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중세시대를 구분하는 건 조금 모호하다. 중세는 유럽 역사에서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476년,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 시기인 4세기에서 6세기부터 르네상스 시대라 불리는 14세기에서 16세기를 대략적인 중세시대라고 구분한다. 이와 같은 구분은 동양의 역사에 적용하기는 애매한 부분이 있고 유럽 이외의 지역에도 '중세시대'라는 표현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확실한 부분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유럽의 중세시대는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시점에서 십자군 전쟁 시기인 1095년에서 1291년까지의 시기를 거쳐, 흑사병으로 유럽인구의 30%이상이 사망하고 르네상스 시대가 시작되는 14세기까지 정도로 구분하면 좋을 것 같다. 이번포스팅은 이런 일련의 사건 중에서 십자군 전쟁과 흑사병에 대해서 아는 대..
알렉산더는 고대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이자 그의 정복전쟁인 동방원정으로 인해 전 세계에 헬레니즘 문명을 꽃피우게 된다. 카이사르 시저와 함께 많은 고민을 했지만 개인적으로 좀 더 세계사에 영향을 끼친 인물은 알렉산더 대왕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알렉산더 하면 떠오르는 것이 그의 애마 부케팔로스와 스승 아리스토테렐스, 그리고 헬레니즘이다. 통상적으로 유럽의 고대와 근대는 르네상스 시기를 기준으로 구분하는 편인데, 밀라노 칙령의 시기를 기준으로 구분한다. 알렉산더의 어린시절 알렉산더는 고대시대를 대표하는 정복왕이다. 아시아의 테무진이 역대 최대의 영토를 정복했으나, 알레산더 역시 20세도 되지 않은 않은 어린 나이에 즉위하여 마케도니아에서 시작해서 페르시아 제국과 이집트 그리고 인도까지 정벌하는 등..
현생인류로 불리는 호모 사피엔스는 대략 20 만년 전쯤 지금의 아프리카 지역에서 처음 출현하였다고 한다. 이 '출현'이라는 단어가 맞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어쨌든 호모 사피엔스는 그렇게 지구에 출현하였고, 약 13만 년 전 지구의 갑작스러운 기후변화로 아프리카의 초원지대를 건너 북서쪽 및 남동쪽으로 각각 이동하였다. 이 이동세력 중의 일부가 다른 대륙으로까지 건너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 4군데에서 문명의 시작을 알리며 국가를 건설하였다. 이번 포스팅은 3편으로 나누어 인류역사에서 가장 비극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비극을 통해 점진적으로 발전하게 되는, 가장 이기적인 본능을 가진 호모 사피엔스의 이동과 정착을 통해 벌어지는 전쟁에 대해서 두서없이 끄적거리고자 한다. (이 포스팅의 목적은 ..
퇴계 이황은 조선 중기인 1502년 안동에서 출생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퇴계 선생에 대한 지식은 아주 소박하다. 도산서원과 조선 성리학을 완성시킨 학자정도로만 알고 있다. 왜 퇴계 선생이 훌륭한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나만 그런 건가.... 내가 퇴계 선생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이유는 바로 오늘 포스팅의 제목인 고봉 선생과의 사단칠정 논쟁 때문이다. 그러면서 알게 된 또 하나의 다른 이유.. 여기서는 다른 건 다루지 않고 퇴계 선생과 고봉 선생의 사단칠정에 대한 이야기를 대부분 하고자 한다. 퇴계의 학문은 영남학파라고 불릴 정도로 조선시대 당시 경상도 지방에서 최고의 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조선시대 붕당의 시작인 동. 서인의 분열을 일으킨 성암 김효원이 그의 제자이고..
임을 위한 행진곡은 현재 민노총이나 한노총등에서 데모를 위한 노래로 많이 쓰인다. 하지만 원래 이 노래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중 5월 27일 전라남도청을 사수하다가 계엄군에게 희생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님과, 1978년 말 노동현장에서 '들불야학'을 운영하다가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 님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노래다. 백기완 선생이 글을 쓰고, 작곡은 김종률 님이 하셨다. 보통 작사가를 황석영 작가로 알고 있는 이가 많은데, 이는 백기완 선생의 시를 확석영 작가가 편집하였기 때문이다. 이 노래가 처음 공개된건 1980년 5월 민주화운동 당시가 아닌 1982년 2월 윤상원과 박기순의 유해를 광주 망월동 공동묘지에 합장하면서 영혼결혼식을 거행할 때 처음 공개되었다. 이후 이 노래는 당시 카세트테이프..
(이 포스팅은 내 개인의 역사의 주관적 해석이다) 나는 1980년 1월생이다. 4.19 혁명과 5.16 군사정변,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은 나와는 전혀 별개의 사건들이다.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던 1986년에는 벌써 88 서울 올림픽 개최가 확정되었고, 1987년 13대 대통령 선거는 어찌 되었든 국민 직선제로 우리 국민 스스로가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을 정도의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였다. 그 결과 역시 내가 원한 결과가 아니더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의 산물이다. 4.19 혁명은 1960년에 이승만 정권의 부정부패에 대항하여 일으킨 민주 항쟁이다. 1960년은 우리나라가 광복한지 15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기로, 우리는 미국의 신탁통치로 인해 강제적으로(?) 자유와 민주주의..
이육사는 흔히 알고 있는 일제 강점기 시대 윤동주, 만해 한용운과 더불어 대표적인 저항시인으로 알고 있다. 시인 윤동주는 특별한 호는 전해지지 않는 것 같다. 아호가 해환이라는 것만 전해지고, 호는 잘 모르겠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세 분이 모두 저항시인이다.. -_-;; 윤동주 시인과 만해 한용운에 대해서는 다음번에 포스팅하고 오늘은 이육사 선생에 대해 포스팅하고자 한다. 육사 선생의 대표적인 시는 황혼, 청포도, 광야, 절정 등이 있다. 이육사의 육사는 어릴때 이 분의 호가 아니다. 1927년 조선은행 폭파 사건에 연루되어 대구 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는데, 그때의 수인번호가 264였다. 본명은 이원록이고 이원삼이라고도 한다. 혹시 이 분에 알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아마도 이 활로 알고 있는데 ..
오늘의 쓸데없는 History는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자신의 국가 보물 1호(?)인 자명고를 찢은 자명공주와 대무신왕의 슬픈 사랑과 더불어 고구려 2대 전설 전해지는 '바보 온 달과 평강공주' 이야기다. 자명공주와 대무신왕의 이야기는 다음에 할 것 같고....ㅋㅋㅋㅋ 근데.. 웬 갑자기 다문화가정 성공신화???? 이는 온 달의 출생 연도가 정확하지 않은데에서 기인한다. 온 달이 사망한 시기는 신라와의 아단성 전투에서 사망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때가 590년이다. 아직까지 학계에서도 온 달이 진짜 토종(?) 고구려 사람이었는지, 외국인이었는지 섣불리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 당시 정황상 외국계열의 사람인 것이 좀 더 설득력 있긴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오늘은 이런 알쏭달쏭 바보(?)온 달에 대한 Histor..
혹시 '장가들다'와 '시집가다'의 차이점을 아시나요???? 고구려에는 '서옥제'라고 하는 데릴사위제도가 있었다. 이는 혼인을 하면 신부의 집 뒤편에 조그만 집을 짓고 거리에 들어가서 살면서 자녀를 낳고, 자녀가 장성하면 아내를 데리고 신랑집으로 돌아가는 제도이다. 이는 고구려가 가지고 있는 지리적 환경과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고구려는 알고 있듯이 산악지형이 국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이다. 이 말은 농사를 짓기 위한 남성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당시 고구려는 백제, 신라와 더불어 정복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던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남성이 상대적으로 여성보다는 조금은 더 귀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좀 더 깊고(?) 농담적으로 설명하면 국가에 필요한 군..
농담 100%로 까칠양파님이 순간 미웠다... -_-;; 4.19 국립묘지를 다녀오고(4월 15일) 집에 도착 후, 거짓말처럼 몸살에 걸렸다...ㅜㅜ 물론 몸살의 원인 90% 이상은 이 날 비를 맞았기 때문이니라.... 지난번 서대문을 방문했을때 4.19 혁명 기념도서관을 가지 말았어야 했다. 그냥 애초에 내가 알고 있는 정도의 4.19 혁명으로만 알고 있어야 했고, 굳이 관련 자료들을 다시 찾아볼 필요는 없었다. 그럼 나에게 4월 19일은 부정선거로 인해 촉발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첫 발??? 정도로만 알고 그냥 그날이 되면 1분쯤 묵념을 하고 지나갔을 것이다. 4.19 혁명 기념 도서관을 가지 않았다면 관련 포스팅을 쓰지 않았을 것이고, 그럼 까칠 양파님이 본인의 포스팅을 알려주지 않았을 것이며 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