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다문화가정(?) 성공신화 온달, 장영실..그리고 쓸데없는 끄적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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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쓸데없는 History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자신의 국가 보물 1호(?)인 자명고를 찢은 자명공주와 대무신왕의 슬픈 사랑과 더불어 고구려 2대 전설 전해지는 '바보 온 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다.

자명공주와 대무신왕의 이야기는 다음에 할 것 같고....ㅋㅋㅋㅋ 근데.. 웬 갑자기 다문화가정 성공신화????

이는 온 달의 출생 연도가 정확하지 않은데에서 기인한다. 온 달이 사망한 시기는 신라와의 아단성 전투에서 사망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때가 590년이다. 

아직까지 학계에서도 온 달이 진짜 토종(?) 고구려 사람이었는지, 외국인이었는지 섣불리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

당시 정황상 외국계열의 사람인 것이 좀 더 설득력 있긴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오늘은 이런 알쏭달쏭 바보(?)온 달에 대한 History와 쓸데없이 다른 주제로 빠져버린 끄적임을 함께한다.

 

 

(온 달과 평강공주)  사진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평강 공주는 고구려 평원왕의 딸이다.

공주는 어린 시절 자주 울곤 하였는데 평원왕은 그렇게 자주 울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 버린다고 협박(?)하였다.

이런 온달은 언제 출생하였는지는 문선상 알려진 바가 없다.

'삼국사기' 온달 열전에 의하면 온달은 고구려 평원왕 때 사람으로 얼굴이 파리하고 마음이 순수한데, 말이 어눌하여 바보 온 달로 불리었다고 나온다. 여기서 '파리하다'는 창백하다.. 혹은 건강이 안 좋다고 해석하였다.

'파리하다'는 몸이 마르고 낯빛이나 살색이 핏기가 전혀 없음을 뜻하는 형용사이다.

결과론적으로 얘기하면 온달은 후에 평강공주와 결혼하였고, 각종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는등 고구려 3대 장수로 후대에 평가받았다.(3대 장수 - 을지문덕, 온 달, 연개소문)

결과에 비추어 역으로 생각하면 결혼 전 온 달은 집안이 가난하였고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고 하는데, 평강 공주와 결혼 전 온 달은 가난한 집안사정으로 인해 수척했다 정도가 맞을 것이란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건강이 안좋은 사람이 고구려의 최고  장수까지 올라갔다는 건 이상하지 않나.. ㅋㅋㅋㅋ

그때 당시 의학이 발달(?)하여 병자가 갑자기 호전됐을 리도 없고.. ㅠㅠ

 

최근 학계에선 상당히 설득력있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온 달은 고구려 사람이 아니라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출신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고대 삼국시대는 지금 알려진것과 다르게 지금의 이란인 페르시아와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동로마와도 교류할 정도로 국제교류가 활발(?)까지는 아니었어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삼국시대 유물에 보면 당시 이국적 얼굴의 서역인의 모습이 종종 확인된다.

흥미로운 건 이때는 교역시간을 낙타가 걷는 시간으로 계산을 하였다고 한다. 대략 8개월 정도의 시간이면 한반도에 도착할 수 있는 시간으로 지금 생각하면 엄청난 시간이지만 그때 당시에는 그렇게 느린 시간은 아니었다고 한다.

 

여기서 당시 시간개념에 대한 생뚱맞은 tmi...

우리가 알고 있는 국사 시간에 배운(난 국정 교과서 세대다..) '하멜 표류기'의 하멜은 동인도 회사의 아시아 개척운동의 일환으로 일본으로 향하던 중 제주도에서 태풍으로 인해 배가 난파되어 13년간 조선에 감금되었다가 네덜란드로 돌아갔다. 하멜은 자신의 조선에서 있었던 일을 책으로 펴내게 되는데 이 책이 '하멜 표류기'이며, 이로 인해 서양에 조선의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여기까지가 내가 국사시간에 배운 '하멜 표류기'의 내용이다.

 

(여기서부터 좀 더 팩트체크를 하면...) 하멜은 네덜란드 출신의 동인도 회사 선원이었다. 동인도 회사는 17세기 초  영국을 비롯한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유럽국가가 동방 진출을 목표로 동양에 대한 무역권을 부여받아 동인도에 설립한 무역회사를 통칭하는 말이다. 동인도 회사는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 형태를 갖췄으며, 여기서 말하는 동인도의 인도는 지금의 인도를 지칭한다. 동인도라고 명명한 이유는 유럽국가를 기준으로 동쪽에 위치해 있었기에 동인도라 칭하고 회사이름은 동인도 회사라고 하였다. 이런 동인도 회사의 최대 주주가 네덜란드였다. 영국과 프랑스 역시 지분이 있었지만 이들 국가는 침략전쟁으로 동방진출을 꾀하였고, 네덜란드는 정상적인 무역거래를 통한 평화적 동방진출을 계획했다. 지금의 네덜란드라는 국가의 성격을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이런 동인도 회사의 선원이었던 하멜은 1653년 상선 스페르베르 호를 타고 일본 나가사키로 무역 거래를 가던 도중, 배가 난파되어 제주도에 배가 불시착하게 된다. 당시 조선은 외국인이 조선에 입국(?)하게 되면 본국으로 돌려보내지 않는 것이 국가 법이었다. 하멜이 조선에  불시착하기 전, 조선 인조 때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라는 사람 역시 선원으로 아시아에 왔다가, 1628년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던 도중 태풍에 밀려 제주도에 도착하였다. 얀 야너스 벨테브레이를 포함한 3명인가의 선원은 한양으로 압송되었고, 이후 조선으로 귀화하고 훈련도감에 배속되어 무기를 제조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이때 당시는 조선이 임진왜란, 정유재란, 병조호란을 거치며 서양식 군사무기에 대해 알아가고 있을 시기였으며 이들은 당시 유럽의 군용 무기들을 조선에 알려주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얀 아너스 발테브레이는 조선으로 귀화 후 조선 이름을 부여받는데, 이가 바로 박 연이다. 박 연처럼 조선으로 귀화 후 조선을 제2의 고향으로 여기고 생을 마감한 사람도 있는 반면, 하멜은 어떻게 해서든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13년 동안 조선에 억류되어 있다가 가까스로 일본으로 탈출했는데 거기에서도 다시 1년여 감금생활을 하였고, 드디어 1668년 고국 네덜란드로 돌아간다. 하멜은 자신의 회사인 동인도 회사에 밀린 급여를 받기 위해 자신이  회사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다시 회사로 돌아왔는지 15년 정도의 업무일지를 작성해서 회사에 제출한다. 회사에서는 하멜이 제출한 업무일지를 검토하고, 그가 농땡이 안 피우고 열심히 회사생활을 하다가 사고로 제시간에 돌아오지 못한 것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신청한 밀린 급여 및 산업재해를 인정하고 추가 재해 수당까지 지급하게 된다.

조선을 유럽에 알린 '하멜 표류기'는 이렇게 한 직원의 밀린 급여를 받기 위한 업무일지였다.

15년의 업무일지를 회사에서 인정해 줄 만큼 당시의 시간적 개념은 현대와 다르다. 만약 지금 어떤 사고로 인해 A라는 회사에서 15년간 갑자기 B라는 직원이 사라졌다가 갑자기 나타나서 어떤 사고로 인해서 15년간 출근하지 못했으니 월급과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면 B는 미친놈 취급받을 것이다..ㅠㅠ

 

다시 팩트체크로 돌아가서 당나라 역사서에 보면, 당시 사마르칸트 지역에 있던  왕족의 성이 '온'씨였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에 성이 '온'씨인 가문은 딱 하나 존재하며 그 가문이 봉성 온씨이고, 그 족보를 쭉 따라 올라가면 시조가 온 달이라고 알려져 있다.

 

추가 팩트체크를 하면 551년 고구려는 돌궐족이라 불리는 튀르크와 대규모 전쟁을 벌이는데, 이때 당시 대략 1,000여 명의 포로가 고구려로 끌려오게 된다. 이때 돌궐에서 끌려온 자들의 후손이 고구려에서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았다면 대략 온 달 장군의 생존시기와 비슷하다. 온 달 장군의 생존연대가 정확하지 않기에 나름 추정이 가능한 가설이다.

옛날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 지역과 돌궐 지역은 상당히 인접해 있었다.

 

다시 정리해 보면 돌궐지역을 방문한.. 혹은 전쟁 중인 사마르칸트 왕족 중 일부가 전쟁에 함께 참여하였고 패배 후 고구려로 이송되었다.. 정도로 생각하면 합리적 추론이 아닐까. 아무리 포로라고 하여도 일국의 왕족을 단순히 포로 취급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고구려에 정착해서 감금생활(?) 비슷하게 생활하였을 것이고, 이때 고구려 여인과의 사이에서 후손들이 태어났다. 그중 한 명이 온 달이다...라고 나름 합리적으로 추측해 본다.

삼국사기를 보면 마음이 순수하다는 것은 어머니를 봉양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일 수 있고, 파리하다라는 표현은 우리 선조들의 모습과 사뭇 달라 거기에서 온 표현일 수 있다. 그리고 말이 어눌하다는 것은 다문화가정(?) 출신이기에 우리말이 서툴렀다 정도로 이해가 가능하다.

그럼 여기에서 이러한 외국 포로 출신의 후손인 온 달이 어떻게 고구려의 장수가 되었고, 평강 공주의 남편인 부마까지 되었는지 의문점이 생긴다.

여기서 그때 고구려의 국내 상황을  살펴보면 그의 성공(?) 스토리를  알 수 있다.

고구려는 초기 개국당시부터 고씨 왕족의 힘이 절대적이 아니었다. 예전 포스팅에서도 얘기했듯이,  주몽은 부여 출신으로 고구려를 건국한 지역은 부여가 아닌 졸본땅이었으며 이때 졸본은 6개의 부족이 권력을 나뉘어 운영되고 있었다.

이는 고구려 건국 후에도 왕권은 그리 강하지 않았으며 이 6개 부족의 짱(!!!)들이 모여 국정을 논의하였다.

평원왕 시절에는 광개토대왕 시절 강력한 왕권이 서서히 하락하였고, 이러한 6개 부족의 세력이 점점 강성해져 왕권은 계속 축소되었다. 이에 평원왕은 왕권 강화를 위해 고구려 전역에 자신의 친위대를 뽑기 위한 비무대회를 개최한다.

이른바 '프로듀스 101'의 고구려 버전이다..ㅋㅋㅋ 명목은 백제와 신라의 팽창을 견제하기 위한 유능하고 젊은 장수의 선발을 내세웠기에 6개 부족은 딱히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여기에서 우리의 온 달은 예선 토너먼트를 거쳐 결승까지 진출하였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평원왕은 온 달을 비롯하여 '프로듀스 101'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입상자(ㅋㅋㅋ)들을 모두 자신의 친위대로 뽑았고, 그중 온 달은 자신의 딸과 혼인하게 하여 자신의 최측근으로 만들었다.

이후 온 달은 평원왕의 절대적 지지와 평강 공주의 확실한 내조를 받으며 고구려 장수로서도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렇게 수많은 백제와 신라와의 전투에서 계속 승리하면 전성기의 고구려 땅을 계속적으로 수복하였고, 평원왕 입장에서는 자신의 사위가 참전하는 모든 전투에서 승리를 하였기에 당연히 왕권은 점차적으로 강화되었고 안정되어 갔다.

특히 577년 중국 북주의 무제가 고구려를 침락했을때 엄청한 공을 세우게 되고, 온 달은 고구려 최고 장수이자 '대형'이라는 벼슬까지 하게 된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온 달은 영양왕 1년인 590년 신라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해 군사들과 함께 전투에 참여하였으나  아단성에서 전사하고 만다. 이때 온달이 전쟁을 나서기 전 영양왕에게 '계립현과 죽령 서쪽의 땅을 되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라고 말하고 전쟁에 참여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슬픈 tmi....

고구려 군사들은 아단성에서 신라군과 싸우다 전사한 온 달 장군을 관에 모신 후 고구려로 이동하려고 하였다. 당연하다.. 일개 병졸의 죽음도 아닌 전직 왕의 사위이자 최측근 장수가 죽었는데 거기다 버리고(?) 지네들만 돌아가면 모두 참수형 당하지 않았을까.. ㅠㅠ 군사들이 관을 들고 이동하려고 하는데 관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군사들이 혼비백산하여 상부(?)에 보고 하였고, 부인인 평강 공주가 직접 아단성까지 행차하여 '죽고 사는 것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이만 돌아가십시다'라고 말하자 그제야 관이 움직였다고 한다.....라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전설은 전설로만 받아들이자.. -_-;;

 

여기까지가 바보 온 달과 평강공주의 사랑, 그리고 온 달의 치열했던 삶의 기록이다.

 

and.....

온 달이 전사한 곳으로 알려진 '아단성'은 지금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아차산성'이라는 주장과, 충청북도 단양의 '온달산성'이라는 주장이 각각 광진구 주민과 단양 주민들 사이에서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아차산에는 온 달이 마셨다는 온달샘이 전해져오고 있고, 단양에서는 온달 동굴과 온 달이 가지고 놀았다는 공깃돌(?)이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

당시 아단성 주변은 토지가 비옥하여 삼국 모두에게 중요한 지역으로 여겨졌다. 농업이 국가 장려 종목의 100%인 시대임을 감안하면 농사짓기 좋은 땅을 확보하는 것은 삼국 모두에게 중요한 국정과제였을 것이다.

광진구 지역은 알다시피 한 강 유역이다. 그리고 단양은 남한강 상류 지역이다. 누구의 주장이 맞는 것일까?

일단 광진구 주민과 단양 주민은 이 설전에서 제외다.. ㅋㅋㅋㅋ

 

포스트 제목에 장영실이 등장한 이유는 장영실 또한 다문화가정 출신이기 때문이다. 이는 정확하게 문헌에 나와있는 내용으로 아버지는 중국 송나라 혹은 원나라 출신의 귀화인이라 전해지고, 어머니는 기녀 출신이다.

장영실 또한 언제 태어났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아버지가 중국 출신의 귀화인이고 어머니가 기녀였기에 언제 태어났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을 것이다. 당시 어머니의 신분에 따라 자식의 신분도 결정되었는데, 그가 동래 관노로 지낸 건 그의 어머니가 기녀인 점과 아버지가 귀화인이라는 점이 모두 작용하였을 것이다. 장영실은 어려서부터 무엇인가 만드는 것에 상당한 재주가 있었으며 그의 그런 똘똘한(?) 재능은 한양의 태종에게 까지 전해지게 된다. 태종.... 이 참.. 철혈군주인 것은 맞지만 인재를 기용하는 것에 있어서 특별한 차별을 두지 않는 어떤 부분에서는 상당히 개방적인 성격의 임금이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자신의 왕권에 대항하는 자들은 모두 반역으로 몰아 자기 처남들까지 모조리 죽여버리긴 했지만... 어쨌든 그의 사망시기를 알 수 없는 건. 내가 세종대왕님(?)에게 가장 실망한 부분 중 하나이다. 장영실은 태종에 의해 발탁되었고, 세종대에 이르러 세종의 천재성과 짝짜꿍 되어 본인의 천재성 또한 함께 발휘되어 역대 어느 왕조, 어느 시대에서도 하지 못한  엄청난 물건들을 두 사람의 합작으로 발명하게 된다.

 

“영실의 사람됨이 비단 공교한 솜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질이 똑똑하기가 보통보다 뛰어나서, 매일 강무(講武)할 때에는 나의 곁에 두고 내시를 대신하여 명령을 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찌 이것을 공이라고 하겠는가. 이제 자격궁루(自擊宮漏)를 만들었는데 비록 나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였지마는, 만약 이 사람이 아니었다면 결코 만들어 내지 못했을 것이다.” ([세종실록] 세종 15년 9월 16일)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장영실 [蔣英實] - 신분의 굴레를 뛰어넘은 조선 최고의 발명왕 (인물한국사, 정성희, 장선환)

 

장영실은 세종대왕이 탈 가마인 어가를 제작하는 실무를 맡았다.

당시 세종대왕(님)은 각종 병으로 인하여 온천을 가는 일이 잦아졌고, 이에 세종대왕(님)이 탈 가마인 어가를 제작하게 된다. 어가를 제작하는 총책임자는조순생이라는 자였다. 장영실은 자신을 노비에서 해방시켜 준 세종대왕(님)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어가를 제작하였다. 마지막 어가 검수(?)를 하는데 어가의 조립 부분이 조금 불안하여 부서질 우려가 있다고 조순생에게  보고를  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이놈의 늘~~~ 공무원인 총책임자는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한다.

불안 불안한 상태에서 어가는 제작이 마무리되었고, 세종대왕(님)은 어가를 타고  온천으로 향하게 된다.

결국..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어가가 부서져버린 것이다.. -_-;; 난리 났네.. 난리 났어..ㅠㅠ

'신상필벌'...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우리나라의 고질적 문제인 인맥이 발휘되게 된다..(하.. 지금이나 그때나.. 아주 그냥... >.<)

총책임자였던 조순생은 조선 개국 공신중 한 명인 한산군 조인옥의 손자였다. 아버지인 조 뇌는 지돈녕부사였다.

지돈녕부사는 조선당시 나라에서 특별관리하는 산림, 천택의 감독관이었고, 조선시대 정부의 재정부서에서 전곡 출납의 실무를 맡은 매우 중요한 자리다.

이러한 일반인은 상상하기 힘든 막강한 뒷배경(>. <)으로 인해 조순생은 처벌에서 제외되었고, 결국 어가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한 장영실만 모든 책임을 지고 곤장 80대를 맞았다.. 이후.. 장영실의 기록은 없다.. 곤장 80대를 제대로 맞으면 거의 즉사한다고 한다..ㅠㅠ(아.. 세종대왕님이시여.. -_-;;)

예전에 까칠한 분이 예상했듯(^^) 어쨌든 노비출신이었기에 99가지를 잘했지만 1가지를 실수했고, 그 실수로 인해 그는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지금 문헌상으로 존재하는 장영실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다.

해의 그림자로 시간을 재는 해시계인 양부일구, 물을 부으면 움직여 시간을 알려주는 자동 장치가 달린 물시계인 자격루, 물의 높이를 재는 기구인 수표등 당시 국가정책에 매우 중요한 농업 발달에 관련된 수많은 개발품을 만들었지만 당시 그가 이러한 발명품을 만들기 위해 작성한 초기 개발 자료들이 전혀 전해지지 않는다.

한국의 에디슨이라고 평가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 분.. 최소한 에디슨보다 2배는 똑똑한 양반이다.

이런 획기적인 발명품을 개발하였는데 초기 스케치가 없다는 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결국 그의 신분의 문제로 인해, 그러한 엄청난 개발 자료들이 관료세력에 의해 부정되었고 후세에 전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가 아닐까 하고 까칠한 분도 댓글에 이러한 내용으로 의견을 주셨고 내 의견도 거의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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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주제의 포스팅을 한 이유는 어느 방송에서 본 하나의 문장 때문이다.(아래는 오롯이 나의 주관적 생각이다!!!!)

 

'우리는 5,000년을 이어온 단일민족이다'

 

단일민족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하나의 순수 단일민족으로 이루어지거나, 단일민족 속에 소수의 다른 민족이 존재하 기는 하지만 그 수가 극히 적어 국가의 구성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국가를 의미한다.

말의 뉘앙스가 참으로 어디론가 사삭.. 빠져나갈 수 있도록 정의되어 있다. 도대체 소수의 다른 민족은 얼마만큼의 소수를 말하는 것일까? 

구글링을 해보니 우리나라가 외세에 의해 침략받은 횟수는 931회라고 한다. 아마 여기서 외세는 지정학상 거의 99%는 중국과 일본일 것이다.. 그리고 조선말기 미쿡과 불란서, 러시아...(이놈의 새x들.. >.<)

우리의 단군 할아버지가 하늘에서 사뿐히 내려오셔서 조선을 건국한 게 기원전 2,333년이고 지금이 기원후 2023년이니  계산하기 쉽게 우리나라의 역사를 5,000년 전이라고 가정하면, 대략 5년에 한 번꼴로 외세의 침략을 받은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우리의 자의로 인해 다른 나라와 정복전쟁을 진행한 건 오로지 고구려 광개토대왕뿐이다.

정복전쟁 승리의 최고의 전리품은 패배한 국가의 백성들이었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어느 국가에서건 백성이 최고의 자산이었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국가가 번성하기 위해선 많은 인구가 필요했다. 농사를 지어야 했고, 군에 입대(?)해 적과 싸워 영토를 넓혀야 했다. 언뜻 보기엔 남자가 매우 중요한 위치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출산을 하는 건 여자의 몫이다.

그래서 대부분 전쟁에서 승리하면 남자는 젊은이만 골라서 선별하였고, 여자는 어린아이부터 출산이 가능한 연령대의 여자들까지 모두 잡아갔다. 안타깝고 서글픈 역사지만 출산에 필요한 사람은 소수의 남자와 다수의 여자였다.

전쟁에서 패배한  국가의 백성 중 필요 없는(?) 노인들은 죽임을 당하였고, 여성들은... 뭐.. 그랬을 것이다..(죄송하네ㅠㅠ)

931회의 외세 침략 중 우리나라가 승리한 전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거의 대부분 우리나라는... 그러하였다.

그럼 그 백성들은.. 남자들은.. 여자들은....

아시아는 이유야 어쨌든 황하문명으로 인해 문명이 발생하였고, 여기서에 인류 이동이 일어났다. 이 인류의 이동은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까지 이동했으니 우리는 단일민족이다....라고 주장하면.. 뭐.. 우리는 모~~~~~두 단일민족이다.. ㅠㅠ

고대와 중세에 이르기까지.. 아니 근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국가는 정복하기 위한 전쟁과, 정복당하지 않기 위한 전쟁을 진행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각각의 국가는 전쟁 결과에 따라 수많은 국가의 백성들이 타의로 인해 이동을 하였을 것이고, 결국 그곳에 정착하여 또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고려인 1세로 알려진 까레이스키.. 그들은 스탈린에 의해 사막 한가운데로 강제 이주되었고, 결국 그들과 그 후손들은 그곳에서 버티고 살아남았다. 그럼 그들은 국가가 다르기에 단일민족이 아닌 것일까.  여담으로 카자흐스탄의 기념주화 중 일부 주화의 주인공은 바로 단 군이다.

 

예전에 SBS에서 방영된 '가문의 영광'이란 주말 드라마가 있었다. 난 이 드라마가 방영될 땐 본 적이 없고, 나중에 이 드라마를 찾아서 다시 본 적이 있는데 여기에서 가문의 가장 큰 어른으로 나오는 신 구 배우가 이런 대사를 한 적이 있다.

'가문이란 단순히 혈연 집단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대략의 줄거리는 하 회장(신 구)은 강원도 하 씨 집안의 장손으로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강제징용되어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불구의 몸이 되었고, 어머니는 일제에 의해 강x을 당한 수 태어난 아들이 하 회장이다.

하 회장은 부인과의 사이에 아들을 한 명 두었는데, 어느 날엔가 집 앞에 버려진 여자 아이 한 명을 부인의 요청으로 자신의 딸로 입적시킨다.

하 회장의 아들 하사장은 첫째 부인이 아들 두 명과 딸 한 명을 낳고 사별하였다.

그리고 하사장은 회사 홍보팀장이랑 눈 맞아서(?) 할아버지(하 회장 아버지)의 3년상이 끝나기도 전에 사고를 쳐서 아이를 갖고 재혼을 한다.

첫째 아들은 선천적으로 자식을 가질 수 없는 몸이어서 첫째 부인과 이혼하고 회사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고아 출신의 여성과 결혼해서 아들을 입양한다.

둘째는 어릴 때부터 사고만 치는  개돌 xx로 결혼하기 전 사고 쳐서 낳은 아이를 첫 번째 결혼한 여성이 키우게 되고, 나중에 아들에게 들킨다.

결국 첫 번째 여자와 이혼하고 나중에 사고만 치는 동생들을 챙겨 온 경찰 여자와 재혼하고 다시 아이를 낳는다.

그나마 정상인(?) 딸아이는(얘가 주인공이고 윤정희가 여자 주인공)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쳐서 이강석이라는 남자와 결혼하게 되는데(박시후라는 배우이고 지금은 xxx 한 문제로 방송에서 안 보인다.ㅠㅠ) 이강석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경주에서 부잣집 머슴으로 일했고, 함께 머슴으로 일한 여자와 혼인하고 이강석을 낳았다. 당시 머슴들은 특별한 성이 없었는데 자신이 태어나고 나란 곳이 경주여서 본인을 경주 이 씨라고 하였다.

이 둘은 결혼하여 쌍둥이를 출산하고 알콩달콩 살았다.... 끝!!!!

단순한 잣대로 생각해 보면 이 집안은 콩가루 집안이다.. -_-;; 그리고 이 드라마에 나온 배우들.. 신 구 배우를 비롯하여 몇몇만 연기를 하였고, 나머지 주인공들은 그냥 대사를 읽기만 하였다.. ㅠㅠ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기억하는 이유는 드라마지만 가문에 대한 의미를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어서다.

 

조선 말기만 해도 양반을 비롯한 일부 계급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성이 없었다. 정말 그냥 개똥이, 말순이라고 불리었다.

그 옛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이름이 이상한 역사 속 인물들이 있는데, 이유는 순우리말이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금처럼 성+이름 시스템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이 잡것들이 조선에서 세금을 거둬야 하는데, 호구조사를 할 수 없었다. 백성들 대부분이 정확한 성이 없으니 지역마다 호구조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이것들은 창씨개명을  통하여 조선인의 일본화를 진행하려 하였지만 외국어를 배운다는 게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어르신들이 국문이 아닌 일본어를 배운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반강제적으로 모든 백성들에게 지금의 방식인 성+이름 시스템으로 제도를 변경하고 세금을 매긴 것이다.

우리나라에 김 씨, 이 씨, 박 씨가 많은 이유 중에 하나다. 아무리 김수로왕과 박혁거세가 오래전 인물이라고 하나, 너~~~~ 무 자손들이 많다. 이성계도 마찬가지고... ㅎㅎㅎ

 

아..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했지.. ㅠㅠ

미국이 19세기 이후  세계 최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독일 때문이다.

독일의 게르만 민족 우월주의에 의해 당시 독일에 정착해 살던 유대인들은 나치의 학살을 피하기 위해 대거 미국으로 망명을 하였다. 이것이 1차 독일 대 탈출이다.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발발한 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은 독일에게 전쟁 배상금을 물리게 된다. 전쟁배상금을 갚으려면 뭔가 만들고 수출해야 하는데 이놈의 연합국 놈들은 독일에 있는 공장의 모든 기계들을 뜯어가 버렸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독일의 기술력은 세계 1위였다. 도저히 독일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진 수많은 기술자들과 지식인들은 다시 또 독일을 탈출하여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망명하게 되는데 이것이 2차 독일 대 탈출이다. 

미국이 기회의 나라라고 불리는 이유 중 하나는 이러한 타민족의 이동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고, 거기에서 군계일학처럼 튀어나오는 인물들의 재능을 모두 국가의 발전에 이용하였다.

 

상대성 이론의 아인슈타인은 독일 출신의 유대인 이민자로 미국을 초 강대국으로 일으켜 세운 일등공신이다.

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유대인으로 그의 부모는 영국계 미국인이고 독일계 미국인이다.

스티브 잡스의 양어머니는 아르메니아계 출신이다.(스티브 잡스는 친부모를 나의 정자와 난자 은행이라고 말했다.ㅋ)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커 저커버그는 유대계 미국인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구글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는 미국 미시간주에서 태어난 유대인이고, 또 다른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출신의 미국 시민권자이다.

스티븐 스필버거는 유대인으로 독일 나치 정권의 홀로코스트 사건을 직접 다룬 '쉰들러 리스트'를 제작하여 전 세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다.

독일계 미국인인 존 록펠러는 미국의 석유왕으로 불리었으며 사망당시 그의 재산은 14억 달러이며 현재 인플레이션을 적용하면 4,090억 달러라고 한다. 현재 자산 1위를 다투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의 재산은 2,117억 달러이고,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의 재산은 3,110억 달러라고 한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공산주의 선언'이란 책을 집필하며 전 세계를 사회주의로 만들려고 한 칼 마르크스도 유대인이다.

퀴리 부인이라 불리는 마리 퀴리는 폴란드 출신으로 당시 폴란드와 독일에서는 여성이 대학에 갈 수 없어서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칼 마르크스와 마리 퀴리를 제외하곤 모두 미국에서 성공하였고, 이들의 성공은 곧 미국을 세계 최강국으로 성장시켰다.

우리의 조선은 흥선 대원군이 쇄국정치를 펼치며 그나마 문호를 조금이라도 개방하려던 개화파들을 모두 숙청해 버렸다.

이야기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ㅠㅠ 다문화가정 온 달에서 뭐 이런 주제로 변경이 되냐.... -_-;;

지금 금요일 저녁 7시에 이 포스팅을 시작해서 현재 시간이 토요일 새벽 1시가 다 되어간다.(아싸.. 기록경신. ^^)

난 지금 이 포스팅을 끄적이며 이것저것 자료 찾아보고 겁~~~~~나 재밌는데...

혹시나 주말에 괜히 이 포스팅을 읽어보는 이웃님들은 겁~~~~~나 재미없을 것이다..ㅋㅋㅋㅋㅋ

내일은.. 아니지.. 오늘이구나.. 그냥 뒤로 가기 눌러도..... 충~~~~ 분히 이해한다.. ^^(욕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조회수는 포기했다..ㅠㅠ

 

아침에 병원에 갔다가 2주 만에 드디어 출사를 나간다.

폴더에 간직한 포스팅 자료도 다 떨어졌고.. 어쨌든 이번 주말은 뭐라도 나가서 보고, 먹고 해야 한다..ㅋㅋㅋㅋ

사실.. 지금 이런 말도 안 되는(?) 포스팅을 끄적이는 이유는 내 폴더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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