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아름다운 사찰....양산 '통도사'를 방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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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 15년에 자장율사가 세운 사찰이다. 통도사가 위치한 영축산의 모양이 석가모니가 불법을 펼친 인도 영축산과 통한다고 하여 사찰의 이름을 통도사라 하였다. 또한 승려가 되고자하는 자는 반드시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에서 사찰의 이름을 통도사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일반적으로 대웅전에는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는 특징이 있다. 대웅전 건물 뒷편에 부처님으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기 때문이다. 금강계단은 승려가 되는 과정 중 가증 중요한 수계의식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진리의 모습으로 항상하는 부처님'이라는 상징성을 갖는 곳이다. 통도사의 금강계단은 우리나라 전통적인 수계단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현재의 모습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 여러 차례 수리한 것이다. 통도사는 국보로 지정된 대웅전과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금강계단을 비롯하여 무수히 많은 문화유산이 소장되어 있다. 이러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통도사는 현재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우리나라의 일곱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수계단은 승려가 되기 위해 계율을 받는 장소를 말한다. (양산 통도사)

 

 

 

 

여름이 아름다운 사찰이 있고, 가을이 아름다운 사찰, 겨울이 아름다운 사찰이 있다.. 최소한 이곳 통도사는 여름이 아름다운 사찰인것 같다.... 전남 해남에 위치한 대흥사와 경북 영주에 위치한 부석사도 여름이 참 어울리는 사찰이었는데.. 이 사찰들은은 가을의 알록달록함과 겨울의 설경보다는 여름의 푸르름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사찰이다.

 

 

통도사 3통도사 4

 

 

부도원은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탑과 비를 세워 놓은 곳이다. 본래 통도사 주변에 흩어져있던 것을 초대 방장 월하 스님의 교시로 1993년에 한곳으로 보아 새롭게 조성한 것이다. 임진왜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나라와 불교를 위해 활약한 고승과 수행자들의 부도 60여 기 및 비석 50여 기를 모시고 있어 통도사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보여준다. 부도원의 승탑과 탑비는 조선 후기의 특징적인 양식을 나타내고 있어 불교 미술사 연구에 자료적 가치가 높다.(부도원 설명)

 

 

통도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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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7

 

 

시퀀스라는 개념이있다. sequence.... 굳이 번역하자면 시간, 공간적인 순서라고 해야하나... 대부분의 사찰은 산에 위치해있다. 그렇기때문에 본인이 어렸을때만 하더라도 산속에 위치한 사찰을 찾아가는건 꽤나 힘든 고행의 길이었다. 어느정도 고행의(?) 산행도해야하고.. 그렇게 힘들게 사찰 입구에 도착하면.. 뭔가.. 우락부락한 4개의 그림이 나를 반겨주고.. 그곳을 지나서 극락전이나 대웅전까지 들어서는 길에서 마주하는 많은 사찰의 공간과 시간이 부처앞에 섰을때 이곳까지 오는 힘든 고행(?)의 시간을 보상받는듯한... 그런 시퀀스를 이룬다.

 

 

통도사 8

 

 

하지만 지금의 사찰들은... 뭐.. 모든 사찰이 그런건 아니지만 특히나 많이 알려진 사찰들... 여기 통도사를 비롯해 대흥사, 부석사등... 이런 알려진 사찰들은 지금은 사찰바로 밑에 주차장이 있어서 차를 이용하면 사찰 바로 밑까지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 그렇게 사찰에 도착한 사람들은 단순히 사찰만 보고 돌아오게된다. 그렇게되면 힘들게 산길을 오르고 많은 보살들을 거쳐 부처를 마주하게 됐을때의 감정은 완전히 다르다.. 이건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모든 인생이 그렇지 않을까.. 손쉽게 무엇인가를 이루게된다면 그 성과에 대해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하듯, 부처를 만나기위한 단계적 경험.. 즉 시퀀스가 무너져버리면 그냥 금빛 동상 하나를 마주할뿐이게 되는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

 

 

 

(사진 한 컷) 부석사.... 자연과 동화된 최고의 사찰

부석사는 전라남도 해남에 위치한 '대흥사'와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찰이다..특별한 의미는 없다. 부석사는 처음으로 내게 '사찰'이란 이런 곳이구나.. 라는걸 느끼게 해준 곳이고, 대흥

chhyung.tistory.com

 

 

통도사 9

 

 

그러한 이유로 한동안 사찰을 잘 찾지 않았다. 내 고향인 영주에는 유명한 사찰 2곳이 있는데 하나는 영주에 위치한 부석사이고, 또다른 한곳은 안동시 옹천에 위치한 봉서사이다.(안동시 옹천은 본인이 졸업한 중학교가 있는곳이랍니다..^^) 부석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부석'의 의미는 땅에서 뜬 돌이란 뜻으로 부석사에 가면 이 '부석'을 확인할 수 있따.. 뭐..물론.. 실제로 돌이 떠있는것은 아니고..^^ 또한 부석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 하나인 '무량수전'이 있는곳이다. 어릴때 부석사에 갈때는 그 길이 엄청 멀고 힘들고, 고되었는데... 10년전인가.... 다시 방문한 부석사는 부석사 바로 아래까지 차를 가지고 갈 수 있어 부석사를 향하는 주변의 풍경을 모두 프리패스하고 말았다. 안동의 봉서사 역시 마찬가지다.  봉서사 역시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고 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유추한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대사가 종이로 봉황을 만들어(?) 도력(!!)으로 날렸는데, 봉황이 이곳에 내려 앉아 알을 품었다하여 봉서사라고 이름 지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냥 전설로만 이해하자^^ 봉서사의 극락전역시 7세기 후반 능인대사에 의해 지어졌다고 알려진만큼 부석사 무량수전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다. 봉서사는 옹천에서 산자락을 타고 산으로 깊숙히 들어가야하는데 이곳역시 지금은 사찰아래까지 도로가 포장되어 편안하게 사찰을 구경할 수 있다. 이러한 편리함은 사찰이 대중화(?)되어 가는 부분에는 많은 긍정적인 요소를 보여주지만, 사찰이 인간에게 주는 근본적인 의미는 조금 퇘색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지만!!!!! 나의 주관적 견해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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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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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각은 예불의식을 올릴 때 치는 종인 범종이 있는 건물이다. 하루 세 번의 예불의식 가운데 새벽과 저녁 두 번에 걸쳐 소리를 울린다. 범종각은 2층 누각 형식의 건물로 조선 숙종 12년인 1686년 수오대사가 처음 지었고,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범종각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이다. 아래층은 사방을 터서 계단을 두어, 위층으로 오를 수 있게 하였다. 지붕은 옆모습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범종각 내부 상하층에는 소리를 내는 네 가지 도구인 사물을 비치하였다. 범종은 지옥을 포함한 모든 고통받는 중생을 위해, 법고는 짐승의 무리를 위해, 목어는 물속의 중생을 위해, 운판은허공의 날짐승을 위해 친다고 한다. (범종각 설명)

 

 

통도사 14
범종각

 

 

영상전은 하로전의 중심 전각으로, 조선 숙종 30년인 1704년에 송곡대사가 다시 고쳐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속종 42년인 1716년에 쓰여진 '영산전천왕문양중창겸단화기문'에 따르면 숙종 39년인 1713년 봄에 영산전과 천왕문이 화재로 소실되었고, 숙종 40년인 1714년 청인, 정안, 장일, 치원 등 여러 대선사의 노력으로 건물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그 후 총안대사가 숙종 41년인 1715년 단정을 올렸고, 숙종 42년인 1716년에 모든 공사를 마치게된다. 영산전 내부에는 보물로 지정된 영산전 벽화가 있다. 또한 천장, 대들보 등에는 단청이 아름답고 위엄있게 장식되어있다.(영상전 설명)

 

 

통도사 15
영산전

 

 

극락전은 극락세계를 열고 중생들을 꺠달음으로 이끈다는 아미타불을 모신 건물이다. 극락전은 고려 공민왕 18년인 1369년 처음 지었고, 조선 숙정 40년인 1714년에 다시 고쳐지었다. 일반적인 건물과 달리 측변에 어간 출입문을 둔 특징이 있다. 건물의 뒤쪽 바깥벽에는 인로왕보살이 중생들을 인도하여 극락세계로 향하는 모습을 그린 '반야용선도'가 있다. 그 외 포벽화 일부와 조선 영조 1년인 1740년에 그린 '아미타후불도'등의 그림은 현재 성보박물관에 옮겨 보관하고있다. '어간'이란 전각의 중심을 새로로 잇는 영역을 말하고, '포벽화'는 기둥과 지붕을 연결해주는 공포 사이의 작은 공간에 그린 벽화를 의미한다. (극락전 설명)

 

 

통도사 17

 

 

통도사 3층 석탑은 큰 받침돌 위에 2층 기단을 세우고 그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 양식을 따르고있다. 1987년 해체 수리 당시 원래 위치에서 동북쪽으로 약 1.5m 정도 옮겨 극락전과 약사전의 중심축에 맞추어 복원하였다. 당시 상층 기단 안쪽에서는 조선 시대 백자가 발견되었고, 하층기단의 다진 흙 속에서는 소형 금동 불상 2구와 청동 숟가락이 발견되었다. 기단에서 발견된 유무들은 지금의 위치로 석탑이 옮겨지면서 탑 배례석과 함께 성보박물관에 보관하였다. (통도사 3층 석탑 설명)

 

 

통도사 20
통도사 3층 석탑

 

 

약사전은 중생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고 수명을 늘려 준다는 약사여래불을 모신 법당이다. 고려 공민왕 18년인 1369년 성곡대사가 지었다고 알려지고있다. 지금의 건물은 18세기에 여러 차례 고쳐 짓고, 20세기 초에 보수한 것으로 보인다. 약사전 내부에는 감실형 불탁이라고 불리는 불상을 모셔 둔 탁자를 두고 약사어래불을 모셨다. 불상 뒤에는 조선 영조 51년인 1775년 그린 '건륭40년명 약사여래후불탱'이 걸려있다. 다만 그림의 원본은 현재 성보박불관에 소장하고 있다. 한편 내부 좌우 벽면에는 18세기 초에 그린것으로 추정되는 벽화를 보존하고 있다. (약사전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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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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