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은 현재 민노총이나 한노총등에서 데모를 위한 노래로 많이 쓰인다. 하지만 원래 이 노래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중 5월 27일 전라남도청을 사수하다가 계엄군에게 희생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님과, 1978년 말 노동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가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 님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노래다. 백기완 선생이 글을 쓰고, 작곡은 김종률 님이 하셨다. 보통 작사가를 황석영 작가로 알고 있는 이가 많은데, 이는 백기완 선생의 시를 확석영 작가가 편집하였기 때문이다. 이 노래가 처음 공개된건 1980년 5월 민주화운동 당시가 아닌 1982년 2월 윤상원과 박기순의 유해를 광주 망월동 공동묘지에 합장하면서 영혼결혼식을 거행할 때 처음 공개되었다. 이후 이 노래는 당시 카세트테이프..
(이 포스팅은 내 개인의 역사의 주관적 해석이다) 나는 1980년 1월생이다.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은 나와는 전혀 별개의 사건들이다.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1986년에는 벌써 88 서울 올림픽 개최가 확정되었고,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는 어찌 되었든 국민 직선제로 우리 국민 스스로가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을 정도의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였다. 그 결과 역시 내가 원한 결과가 아니더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의 산물이다. 4.19 혁명은 1960년에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에 대항하여 일으킨 민주 항쟁이다. 1960년은 우리나라가 광복한지 15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기로, 우리는 미국의 신탁통치로 인해 강제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
이육사는 흔히 알고 있는 일제 강점기 시대 윤동주, 만해 한용운과 더불어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알고 있다. 시인 윤동주는 특별한 호는 전해지지 않는 것 같다. 아호가 해환이라는 것만 전해지고, 호는 잘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세 분이 모두 저항시인이다.. -_-;; 윤동주 시인과 만해 한용운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포스팅하고 오늘은 이육사 선생에 대해 포스팅하고자 한다. 육사 선생의 대표적인 시는 황혼, 청포도, 광야, 절정 등이 있다. 이육사의 육사는 어릴때 이 분의 호가 아니다. 1927년 조선은행 폭파 사건에 연루되어 대구 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는데, 그때의 수인번호가 264였다. 본명은 이원록이고 이원삼이라고도 한다. 혹시 이 분에 알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아마도 이 활로 알고 있는데 ..
오늘의 쓸데없는 History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자신의 국가 보물 1호(?)인 자명고를 찢은 자명공주와 대무신왕의 슬픈 사랑과 더불어 고구려 2대 전설 전해지는 '바보 온 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다. 자명공주와 대무신왕의 이야기는 다음에 할 것 같고....ㅋㅋㅋㅋ 근데.. 웬 갑자기 다문화가정 성공신화???? 이는 온 달의 출생 연도가 정확하지 않은데에서 기인한다. 온 달이 사망한 시기는 신라와의 아단성 전투에서 사망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때가 590년이다. 아직까지 학계에서도 온 달이 진짜 토종(?) 고구려 사람이었는지, 외국인이었는지 섣불리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 당시 정황상 외국계열의 사람인 것이 좀 더 설득력 있긴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오늘은 이런 알쏭달쏭 바보(?)온 달에 대한 Histor..
혹시 '장가들다'와 '시집가다'의 차이점을 아시나요???? 고구려에는 '서옥제'라고 하는 데릴사위제도가 있었다. 이는 혼인을 하면 신부의 집 뒤편에 조그만 집을 짓고 거리에 들어가서 살면서 자녀를 낳고, 자녀가 장성하면 아내를 데리고 신랑집으로 돌아가는 제도이다. 이는 고구려가 가지고 있는 지리적 환경과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고구려는 알고 있듯이 산악지형이 국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이다. 이 말은 농사를 짓기 위한 남성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당시 고구려는 백제, 신라와 더불어 정복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던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남성이 상대적으로 여성보다는 조금은 더 귀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좀 더 깊고(?) 농담적으로 설명하면 국가에 필요한 군..
농담 100%로 까칠양파님이 순간 미웠다... -_-;; 4.19 국립묘지를 다녀오고(4월 15일) 집에 도착 후, 거짓말처럼 몸살에 걸렸다...ㅜㅜ 물론 몸살의 원인 90% 이상은 이 날 비를 맞았기 때문이니라.... 지난번 서대문을 방문했을때 4.19 혁명 기념도서관을 가지 말았어야 했다. 그냥 애초에 내가 알고 있는 정도의 4.19 혁명으로만 알고 있어야 했고, 굳이 관련 자료들을 다시 찾아볼 필요는 없었다. 그럼 나에게 4월 19일은 부정선거로 인해 촉발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첫 발??? 정도로만 알고 그냥 그날이 되면 1분쯤 묵념을 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4.19 혁명 기념 도서관을 가지 않았다면 관련 포스팅을 쓰지 않았을 것이고, 그럼 까칠 양파님이 본인의 포스팅을 알려주지 않았을 것이며 난 ..
오늘의 쓸데없는 history.... 울릉도와 독도는 이사부 장군이 정벌한 후 1,500년 이상 대한민국 영토이다. 우리나라 역사문헌에 우산국에 대한 내용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작 몇 줄 정도로 기록되거나 언급조차 거의 되지 않는 나라이다. 우산국은 현재 대한민국의 울릉도와 독도, 그리고 그 주변섬과 해역을 포함하는 작은나라이다. 울릉도는 대략 500만년전 동해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독도가 먼저 생겨나고, 그 이후 울릉도라는 화산섬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또 2만년전 다시 한 번 폭발이 일어나고, 대략 7천년전 일본까지 화산재가 날아갈 정도로 폭발이 다시 발생하였다. 몇차례의 화산 폭발이 반복되면서 울릉도에는 청동기 시절을 즈음하여 그 이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이때 무슨 배가 있어 배를 타고 울..
오늘의 쓸데없는 history(역사).... 는 첨성대!!!! 경주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첨성대이다. 아래는 첨성대에 대한 나의 주관적 해석이 담긴 포스팅이다. 어릴 때 첨성대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 옛날에는 망원경이 없었는데 어떻게 천문을 관측했을까... 동. 서를 막론하고 현재가 아닌 고대, 중세, 근대사회는 '제'와 '정'이 갖는 의미가 매우 중요한 사회였다. 로마 교황청만 봐도 알 수 있다. 현재 가톨릭 인구가 대략 13억 정도이다.. 전 세계인구는 80억 가량되고... 조금 과장되게 말하면 교황청은 이 13억 인구의 대변인인 셈이다. 로마 교황이 이러한 가톨릭 '제'의 왕인 것이다. 제정분리 사회일 때 제사장의 위치는 왕의 권위 그 이상이었다. 종교라는 자체가 예전에는 ..
먼저 이 포스팅을 읽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법한 단어 4개의 개념을 먼저 정리하고자한다. 처마 - 지붕이 도리 너머로 돌출된 부분 도리 - 기둥과 기둥위에 얹어 그 위에 서까래를 놓는 나무 추녀 - 전통건축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처마의 네 모퉁이에서 지붕의 하중을 받는 부재를 말한다. 춘설로 적고 읽을 때는 '추녀'로 읽는다. 보통 서까래의 끝부분 혹은 그 부분의 처마를 추녀라고 한다. 서까래 - 목조 건축물에서 지붕을 받쳐주는 갈비뼈 모양의 구조물 위 단어들은 흔히 한옥의 목조건출물에 관련하여 많이 쓰이는 용어이다. 한옥은 전통적 한국 건축 양식을 사용한 재래식 집을 의미하는데 이런 처마와 추녀, 서까래, 도리의 개념은 한옥뿐만이 아니락 목조건물을 사용하는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볼 수 있는 구조이다. ..
오늘의 역사 공부 !!!!! 추사 김정희.... 내가 학교다닐때 추사 김정희에 대해 배운건 그렇게 많지 않다. 우리가 흔히 조선의 최고 명필로 꼽는 세종의 아들 안평대군과 "너는 글을 쓰거라, 나는 떡을 썰테니"의 주인공 석봉 한 호....그리고 추사 김정희다. 추사체라는 독창적인 글씨체를 창안하였고, 금석학의 대가(!!!) 정도로만 배운 기억이 있다. 보통 추사 김정희로 불리고 있는데 호는 추사보다는 완당으로 많이 불리운다. 추사는 김정희가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그의 독특한 글씨체를 부름이다. 오늘 포스팅에서 말하고자함은 그가 조선 최고 명필가로써 남긴 추사체의 흔적보다는 다산 정약용, 고산자 김정호등과 더불어 조선의 실학을 완성시킨 합리적 실용주의자로의 김정희를 말하기 위함이다. 그만큼 추사 김정희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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