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쓸데없는 history... 제주도 !!!! [주요내용은 네이버 지식백과를 참조하였습니다] == 제주의 시작.. 탐라 == 제주도에는 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한다.제주도에서 발견된 뗀석기를 통해 이때부터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인돌, 토기 등이 발견되는 걸로 봐서 제주도는 석기 시대부터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역사에서 제주도가 처음 등장한 것은 삼국 시대이다. 하지만 이 당시 제주도는 탐라국이라는 독립국으로 독자적인 국가를 운영하고 있었다. 탐라국은 삼국 중 백제와 교류가 가장 빈번하였고, 백제가 멸망한 후에는 신라와 교류를 하면서독립된나라를 유지했다. 이때 신라는 탐라라는 이름으로 탐라를 신라에 귀속하게 된다. 탐라국 자체가 섬으로 이루어진 국가..
솔직히 전혀 관심없는 기념일이었다..'여성의 날'이 있는지도 몰랐으니까.. ㅜㅜ 이 날은 여성 노동자들의 운동에서 비롯됐다고 한다..1975년 UN이 공식적으로 3월 8일 '여성의 날'로 지정하였다. 위 사진의 클라라 제트킨이라는 분이 1910년 최초로 국제 기념일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여성 인권의 날이구나... 1975년...이 되어서야 여성도 어느정도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구나..우리나라에도 이런 여성 노동자들이 꽤 많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분들 중에는 이희호 여사가 대표적이지 않을까... 보통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으로만 알고 있지만 이 분은 어찌보면 김대중 대통령보다 더 진보적인 분이라고 볼 수 있다.. 서울대 재학 당시에는 이범석 광복군 장군이 창단한 '조선민족 청년단'에 가입하여..
우리는 백제의 멸망에 대해서 얼마나 자세히 알고 있나...문헌상 백제의 멸망에 대해 기술해놓은 책은 거의 전해지지않는다. 우린 단순히 의자왕이 향락에 빠져 성충, 흥수 등 충신들을 멀리하여 정사를 돌보지 않았다...정도만 알고 있다... 의자왕은 백제 무왕의 장자로 일연 스님이 저술한 '삼국유사'의 서동요 설화에 따르면 그는신라 선덕여왕의 조카이자 태종 무열왕의 이종사촌이다..이때의 정확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으니 삼국유사의 이야기를 절반 정도만 사실이라고 가정하면 선덕여왕과 태종 무열왕의 촌수를 생각하면 이종사촌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히 가까운 사이인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서동요'의 주인공은 백제 무왕이고, 선화공주는 신라의 공주이자 무왕의 왕비이다. 선화공주가 선덕여왕과 자매라는 ..
아래의 내용 중 일부 상세한 내용은 네이버 백과사전 등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리하였음을 미리 알립니다 우리나라는 세종대왕님이 훈임정음을 창제하기전부터 이두라는 표기법을 가지고 우리말을 표기하고 있었다. '이두'는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기록하던 표기법이다.. 그럼 우리는 언제부터 이런 우리말을 사용하였을까..???? 한국어는 대략 9,000년 전 신석기시대에 지금 중국 동북부에 살던 농경민에서 비롯된것으로 밝혀졌다. 우리 한국어의 계보는 우랄 알타이 어족에서 시작한다... 우리 민족이 우랄 민족에서 파생되었다는것을 보면 쉽게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우랄 알타이어족은 투르크.. 현재의 튀르키예에서 시작하여 중앙아시아를 거쳐 몽골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경로를 가진 어족이다.. 번외로 사용과 언어체계..
3.1절 포스팅 특집 제 4탄 !!!! 아래 포스팅되는 내용은 본인이 알고 있는 얕은 지식과 인터넷 서치와 예전에 읽은 여러 책들의 기억들이 혼합되어있다..온전히 개인적인 생각을 포스팅하는것이니 이 포스팅을 읽으시는 분들은 오해가 없으시길 바라며.... 내용의 일부출처 : 위키백과, 김용운 - 천황이 된 백제 왕자들 및 다수.. 백제가 언제부터 왜와 외교 관계를 맺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에는 전혀 기술되어 있지 않다. 다만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따르면 진구(神功)황후 46년(366)에 양국이 최초로 국교를 맺었다고 서술되어 있다. 백제와 일본의 교류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근초고왕대로, 국교 수립 후 양국은 꾸준히 사신을 교환하며 문화를 교류하였다. 1,500여 년이 ..
나는 학교다닐때(중학교,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소서노에 대한 교육과정은 없었다.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 잘 모르겠다... 사람들에게는 드라마 '주몽'으로 인해 그 캐릭터가 소개된것이 거의 최초이지 싶다... 삼국시대 이전.. 고조선이 멸망하고 고구려가 건국되기 전 우리의 고대국가는 부여, 동예, 옥저등으로 나뉘어 분열되어 있었다... 소서노는 부여에 속한 졸본이란 땅의 지주의 딸이었고, 고구려 주몽과 결혼하기 전 이미 혼인을 하고 비류와 온조라는 두 아들을 두고 있었다.. 주몽역시 첫번째 부인과 사이에서 '유리'라는 아들을 두었지만 첫번째 부인은 사별로 잃고 많다.. 야사에서는 주몽이 아들 유리에게 칼 한자루를 부러뜨려 후에 유리가 그 부러진 칼 조각을 가지고 가서 태자로 책봉되었다... 라고 우리는 ..
위 토기는 경주 어느 왕릉에서 출토된 토기의 일부이다... 위 사진은 경주 황남동 적석목관분에서 출토되었는데, 30대 여성 귀족과 20대 남성의 인골이 포개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신라의 성문화는 '여성상위'였다. “신라의 경우 같은 성씨는 물론 형제의 자식이나 고종·이종 자매까지 아내로 삼았다.” 를 쓴 김부식은 “중국의 예속을 따진다면 도리에 크게 어긋난다”면서 신라의 풍습을 평했다. 신라의 leekihwan.khan.kr 사진의 출처 신라는 개방적인 사회였다.. 위 두 사진으로 신라의 성풍습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우리나라 역사상 존재하는 국가중 여왕이 나라를 통치한 적은 신라말고는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려시대 천추태후가 권력을 잡은적은 있으나 결코 왕의 자리에 오르..
나의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그 첫번째는 유사역사학.. '환단고기'로 시작한다... start ~~~~~~~~ 이웃 블로거님들은 '환단고기'라는 책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이 책은 내가 대략 고등학교때 읽지는 못하고(접할수는 없었다...ㅠㅠ) tv에서 다큐멘터리 비슷하게 방영한 걸 본 기억이 있다... 나이 40이 넘도록 이걸 기억하는 이유는 그 전까지 단군 신화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알고 있었지만 우리 조선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내용의 방송이 너무나 쇼킹이었기때문이다...ㅋㅋㅋㅋ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당연히 생각하겠지만, 그 당시에 내가 접할 수 있는 역사관련된 책은 한정되어 있어서 후에 좀 더 역사에 관해 책을 읽고 접하기전까진 잠깐이나마 '우리나라가 세상의 중심(?)이구나....
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시골의 조그마한 국민학교였던 나의 학교는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즈음.. 3,4,5학년이 합반이 되었고... 나의 졸업 동창은 스무명이 채 되지 않았다... 결국....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폐교되었다... 국민학교와 초등학교의 차이점을 알고 있는 기성세대가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국민학교와 초등학교의 차이점은... 우선.. 초등학생들은 '국민교육헌장'을 모른다... -_-;;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났다... ..... 이에 우리는 .........이하 생략................] 이걸 기억한다면 그대는 국민학생이다.. ㅎㅎㅎ 내가 국민학교를 다니던 80년대 중,후반은 그제서야 우리나라도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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