 전자, 통신부품 전문 상가이다. 오늘은 토요일이어서 거의 다 문을 닫은 건가. 난 여기 골목을 주말에 와본 적이 없다. 여기는 평일에 회사에서 합법적으로 부품을 찾으러 올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여긴 평일에만 방문하였다. 예전에는(20년 전???ㅋㅋㅋ) 여기에서 구매한 부품으로 로봇도 만들 수 있다고 할 정도로 꽤나 혈기왕성한(?) 골목이었지만 지금은 많이 저물어가는 골목일 것 같다. 

 

 

종로 먹거리골목

 

여기가 종로 먹거리골목이다.

 

계림 닭도리탕

여긴 계림 닭도리탕.. 상당히 유명한(?) 곳이다. 수도권에 몇 군데 체인점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가 원조 계림 닭도리탕이다. 새빨간 닭도리탕의 표준 격이 되는 곳으로 비주얼은 엄청 빨갛고 매워 죽을 것 같은데, 실제로 먹으면 그냥 칼칼한 정도? 20대에 종종 가던 술집이다..ㅋㅋㅋ

 

즉석에서 섞어섞어

이게.. 위생적으로 청결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저렇게 골목에서 배추를 소금에 절여 김치 아닌 김치 같은 겉절이를 버무리신다..

 

대원집 양푼이 김치찌개와 최가네 황소곱창

여기 대원집과 최가네 황소곱창도 종종 방문했던 식당. 난 김치찌개는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여기 김치찌개는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다. 곱창이야 뭐.. 그것도 한우 곱창인데...ㅋㅋㅋ

 

세운상가 끝에 위치한 종로 음악사

 

지금은 이제 유물이 되어가고 있는 옛날 LP를 구경할 수 있다.

 

서울 레코드

 

서울 레코드다.. -_-;;  iso 설정의 잘못이다... 따흑...ㅠㅠ

 

서울 레코드

 

오래된 전축으로 듣는 오래된 노래도 추억이다.

 

서울 레코드
로타리 티비

 

아홉 살 때까지 우리 시골집에서는 이런 흑백 로터리 티비가 있었다..ㅋㅋㅋ 여긴 심지어 동작도 한다.

 

서울 레코드
빌 에반스

 

재즈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 여성 록커이자 재즈 보컬리스트인 제니스 조플린과 함께 한 때 날 재즈의 세계로 인도하신 피아니스트다.. 그냥.. 인도만 하셨다...ㅋㅋㅋ

 

서울 레코드

 

오랜만에 보는 옛 음반들이다. 

서울 레코드
커트 코베인

 

Smells Like Teen Spirit 아시는 분? ㅋㅋㅋㅋ 그러시면 그대는 커트 코베인과 Nirvana의 숭배자일 것이다..ㅋㅋㅋ

 

Nirvana(너바나) tmi....

커트 코베인은 미국의 alternative rock 그룹 Nirvana의 리더 겸 보컬, 기타리스트다.

alternative라는 뜻 자체가 '대안적인'이라는 뜻이 있기에 미국에서 1970년대 heavey metal과 1980년대 LA rock을 거치면서 서서히 그 인기가 마이클 잭슨을 비롯한 댄스와 흑인음악으로 인해 사그라져갈 때 탄생한 rock의 부류다.

Niverana라는 그룹이 유명한 이유는 앞서 말한 이들의 1집 앨범인 'Never mind'에 수록된 Smells Like Teen Spirit이 워낙에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쳤고, Nirvana의 모든 정규앨범이 모두 음악적으로 걸작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또한 이 그룹으로 인해 alternative rock은 세계음악의 주류가 되었고, 그러면서 cold play, oasis, radio head, blur 등 alternative rock과 브리티시 락에 대중화되는데 엄청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위 밴드들이 Nirnana로 인해 생겨난 밴드들은 아니지만 그들의 음악으로 인해 함께 알려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Nirvanva의 등장으로 heavy metal은 완전히 퇴조해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밴드의 리더인 커트 코베인은 밴드 모든 노래의 작곡과, 보컬, 기타 연주를 담당하며  Nirvana를 세계적인 그룹으로 키우지만 스물일곱 살에 자살로 생을 극적으로 마감하게 된다. 그리고.... Nirvana와 커트 코베인은 전설이 된다.

이후 Nirvana의 멤버인 드러머 데이브 그롤이 Foo Fighters라는 그룹을 만들게 되고 이 그룹 역시 세계적인 그룹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커트 코베인 이후 더 이상 rock은 발전하지 못하고, 커트 코베인 이상 가는 뮤지션이 나오지 않으면서 alternative rock은 90년대 초반에 등장에 2000년 초반까지 10년간의 정점을 이루고, 향후 미국 주류 음악에서 rock 음악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의 음악 청취는 2000년대 초반에 절음(!!!!)하게 된다.!!!! -_-;;

 

서울 레코드

 

저래 보여도 apple이구나.. -_-;;

 

서울 레코드

 

 

서울 레코드
서울 레코드

 

내가 본격적으로 CD를 듣기 시작한 건 고3 이후인 것 같다. 그전까지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자주 가던 레코드점에서 카세트테이프를 하나씩 구매해서 모았다. 하지만 CD가 유행하던 시점에서 난 음악 청취를 끊었기에 CD는 그렇게 많이 모으지 못했다. 오히려 LP와 카세트테이프를 추억으로 수집하곤 하였다.

 

서울 레코드
Abbey Road

 

비틀즈의 거의 마지막 앨범이라 할 수 있는 Abbey Road의 앨범재킷이다. Abbey Road에는 cometogehter, something, Here comes the sun 같은 명곡들이 수두룩하다. 왜 거의 마지막 앨범일까. 이때 당시 비틀즈는 폴 메카트니와 존 레논의 불화로 인해 팀으로서의 기능은 거의 상실되어 있었다. 당시 멤버들은 본인들이 마지막으로 합심해서 만든 앨범으로 그런 화제성과 앨범 자체도 엄청난 높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Abbey Road 앨범이 1969년에 발매되었고, let it be는 실질적으로 비틀즈가 공식 해체를 선언하고 난 이후 발표되었다. 이 당시에는 비틀즈라는 팀으로서의 앨범이라기보다는 계약상의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발매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래서 이 앨범은 평론가들로부터 상당히 비판적인 평가를 받게 된다. 하지만 이건 평론가들이 앨범 제작과정에서의 배경들을 point로 엮어서 비판한 것이지, 앨범자체는 영국차트, 미국차트 모두 1위를 기록한다!!!! 보통 비틀즈의 노래하면 떠오르는 곡이 let it be와 yesterday일정도로 곡 자체로는 최고의 명곡이라고 할 수 있다. yesterday는 비틀즈의 5집인 'Help' album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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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레코드
let it be

 

재밌는 비틀즈 tmi....

비틀즈는 존 레논이 만든 그룹이다. 고등학생 때 만든 그룹이 비틀즈의 모태가 되었고, 이후 몇번의 멤버가 교체되면서 최종적으로 폴 메카트니와 그의 친구인 조지 해리슨이 영입되고 마지막으로 링고스타가 영입되면서 비틀즈가 완성된다.

비틀즈의 정체성은 존 레논일까, 폴 메카트니일까?

yesterday의 경우,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의 공동 작곡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폴 메카트니가 작곡, 기타, 노래모두를 혼자서 북 치고 장구치고 한 곡이다.  그들의 마지막 빌보드 차트 1위 곡인 let it be 역시 둘이서 공동 작곡한 곡이다.

폴 메카트니의 대표적인 곡은 yesterday와 hey jude이다.. hey jude는 폴 메카트니가 존 레논의 어린 아들인 줄리안을 위해 만든 곡으로 비틀즈의 노래 중 가장 오랫동안 사랑받은 노래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의 관계는 좋았던것으로 보인다. 존 레논 최고의 곡은 누가 뭐라 해도 imagine이다. 이 노래는 비틀즈 당시의 곡은 아니고 비틀즈 해체 후 존 레넌이 솔로로 발표한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폴 메카트니가 매우 대중적인(?) 천재라면, 존 레논은 매우 유니크한(?) 천재라고 스스로 평가한다.ㅋㅋ

imagine이 폴 메카트니를 비웃는 내용을 담았다고 평가하는 평론가도 많은데, 개인적으로 이 노래는 그렇게 평가절하되기에는 너무나도 뛰어난 곡이다. imagine는 존 레논의 이상향을 담은 노래라는 평에 한 표를 던지고 싶다.

 

천국이 없다고 상상해 봐요.
당신이 노력하면 어렵지 않아요.
지하에 지옥은 없어요.
머리 위에 오직 하늘이 있을 뿐.
모든 인간이 오늘을 위해 산다고 상상해 보세요.
국가가 없다고 상상해 봐요.
그건 어렵지 않아요.
죽이는 것도 없어요.
역시 신앙도 없어요.
모든 인간이 평화롭게 산다고 상상해 보세요.
내가 몽상가라고 당신은 생각할지 몰라요.
그러나 난 몽상가가 아닙니다.
언젠가 그날이 올 겁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가담하게 되고 세계는 하나가 될 겁니다.
소유물이 없다고 상상해 보세요.
당신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욕심도 없고 굶주림도 없고 형제애와 인간애가 있을 뿐입니다.
모든 인간이 서로 도우며 산다고 상상해 보세요.

[imagine 가사 번역]

 

아마도 존 레논과 폴 메카트니의 사이가 멀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을 꼽자면 폴 메카트니의 아버지와 존 레논의 아내 오노 요코일것이다. 폴 메카트니의 아버지는 비틀즈가 존 레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매우 많았다. 그래서 폴 메카트니를 꼬드겨(?)  존 레논을 비틀즈에서 몰아낼 구상만 하였다. 존 레논은 오노 요코와 결혼하기 전 신시아라는 첫 번째 아내가 있었고 그 사이에 줄리안이라는 자식도 있었다. hey jude의 주인공이 바로 줄리안이다.

폴 메카트니는 존 레논이 신시아와 이혼하는것을 극구 반대하였는데(남의 가정사에 왜.. ㅠㅠ) 결국 존 레논은 신시아와 이혼하고 후에 오노 요코와 재혼하게 된다. 이후 존 레논은 비틀즈의 활동은 등한시하고 오노 요코와 plastic ono라는 밴드를 만들어 비틀즈가 해체하고 1970년 john lenon / plastic ono band라는 앨범을 발매하게 되는데 이 앨범이 존 레논 최고의 명반으로 평가받는다. 오노 요코는 일본인으로 단순히 존 레논의 아내로만 평가절하되기에는 좀 아까운 인물인듯 하다. 물론 일본인이라는 느낌적 거부감이 들긴하지만 오노 요코는 존 레논의 아내 이전에 전위 예술가이자 음악가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존 레논이 사망한 후에도 조형 예술가이자 팝가수, 반전운동가, 페미니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하였고 일본 미술계뿐만 아니 행위예술가로서는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지식백과가 친절히 설명하고 있다. ^^

 

서울 레코드

 

추억을 곱씹으며 좋아하는 옛날 곡 하나를 듣기에 참 좋은 곳이다.

 

세운상가

 

하... 세운상가 로봇을 찍으려고 했으나 난 이때까지도 iso가 1600으로 설정되어 있는지 인지하지 못했다.ㅠㅠ

 

서피맛골

 

여기는 서피맛길로 들어가는 초입정도된다.

보통 피맛골은 종로 1가의 교보문고에서 종로 6가까지의 길을 피맛골이라고 한다. 피맛골은 조선시대 평민들이 양반들이 말을 피한다는 '피마'라는 말에서 유래하였다. 평민들이 말을 타고 다니던 고관대작들이 꼴 보기(?) 싫어서 인사하지 않고 피해서 다닌 길인데, 그래서 지금도 이 피맛골은 서민들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종로 육조거리를 제외하면 모두 피맛길(골)이지 않았을까라는 합리적 추측을 해본다.ㅋㅋㅋㅋ

 

 

서피맛골
영춘옥

 

81년 전통이라는 영춘옥.. 여기 곰탕이 그렇게 맛있다는데.. 평소 곰탕을 즐기지 않아서 그냥 keep만 해둔 식당이다..ㅋㅋ

 

서피맛골
광주집

 

여기 광주집의 갈매기살도 겁~~~~ 나 맛있는데.. ㅠㅠ

 

서피맛골

 

골목 곳곳에 고깃집과 술집, 식당들이 즐비하다. 여기가 바로 피맛길(골)인데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서피맛길이다. 

서피맛골
서피맛길

탑골공원 부근이 그냥 피맛길이라고 하면 여긴 서피맛길이다.

 

 

서피맛골

 

 

서피맛골
피맛골의 유래

 

서피맛골

 

지금도 그렇겠지만 내 젊은 시절에도 피맛길은 적은 돈으로 안주삼아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었다. 지금도 적은 돈으로 안주와 술을 마실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금주를 선언한 지 10년이 넘었기에..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니 안주값이 예전 그대로 일리 없을 것이다..-_- 특히나 내가 피맛길을 애용하던 시절은 20년 전이다..-_-(내 세월을 돌려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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