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역사여행 [경복궁] 삼봉 정도전이 꿈꾸었던 조선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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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역사여행 [경복궁]

 

3월 25일 네 번째 홀로 여행... 경복궁으로 떠나는 지하철 여행 ㄱ ㄱ ㄱ

약간 쌀쌀한 기운이 있지만 나들이하기 참 좋은 날씨고, 장소다.

 

경복궁 포스팅은 나중에 창덕궁을 관람하고 두 곳을 비교하며 포스팅하고 싶었다.

음.. 이유라고하면... 경복궁은 삼봉 정도전에 의해 지어진 곳이고, 창덕궁은 태종 이방원에 의해 지어진 곳이다.

조선史 내내 궁금했던 부분이다.

조선은 삼봉 정도전과 흔히 얘기하는 성리학을 중심으로 한 신흥사대부들이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여 세운 나라이다.

무슨 개xx인가 하겠지만 개인적 사견으론 당연한 얘기다. 국가가 멸망하고 다시 새로운 국가가 만들어질 때 그 국가는 필히 1+1 패키지로 국가가 형성된다. 고려가 건국되던 통일신라 말기, 왕 건에겐 최 응과 유금필이란 최고의 문관과 무관이 있었기에 고려를 건국할 수 있었다. 고려는 호족의 나라라고 할 만큼 왕 건 자체의 세력은 그렇게 강력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왕 건은 수많은 호적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한 강력한 호족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최 응의 정책적 판단과 강력한 군권을 가진 유금필이 있었기에 고려가 탄생할 수 있었다.

하물며 대한민국 정부도 1+1 패키지는 아니더라도 김 구 선생의 반대적 찬성과 김규식, 이시영 등이 본인들이 아닌 이승만을 전면에 등장시켰기에 미국의 일정 부분 묵인하에 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이다..

비굴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조선 역시 마찬가지다. 이성계는 함경도 출신으로 강력한 사병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본인을 받쳐줄 수 있는 정치적 세력은 전무한 상태였다. 정도전은 고려 말기 신흥세력의 좌장 격인 목은 이색의 제자로 고려의 마지막 충신이라는 포은 정몽주와 함께 신흥사대부세력을 양분하고 있는 자였다. 정몽주는 고려의 끝을 붙잡고 싶어 했고, 정도전은 고려를 뿌리치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 싶었다. 이러한 정도전의 야심과 이성계의 세력이 합해져서 조선이 건국된 것이다.

정도전은 조선의 모든 것을 만들었다. 토지개혁을 주장하며 고려 후기 권문세력과 결별하고 신흥사대부를 이성계에게 결집하게 만들었고, 조선 건국 후 이성계와 함께 경복궁을 창건하였다.

경복궁은 그렇게 정도전의 꿈을 실현시킬 장소였다. 정도전은 성리학을 바탕으로 백성이 중심 되는 '민본주의'를 주장했다. 

이성계가 정도전의 모든 가치관을 다 동의했다고 볼 순 없으나, 자신과 조선 건국의 양대 축인 정도전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고 또한 고려말기 부패한 권문세족으로 고려가 어떻게 멸망하였는지 분명히 보았기에 반대할 명분도 없었을 것이다.

서론이 길어졌다....-_-;;

경복궁은 조선왕조 최초의 궁궐이기도 하고, 정도전이 자신의 성리학 사상을 실현시킬 '민본(民本)의 장소이기도 하다.

물론 경복궁이 흥선대원군에 의해 재건되면서 이러한 정도전의 꿈이 일정 부분 퇘색되기도 했지만, 꼭 한번 정도전이 꿈꾸는 백성이 중심 되는 나라의 정점... 경복궁을 찬찬히 둘러보고 싶었다. 그의 생각을 조금이라도 담을 수 있으려나... 불가능하다고 본다..ㅠㅠ

 

고궁국립박물관에서 바라보며

 

광화문

광화문은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문이다. 원래는 남문이라 부르던 것을 세종이 집현적 학자들과 함께 '광화문'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하.. 사람들 보소.. -_-;;

 

 

저 뒤로 보이는 게 인왕산이 맞나.. ㅎㅎㅎ

 

 

 

잊지 말자.. 화요일이 쉬는 날이다!!!!

 

 

이 정도의 관람료.. 딱 적당하다.

 

흥례문

 

광화문과 근정문 사이에 있는 중문이다.

 

근정문

 

경복궁은 태조 4년에 지어진 궁궐이다. '하늘이 내린 큰 복'이라는 뜻으로 경복궁이라 이름 지었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목멱산(남산)을 안산으로 삼아 풍수지리적인 터 잡기에서도 한양의 중심을 차지했다. 광화문 남쪽으로 육조거리(지금의 세종로)를 조성하고, 그 연장선 위에 근정전, 사정전, 강녕전 등 주요한 궁궐건물들을 일렬로 놓아, 왕조국가인 조선의 상징 축으로 삼았다.

임진왜란당시 완전히 불에 타 소실되었고(이런 썩을 왜xx) 270년간 폐허로 남은걸 흥선대원군이 다시 중건하였다.

다시 중건하여 왕권을 강화시킨 건 잘했다고 봐야 하나.. 어쨌든 하지만 그로 인해 국가의 사정은 바닥나고 민심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물론 국가재정의 파탄은 민비가 주범이다)

 

 

 

근정전

 

근정전은 정전이자 법전이다. 국가의식을 거행하고 외국사신을 접대하던 장소로 사용하였다.

 

 

관람객 정말... 대박이다...

 

 

어디선가 본 듯한 사진이지 않나.. ㅎㅎㅎ

앞서도 말했지만 우리의 임금님은 저런 곳에 앉아서 정무를 주관하시면 꼬리뼈가 아프지 않았을까.. ㅠㅠ

 

 

난 왜자꾸만.. 처마 끝에 집중할까.. -_-;; 아름답다...

 

사정문

 

 

사정전1

 

사정전2

 

사정전은 경복궁의 편전이며 임금이 평상시에 정사를 돌보던 것으로 '선정을 생각하다'라는 뜻으로 정도전이 작명하였다.

천하의 이치는 생각하면 이를 얻을 수 있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를 잃게 되는 것이므로 왕으로 하여금 깊이 생각하여 정치할 것을 바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만춘전

 

만춘전은 사정전의 부속건물로 임금과 신하들이 나랏일을 의논하거나 연회를 베풀던 편전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한자의 문화권에 살고 있다..(젠장..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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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기분 좋은 그림이다....

 

자선당

 

자선당은 왕세자와 세자빈의 거처를 말한다. 자선은 '어진 성품을 기른다'는 뜻으로 고종 25년인 1888년 중건되었고 1914년 일본인에 의해서 동경으로 옮겨져서 사설미술관으로 사용되다가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건물이 소실되어 기단과 주춧돌만 남게 되었다.

이것을 1993년 김정동 교수가 발견하여 1995년 경복궁으로 다시 옮겨왔다. 그러나 자선당을 복원할 때 구조안전상의 문제로 기단과 주춧돌로 재활용하지 못하고 지금은 건청궁 동쪽에 전시하고 있다.

 

 

한복이 일상복이어도 참 예쁠 것 같다.. 개량한복도 물론 좋지만 조금은 더 전통적인 한복도 좋다.

 

 

정말 3,000원으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 중 하나이다..

 

 

3월 말... 벚꽃이 만개하지 않았다..

여기서 T.M.I... 벚꽃은 일본의 국화가 아니라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

일본은 공식적으로 국화가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벚꽃이라 부르는 사쿠라는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일 뿐입니다.

다만, 일본 왕실을 상징하는 꽃은 국화라고 합니다!!!!

 

향원정과 취향교

 

취향교는 건청궁 영역과 연못 안에 있는 향원정을 연결하기 위한 둥근 나무다리다. 원래 향원정 북쪽에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자 1953년 향원정 남쪽으로 옮겨 세웠다. 2017년 발굴조사를 거쳐 취향교 원래의 위치를 확인한 후 남쪽 다리는 철거하고 2019년 복원하였다.

 

취향교

 

건청궁

 

경복궁 중건사업이 끝난 후 1873년, 고종은 경복궁 북쪽 동산정원인 녹산과 향원사이에 건청궁을 건립하여 민비와 거주하였다. 건청궁은 1887년 미국의 에디슨 전기회사에서 발전기를 설치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전등이 가설된 곳이라고 한다.

 

여기서도 T.M.I.. 혹시 눈치채셨는지 모르지만 난 계속 명성황후를 민비라고 칭하고 있음을 느끼셨나요?

고종은 조선의 마지막 임금이자 대한제국의 초대황제입니다. 고종은 조선의 마지막 임금으로 불리는 이름이고 대한제국의 초대황제로서는 광무황제, 혹은 광무제라고 칭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여흥 민 씨 민자영은 고종의 왕비일 때는 민비로 불리는 게 맞고, 광무황제의 황후일 때 명성황후가 맞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혹여나 민비라고 부르는 게 명성황후를 비하하거나 낮게 부르는 말이 아님을 명시합니다. 민비는 민 씨인 왕비를 뜻합니다.

그리고 민비의 본명인 민자영은 소설에서 나온 이름이라는 설도 있어서 정확한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잠시 툇마루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이런 자물쇠.. 사용해 보셨을까요? ㅎㅎㅎㅎ 난 왜 사용해 봤을까.. 도대체 나.. 몇 살이니.. ㅠㅠ

 

곤녕합

 

곤녕합은 민비가 생활공간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1895년 10월 8일 일본인 자객에 의해 시해된 을미사변이 일어난 곳이다.

일본은 조선 왕실이 러시아와 손을 잡고 일본을 국내에서 철수시키려 하자, 10월 8일 새벽에 민간인 복장을 한 일본 장교들이 건달들을 이끌고 건청궁에 난입하여 민비를 시해하였다. 이 개xx들은 민비의 시신을 건청궁 동쪽 언덕 녹산 자락에서 태우고 남은 뼈를 그 자리에 묻었다고 한다. 이후 왕실에서 이를 거두어 경운공(현 덕수궁)에 시신을 안치하고 국장을 지냈다.

 

T.M.I....

민비에 대한 역사적인 평가는 대한민국 국민인 우리가 할 것이고, 한 나라의 왕비가 시해된 사건인 을미사변...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개xx들의 작전명... '여우사냥'인 것이다.. 개 썪을xkfal;ekfnkdna;vnd....

흔히 우리는 건달들이라고 알고 있지만, 실상 이들은 일본의 유력한 사무라이 집안의 자제들로 이루어진 아주 정교하게 계획된 시해사건이다. 이 유력한 사무라이 집안의 한 곳이 바로 아베 신조의 고조부 오오시마 요시마사라는 작자로 이xx는  1894년 7월 8,000명의 군대를 지휘하여 조선에 침입해 경복궁을 점령 후 조선정부 내각을 강제로 친일내각으로 바꾸었다.

아베 신조가 왜 그렇게 자위대를 군대로 바꾸려고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개zkndfenvnka;kem.... >.<

참..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포츠담 선언으로 공식적인 군대를 가질 수 없다. 자위대는 일본의 국가 방위를 책임지는 단체이다.

 

 

 

 

 

관문각지

 

고종 10년인 1873년에 건립되었던 관문각이란 곳이다. 이게 서양식 건물로 개축(?)되었고 최초의 양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한다. 오해하지 말자.. 관문각지.. 굳이 한자로 표현하면 관문각 地(땅 지)이다.. 관문각 땅... 아.. 힘들다.. ㅠㅠ

 

 

 

장안당

 

고종의 침전 '장안당'이다. 사랑채 개념으로 오랫동안 평안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을미사변 당시 고종은 여기에 감금되었다고 한다.

 

집옥재

 

집옥재는 1876년 경복궁에 큰 화재가 발생하자 고종은 창덕궁으로 옮겼다가 1888년에 다시 경복궁으로 돌아와 주로 건청궁에 기거하였다. 이미 창덕궁에 지어졌던 집옥재, 협길당 등을 1891년에 건천궁 서편으로 옮겨 와 자신의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하였다. 

 

경회루

 

연회장소인 경회루다. 1867년에 재건되었고 서쪽으로 인왕산, 동쪽으로 궁궐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연못에서는 뱃놀이를 했다고 하는데, 나라가 망해가는데.... >. <

경회루는 현존 목조 건물 가운데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고궁 국립 박물관에서 보았던 청동용이 여기에서 발견된 것이다.

 

수정전

세종 때 한글 창제의 무대가 된 집현전이 지금의 수정전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수정전은 일상 집무공간으로 사용하다가 1894년 갑오개혁 때 내각 본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다시 나오는 길.... 어찌 처음보다 관광객이 더 많아진듯하다.. -_-;;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 40%는 외국인인 것 같고, 한복 입은 여인의 70%도 외국인이다.. 

 

 

참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인데....

이놈의 일본 것들은 기껏 부산에서 교역하게 해 줬더니 왜관설치해서 임진왜란 일으키지 않나....

거기서 일하던 길잡이 시켜 한양으로 20여 일 만에 침략한 것도 모자라 궁궐 불태워버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0년이나 빌고 빌어 다시 교역하자고 해서 부산에서 다시 교역하게 해 줬더니 나중에 또 거기 왜관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군대를 일방적으로 주둔시켜...

부산 앞바다에 배 띄워서 지x하니 배 꺼지라고 하니까 그 배 강화도로 진격시켜 운요호 사건 일으켜...

남의 나라 왕비를 시해해...

 

이동욱은 이런 놈들이나 잡아가지 왜 김고은만 괴롭히냐고.. >.< (요건 센스로 알아들으시는 걸로....ㅋㅋㅋ)

 

드디어 경복궁 포스팅이 끝났다.....(나 자신을 칭찬한다...^^)

 

혹시나 포스팅을 보면서 사진과 설명이 잘못되었다면 댓글로 지적해 주시길... 나름 정리하면서 쓰긴 했는데 지금 내 모니터 우측 상단엔 넷플릭스로 슬.기.생을 보고 있고, 핸드폰으로는 요즘 냥이들에 빠져서 귀여운 냥이들이 꼬물거리고 있으며 tv화면에는 나의 최강 한화 이글스가 SSG 랜더스에게 거의 이길 수 있었는데 9회 난타당해 심히 기분이 언짢은 상태이니..

 

 

아 참.. 아래는 경복궁 구경에 참고가 될만한 포스팅을 소개합니다 ^^(까먹음.. ㅠㅠ)

 

어서와~ 고요한 경복궁은 처음이지? 향원정부터 동궁까지

경복궁 향원정부터 동궁까지 우측부 창덕궁에 이어 경복궁까지 사람없는 궁궐 탐방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갈때마다 관람객이 많아서 투덜투덜댔지만, 막상 없으니 너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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